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최봉혁칼럼니스트 (AI·ESG·DX 융복합 전문가,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전문가) = 강선아 작가 엄마 박정숙 생후 18개월ᆢ네가 태어나서 받은 상처의 시간만큼 3배로 갚아주면 나을수 있겠니?~
우리가족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속에 무지개 색칠을 하며 살았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큰딸 막내 선아가 태어나 신생아를 키우며 엄마는 행복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속에 선아는 17개월 먼저 태어난 언니의 발달 과정이나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때 선아는 잔병치레도 잦았다.
일상생활속에서 언어발달이 더디고 인지능력도 늦어져 육아를 하는 엄마는 여느엄마들보다 더바쁘고 힘들고 지쳐 잠든날이 많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나의 분신이고 우리집 막내가 주는 '남다른 의미를 우리는 그렇게 부등켜안고 살았다.
일단 울음이 한 번 시작되면 달래도 소용없고 1시간도 넘게 울다 울다 지쳐서야 울음이 그쳤다. 엄마는 이유를 몰라 우는아이를 어찌할바를 모르며 가슴앓이를 수도없이 반복했다.
그럴때마다 아이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ᆢ 고민을 하며 선아가 평범한 발달에서 늦어질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느날 불안해 하고 있을 무렵, 병원 검사를 받아보라는 친정 언니의 권유가 있었다.
그리고 자폐증 일 가능성이 많다는 의사의 소견에 나는 선아가 생후 18개월부터 자폐로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을 수소문해 근 2년동안은 열심히 찾아다녔다.
의사선생님을 뵙고 하게되는 질문은 딱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사실 내 아이가 자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폐인지 아닌지를 물어 보았다.
두번째는 자폐라면 앞으로 이 아이를 잘 키우면 온전해 질수 있는가?~였다. 아직 어려서 인지 의사선생님들께서도 섣불리 진단은 내리지 않았다.
단지 또래 아이들 보다 발달이 많이 지연되어 있으므로 엄마가 집에서 열심히 놀아주고 3살~4살 쯤 되면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보낼수 있으면 보내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선아의 발달지연이 오롯이 엄마의 잘 못으로 생긴마음의 병이라고 생각되어 선아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컷다.
그래서 선아를 꼭 껴안고 다짐하듯 얘기했다."네가 태어나서부터 18개월까지 받은 상처의 시간을 3배로 갚아주면 나을수 있겠니?~ 하고
하지만 상황은 선아한테만 모든시간을 다 내어 줄수 없었다.
선아 언니한테도 아직 손길이 많이 필요한 터라 두 아이를 온전히 돌보기가 힘에 붙였다.
언니는 바깥에서 놀겠다고 울고 선아는 빛에 예민하여 밖에만 나가면 울었다. 한 여름에도 아기를 업고 어른의 상의로 꼭꼭 덥고 다녀서 머리감은 아이처럼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애기 낳은지가 언젠데 애기 얼굴 한 번 안보여 준다"라며 뒤덥힌 옷을 벗길라치면 선아는 여지없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언니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으면 선아는 순식간에 놀이터를 벗어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고 선아를 붙잡으러 간 사이에 언니는 엄마를 찾아 나섰다가 날이 어둡도록 찾지를 못하여 경찰에 신고 하고 직장에 있던 아빠가 오고 우여곡절 끝에 찾을수 있게됐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우리 가족에겐 매순간 가슴 조리며 철렁했던 자잘한 사건들이 일상처럼 살얼음판을 걷는듯 했다.
선아를 낳고나서 연연생인 두 딸을 쌍둥이처럼 발레도 가르치고 수영장도 다니면서 이쁘게 키운고 싶었던 마음은 잠시 잠깐 꿈에 불과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생후 18개월에 자폐성 장애아를 감당하기엔 너무 막막했다.
그림작업중인 강선아작가
18개월 선아의 일정은 정말 빼곡했다.
오전에는 인지와 언어 교육을 하였고 오후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언니와 함께 바깥놀이를 했다.
저녁시간에는 집에서 나름대로의 엄마 교육이 있었다. 물놀이,책 블럭 놀이,책읽어 주기,찰흙 놀이 ,공풀장에서 놀기등의 놀이 형식을 통한 교육이었다.
나름대로의 엄마교육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며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는 단순 반복적인 놀이 교육이었다.
미래의 성장성을 보장 받지 못 한가운데도 365일을 그렇게 반복적이고 일정표대로 730일 동안 교육하는 동안에 작은변화를 발견할때마다. 나는 할수있다는 희망을 떠올리며 살았다.
그동안 크고 작은 발전을보며 3살~4살 때에 어느날 선아가 한글 낱말 카드를 읽고, 공풀장의 7색깔의 색깔들을 알아 맞추고, 거실에서 놀다가 스스로 쪼르르르 화장실로 달려가 용변을 보았다, 엄마로서는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매일 매일 식용색소로 다양한 색의 밀가루 반죽과 색칠하기 가위 오리기로 다져진 손근육은 7세 이후 손ㆍ발톱은 한 번도 잘라 주지 않았다.
지금도 은행속 껍질과 밤까지 호박씨 까기 달인으로 견과류 먹는 재미를 솔솔하게 느끼게 해준다.
6세때 어느날 색종이처럼 종이위에 색칠만 하다가 텔레토비를 그렸다며 선그림이 나왔다.
이러한 일련의 기적 같은 어느날의 이변은 사실 선아의 내면에서는 꾸준한 지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18개월의 3배의 시간을 선아와 함께한 고전분투했던 시간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게되는 희망의 주춧돌이 된 샘이다.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기독학교 미션 특별활동으로 아침 예배시간이 있었다. 1시간 일찍 등교하여 선생님ㆍ친구들과 함께 찬양 모션송을 3년동안 즐겁게 했었다.
미술반에서의 활동으로 매년 작품전시회도 하고 서울시민청 아트상품코너에 아트상품 전시도 되어있다.
도예수업ㆍ수공예수업으로 가죽공예ㆍ 펠트공예품도 만들어 학교 실습장으로 마련된 조합형태의 선물방에서 판매도 하고 실습장으로 마련된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자격증도 이수하였다.
학부모들의 바리스타 수업 봉사로 엄마인 저도 3년간의 보조수업을 하면서 바리스타 이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외부 기관 방문 체험 학습과 직업 관련한 다양한 사회적응훈련을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전교생들이 무대위에서 선보일수 있는 공연 발표회나 체력단련을 목적으로 꾸준한 반복훈련 끝에 치뤄지는 인라인스케이트 대회나 교외 대회로 치뤄지는 육상 대회등의 적극적인 학교생활 참여로 선아의 발달에 전반적인 질적 향상이 있었다.
그래서 선아의 그림작업은 만나고 싶고 그리운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누고싶은 얘기나 그들과 함께 하고싶은 일들을 담은 그림들이다.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 어쩌면 짝사랑일수도 있는 남자 친구가 연주한 핸드벨 "파"음이 좋아서 먹는 파도 좋아하고, 좋아하는 토끼캐릭터를 핸드벨 "파"음에 붙이는등 좋아하는 행위의 메세지가 분명하게 표현된다.
두번째 개인전때 전시된 크리스마스 리스 4점을 그리는 내내 그립고 보고싶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다.
사실 초ㆍ중등시절의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의 지인들을 그리워해서 많이 안타깝다
현재 직장도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자 특기활동이 작품활동으로 이어져 화가로서의 직업을 갖게 된 점 또한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엄마의 작은 발걸음은 알찬 열매를 맺고 있다, 수상 실적도 빼어나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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