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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⑥도둑고양이의 밥숟가락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1/08 [01:39]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⑥도둑고양이의 밥숟가락

최봉혁 | 입력 : 2022/11/0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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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장예총[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도둑고양이의 밥숟가락     ©

(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⑥도둑고양이의 밥숟가락

 

 

도둑고양이의 밥숟가락

24

월요일이다. 신은 월요일에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 신을 믿는 부장도 나를 빚어줄까. 숨을 불어넣어 줄까.

누군가 아침부터 지하철 철로에 뛰어들었다. 그 한 명 때문에 2호선의 모든 전철이 멈춰야 했다. 아직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차라리 어젯밤에 뛰어들 것이지죽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지이 많은 사람들이 지각하게 생겼잖아! 오늘이 어떤 날인데!

나는 석민 학생이 죽던 날의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었다. 죽은 사람이야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만,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지.

택시를 탔으나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뛰었다. 아침이지만 태양은 뜨거웠다. 부장과의 관계에 기름칠을 하는 것은 약속 시간 준수이다. 하물며 출근 시간이라면! 그와 연결된 체인에 녹이 슬어선 안 될 것이다! 더 빨리 뛰어야 했다. 나의 땀이 기름칠을 해줄 것이다.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눈치 빠른 부장은 나의 꼴을 보고서 전후사정을 눈치 챘다. 그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동기생 둘은 10분 지각했다.

난 부장에게 칭찬 외에 다른 말을 원했다. 또 다른 말씀은 없으신지요?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정규직 신입기자가 발표되는 날이다. 하지만 그는 바빠 보였다. 부장실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기생들은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서로 답이 안 나오는 사람들끼리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부장은 우리를 불렀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먼저 도착한다고 가산점을 줄 리는 없다. 하지만 셋은 선착순을 하듯 뛰어야 했다.

, 이거 하나씩 받게. 부장은 우리에게 종이상자 하나씩 나눠 주었다. 뭐해? 들고 따라 와. 그는 지하 주차장으로 우리를 몰고 갔다.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부장은 참 깜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나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 이제 각자의 상자를 열어보게. 나요한이 상자를 연다. 꽝이 나왔다. 그는 운다. 다른 녀석도 상자를 푼다. 역시 꽝이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 내가 상자를 풀어 헤친다. !!! 부장은 하하하! 웃으며 실로폰을 쳐줄 것이다. 한 기자, 환영하네! 이 말을 신호로 지하주차장 여기저기 숨어 있던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뛰쳐나올 것이다. 가장 예쁜 여직원은 나에게 화환을 걸어줘야 할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

 

, 수고했어. 뒷좌석에 넣어 줘. 부장은 다시 우리를 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을 조용히, 아주 천천히 삼켰다. 부장은 끝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오전 내내 지루하고 답답했다. 재밌는 영화일수록 광고가 많은 법이다.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오후엔 특별한 발표가 있을 테니까, 저녁엔 기분이 좋아지겠지? 내일이 되면 저들을 볼 수 없게 되겠지. 어쩌면 내가 그리될 수도 있겠지만.

오후가 되자 부장은 다시 우리 셋을 불렀다. 이번에도 선착순으로 뛰어갔다. 양치기 소년도 몇 번 장난치다가 진실을 말하지 않던가. 이번에야말로 부장은 해야 할 말을 할 것이다.

저기 말이야. 부장이 입을 뗐다. 나요한은 꼴깍 소리를 내며 침을 삼켰다. 넌 참 여유롭구나. 난 삼킬 침조차 남아 있지 않은데. 내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우리 셋은 서로를 힐끗 쳐다보았다. 서로의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일렁였다.

미안한데 말이야. 부장은 또다시 뜸을 들였다. 내 머릿속에서 지난 6개월간의 인턴 생활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후회는 없겠지. 절망이 있을 테니까.

저기자네들 일은 좀 보류됐어. 미안하게 생각하네.”

…….”

왜요?”

역시 나요한이다. 그는 아주 가끔, 궂은일에 발 벗고 나설 줄 아는 인물이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요즘 종편 문제로 회사가 많이 바빠. 그래서 신문사와 방송사 간의 편제가 확정된 후에 자네들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네. 아마 몇 달 후에는 되겠지.”

