(서울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최봉혁칼럼니스트 (AI·ESG·DX 융복합 전문가,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전문가) = 양희성 작가는 밑그림 없이 화면 불특정 자리에서 시작되는 그의 작업방법은 원근법이 무시된 듯한 섬세한 묘사와 원색의 과감한 이채로운 채색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전문]
차재숙 어머니와 양희성 작가에 대해 인터뷰했다.
Q 양희성 작가는 지적 장애 판정을 언제
A 세 살 무렵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외국 주재원 발령으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났는데 희성 작가에게는 낯선 상황에서 본인이 알던 세상이 사라졌다는 충격을 받았다.
그다음 해 한국에 돌아와 각종 검사를 받아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돌아갔었다.
다시 한국에 나와 초등학교를 보내면서 낫게 해 주리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해 노력을 했지만 결국 중학교 때 장애 판정을 받았다.
Q 미술을 시작하게 된 사연
A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한국에 돌아와서 한글뿐만 아니라 언어치료와 정서안정을 위해 오감교육을 시켰었다.
그중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들린 화실에서 다른 곳과 달리 유달리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Q 작가를 교육시키고 성장하면서 가장 힘든 기억은
A 양희성 작가는 일반 초중고를 나와 미대로 진학을 했다.
통합교육은 참으로 좋은 환경이었지만, 몇 명의 철없는 아이들이 따돌림과 못된 짓을 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희성이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펐다.
도와주는 사람보다는 가족의 힘으로 단단하게 울타리가 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희성이를 지켜내야 했던 그 과정이 참 막막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가족 간의 유대와 결속력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Q 장애예술인으로 활동하며 보람으로 기억되는 사연은
A 양 작가는 장애와 비장애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중에도 양희성 작가의 신념인 "선한 그림에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선한 영향력이 있음을 믿는다"이처럼 전시를 통한 수익금으로 여러 번 좋은 일에 건강한 기부를 할 때마다 감사하며 작가로서 긍지도 가지게 된 점이 보람 있었다.
Q 앞으로의 양희성 작가의 미래계획은
A 개인적으로 얻게 된 마음으로 보고 소망을 그려내는 치유의 작가라는 닉네임처럼 전업작가로서 전시 및 활동과 자기 계발에 힘쓸 것이다.
더불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문화 복합공간을 만들어 그곳을 통해 선한 화가로 쓰임 받길 간절히 소망한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맞쳤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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