두 달 후에는 신입사원 필기시험이 있다. 세 달 후에는 필기시험 합격자들이 면접을 본다. 그런데 몇 달 후라고? 혹시 인턴들에게는 필기시험을 면해줄 테니 면접을 보라고 말하진 않을까? 6개월 전에 필기시험을 보고 들어왔다. 그런데 필기시험을 면해주겠다고? 면접을 보라고? 그럼 6개월 전에 면접시험을 치루고 날 정규직으로 채용하던가! 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 6월 동안 고작 100만 원 받고 꿀벌처럼 일했다. 내가 힘을 낸 건 부장이 먹여준 삼겹살이 아닌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달 후라고!

흥분할 일만은 아니었다. 오늘 발표가 난다고 해도 정규직이 되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진리대학교를 나온 나요한이 거슬린다. 그는 학점도 나보다 높다. 토익 점수도 높다. 어쩌면 이 상황이 더 나에게 유리할지도 모른다. 우리더러 면접을 보라고 해도 좋겠다. 면접관 자리에 부장이 앉을 테니. 그는 내가 일을 빨리 배운다고 했다. 인간이 됐다고도 했다. 오늘 아침엔 내가 참 마음에 든다고 칭찬까지 하지 않았나.

나는 잘 알겠다고 말했다. 부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장을 보니 나 역시 만족스러워졌다. 엄마는 이렇게 말하셨다. 직장 구하기 어렵다고 투덜거리지 말거라. 쉽게 얻으면 귀한 줄 모른다. 어렵게 얻어야 만족함을 배운다.

부장은 오늘 회식이 있다고 말했다. 인턴들도 꼭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25

치익-’

이번엔 삼겹살이다. 부장은 오늘따라 서론을 아주 짧게 뽑아내고 있었다. 그는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 장강(長江)의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말이야.”

본론이 시작되다 보다.

난 내일부터 자리를 옮기게 됐어.”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나의 눈이 유난히 커졌다.

방송사 쪽으로 가라는군.”

부장은 종이신문의 앞날에 대하여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론을 마무리 짓지 않았다. 그는 벌써 기승전결을 잊은 듯했다. 어느새 요점만 콕 찍어 말하고선 끝맺는 법을 익혔다.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고기가 익고 있었다. 한우든 냉동삼겹살이든 굽히는 소리가 같다. 고기는 불판 위에서 평등해진다. 발표 없는 발표일의 인턴 세 명처럼.

고기가 타고 있었다. 난 습관적으로 가위질을 했다. 난 신기 빠진 박수무당처럼 눈이 멍했다. 가위도령과 집게도사가 불판 위에서 맥 빠진 굿판을 벌였다. 접신에 뜸한 신령님은 제물에만 관심을 보였다. 시커먼 고기를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가는 부장은 생기가 넘쳐 보였다. 돼지기름이 그의 두툼한 입술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26

몇 달 후라고? 두 달 후에 하반기 공채가 시작되는데! 뭘 믿고 또다시 몇 달을 기다리라는 거야. 그때 가서, 미안하네, 한 기자, 아니, 이제 한상인 씨인가? 허허허! 이런들 어쩔 도리가 없다. 더군다나 부장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가 면접관의 자리에 앉을 일은 없겠지.

내년이면 나도 서른이다. 서른이 그냥 서른인가? 결혼하려면 최소 3년은 돈을 모아야 한다. 서른에 자리를 잡더라도 서른셋은 돼야 결혼할 수 있다. 결혼이야 그렇다 치고, 집은 또 어쩔 텐가. 전세계약이 다 할 때마다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돈을 모은들 나의 저축은 전세금 상승분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서른셋에 결혼해서 서른넷에 아이를 낳았다 치자. 내가 환갑이 돼도 아이는 대학에 다닐 것이다. 운이 좋아 환갑까지 벌이가 있다 쳐도 그 후론 또 어찌 살 텐가. 내가 나의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대학생 아이는 나만 바라볼 것이다. 사는 게 무엇 하나 간단한 게 없군. 그런데 몇 달을 더 기다리라고! 그 몇 달이 두 달이더냐, 열 달이더냐! 부장 말을 듣고 기다렸다간 하반기 공채마저 놓치는 수가 있다. 그냥 때려치우고 하반기 공채를 준비해야 하나. 하반기 공채조차 또 다른 인턴에 합격하는 건 아닐까. 그럼 또다시 인턴생활을 해야 하나. 지금 인턴도 벌써 세 번째가 아닌가!

이야옹-’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아래에서 쓰레기봉투를 물어뜯고 있었다. 녀석은 먹다 버린 닭 뼈를 기어코 끄집어냈다. 넌 이미 취직했군. 고양이는 짐승의 뼈를 물고서 후다닥 차바퀴 밑으로 숨었다. 고양이는 눈동자를 뾰족하게 세우며 웃고 있었다. 좋을 테지, 음식물쓰레기가 블루오션처럼 펼쳐져 있으니……. 넌 날 때부터 밥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군.

밤이지만 더웠다. 술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낮에 내린 비 때문에 하수구 악취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악취는 안개처럼 자욱하고 낮게 깔렸다. 딸꾹질을 할 때마다 악취와 소주 냄새가 입 안에서 뒤섞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아버지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할 때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 나는 담임의 말도 듣지 않았다. 딱히 반골기질이 아님에도 말이란 말은 다 안 듣고 살아왔다. 어른들 말씀은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거야. 사골처럼 진국인 것이지. 그러니까 무조건 듣고 봐야 해. 상규가 말했었다. 그는 스스로를 일찍 철들었다고 생각했다.

골목마다 늘어선 들장미, 꽃밭, 야생마, 과부댁이 내 옆을 스쳐갔다. 검붉은 네온사인 밑으로 드나드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그 위로 붉은 십자가가 같은 색깔의 네온사온들과 뒤엉켜 있었다. 쫓아오던 악취가 오래된 여인의 냄새와 범벅이 됐다. 매스꺼움이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길바닥에 토를 하고 말았다. 나는 아침에 지하철로 뛰어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지. 이 많은 사람들이 지각하게 생겼잖아! 내일 아침이면 누군가 저 비슷하게 말하겠지.

방문을 열었다. 공기가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선풍기를 틀었다. 찌그러진 로또 몇 장이 온풍을 타고 비행했다. 전화가 울린다.

자고 있었니?”

아니…….”

어디 아프니?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병을 걱정합니다. 어느 성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아니안 아파.”

오늘 스님이 그러시던데, 네 운은 서른부터 풀린다더라. 그러니까 힘내고. 알았지?”

엄마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셨다. 하지만 결과를 물어보시지 않았다. 어떤 승려는 자식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자식이 못해주는 걸 대신 해주고 있으니까. 그들은 엄마에게 속삭이듯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은 절대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낙관주의자는 환영받기 쉽다. 엄마는 그들의 말을 믿고자 했다. 잘 키워보시오! 이 아이는 장관감이오. 초등학교 적의 예언이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당상관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쉬이 말할 수 없소. 그러나 족히 등용문에 오를 터! 중학교 적에는 그리 말했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율사가 될 것이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어느새 법률가로 변해 있었다.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예언은 시작되었다. 내 인생은 서른부터 잘 풀린단다.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잘 풀린단다. 다 잘 될 거야.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하던 상규가 생각났다. 그런 무성의한 격려라면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부처는 세속을 버렸다. 무거운 걸 벗으니 몸이 가벼워졌다. 두둥실 떠올라 자유로이 부유할 수 있었다. 그는 연기(緣起)를 깨우쳐 윤회의 사슬을 끊어냈다. 윤회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길을 남겨두었을 뿐이다. 예언가들은 그 길을 걷는 대신 부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이 소원성취를 도우리라 위로해주었다. 부처는 제왕의 길도, 예쁜 아내도, 귀여운 자식도 버렸다. 그는 세속의 이윤에 관심이 없었다. 소원이란 말도, 성취란 말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속세의 예언가들은 그런 부처를 등에 업고 소원을 대신 빌어주고 있다.

나는 엄마 앞에서 예언가들을 힐난하지 않았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자식으로서의 최소한이라 생각했다. 부장 앞에서 그의 신을 찬양했듯, 엄마 앞에서는 부처를 믿었다.

부장의 신이 그런 것처럼 예언가들의 부처 또한 인간을 닮아 있다. 이제 신과 부처는 인간의 욕망을 품고, 인간의 소망을 의욕 한다. 오래된 신과 낡은 부처는 경전 속에 영어되어 새로이 거듭나고 있다. 인간은, 그들이 창조해낸 신과 부처를 끊임없이 찾고 의지한다. 그들은 고이 접은 봉투에 정성을 담는다. 정성이 두둑하면 접신에 성공한다. 접신이 이루어지면 소원도 이루어지리라. 옛 부처가 사라진 시대, 바야흐로 예언가의 시대, 신이 램프의 요정이 되어 세속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시대, 이러한 시대에도 미륵보살이 온다면 분명 여성일 거라 생각했다. 부처가 사라진 시대엔 모성이 그를 대신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인혜가 전화를 걸어왔다. 전원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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