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③ 스토리텔러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부장이다. 부장은 나름대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그는 대형교회의 장로가 되고서 십자가 앞에 엎드려 목 놓아 울었다 한다. 나는 아홉 살 때 부활절 계란을 얻어먹은 후론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부장이 장로임을 알고서 다시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이 벨소리도 자꾸 들으면 정감이 간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질 않는가. “네, 부장님. 한상인 기자입니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왜 한충만 혹은 한은총, 한믿음 등으로 지어주시지 않았단 말인가. 동기생 인턴 기자의 이름은, 불행하게도 나요한이다. “네, 샹송빌딩으로 가고 있습니다. …… 네? 우와! 축하드립니다. … 알겠습니다. …… 이따 뵙겠습니다. …… 네, 네, 네네, 네에.” 부장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난 ‘네’를 반복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번만 ‘네’ 했는데, 그때 마침 옆 사람이 말을 걸어 부장이 그 소리를 못 들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네’의 과잉을 탓할 부장은 아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실력보다는 우선 인간이 될 것을 강하게 주문했었다. 오늘 저녁에 회식이 있다는 것을 부장이 인턴 기자에게 직접 알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들떠 있었다. 아들이 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단다. 그 아이는 어쩌면 샹송그룹에 출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친 부장은 미치도록 소중한 아들이 미칠 수 있음을 미친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축하할 일이다.
8 샹송빌딩에 폴리스 라인이 쳐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형사는 보이지 않았으나 키 큰 전경들 틈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담배연기를 보고서 김 형사가 이미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이, 한 기자 왔나?” 나는 김 형사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셨다. 덕분에 그는 좋은 건수가 있을 때마다 나를 먼저 불러주었다. “무슨 사건입니까, 형님?” 내가 물었으나 김 형사는 담배만 빠끔빠끔 피더니 지나가는 말로 대꾸했다. “무슨 사건이긴, 누가 죽였든 혼자서 죽었든 뭐 그런 사건이지.” 대단한 건수인양 불러놓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무책임함에 짜증이 났다. 그는 확실히 유능한 형사였지만 둔감한 면도 있었다. 월급을 받는 모든 족속들의 호봉 수는 체중과 비슷한 것이라 느낄 때가 많다. 호봉이 늘면 늘수록 그들은 몸집이 비대한 게으름뱅이처럼 민감해할 줄 모른다. 나는 짜증을 누르며 물었다. “아까는 좋은 건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형님?” 김 형사는 낄낄대며 내 배를 툭 쳤다. “기다려 보라고.” 그가 담배를 다 필 때까지 연기를 함께 마셔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 있게 뜸을 들이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나 보다. 안 그래도 침을 찍찍 뱉으며 수런거리던 전경들이 거슬리던 참이었다. 김 형사가 담뱃불을 끄자 예고편은 끝이 났다. “자네가 보기엔 이게 타살 같나? 자살 같나?” 김 형사는 아주 기괴한 연극에 초대하듯 내 손을 낚아챘다. 그는 나를 위해 VIP석을 마련해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해결해야할 일을 내게 물어왔다. 그럴 만했다. 시신은 보기 드물게 매우 단순한 형태였다. 흔히 시신은 복잡한 구조를 띤다.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인 범인의 주저흔, 피해자가 저항한 흔적, 회칼로 수십 차례 찔리거나 베인 자창․ 할창․ 절창․ 열창…, 둔기가 움푹 들어갔다 나온 두개골의 찌그러짐 등이 생생하게 스케치 되어 있다. 그리고 피해자로부터 뽑아낸 피를 물감 삼아 검붉게 채색되어 있다. 물론 모든 시신이 그림 같지는 않다. 눈이 파이거나 코나 귀, 사지가 잘린 경우는 차라리 조각상이다. 아무튼 피해자의 시신이란 그 사연만큼이나 복잡한 입체감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누워 있는 저 시신은 온통 지워져 있다. 지워진 채 떨어졌다. 혹은 떨어트림을 당했을 것이다. 샹송빌딩 옥상에서 그랬단다. 어릴 때 장난삼아 5층 베란다에서 수박을 떨어트린 일이 있었다. 수박은 터졌다. 그리고 퍼졌다. 아주 넓게. 그런데 이번엔 188층이란다. 하… 자살이든 타살이든 보통내기가 아니다. 점심으로 먹은 것이 식도를 타고 거슬러 올라왔다. 자장면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소화가 덜 된 면발이 딱 구더기 크기만큼 되어 스멀스멀 목구멍을 간질였다. 그걸 시신에 게워버린다면 김 형사가 날 저렇게 만들지도 모른다. 난 눈을 홉뜬 채 가만히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는 벌떡벌떡 솟구치는 걸 가라앉히는 데 특효약이다. 저것은 단지 하나의 사물이다. 녹아버린 마네킹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난 지금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오늘은 참 유쾌한 날이다! 급한 대로 대충 만들어낸 주문의 특효는 딱 10초 간 유지됐다. 10초 간격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주문을 외워야 했다. 대체 염산으로 세수를 했나. 그의 얼굴은 거대한 염산 통 안에서 튀겨지기라도 한 듯 형체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그 모습은 한때 인간이던 자가 변신한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냥 ‘저것’은 어떤 물체일 뿐이고, 원래부터 저렇게 생겨먹었다는 결론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얼굴이 저 모양인데 그 부속기관에 대해서 따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위치로 보아 이쯤에는 원래 코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귀가 있어야 하는데, 라며 추측하고 있었다. 애초에 튀어나와야 할 부분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들어가야 할 부분은 평평해졌다. 뭐랄까, 이목구비가 평등해졌다고 할까, 눈코입귀가 동등해졌다고 할까. 어쨌든 시신의 얼굴은 갓 만든 밀가루 반죽처럼 동글납작하기만 했다. 모든 인간이 이렇게 생겼다면 증명사진을 예쁘게 찍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보기에 역겨움이 과했다. 하지만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점도 있었다. 시신은 아무렇게나 야적된 폐기물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폐기물이라는 말은 좀 심하군. 그 혹은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경찰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엎어져 있었다. 시민들은 전망 좋은 명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키 작은 전경의 만만한 어깨를 찾아 회전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 앞에서 무슨 강강술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쯤으로 해두자. 죽은 이는 여러모로 보나 전성기를 즐기는 연예인처럼 보였다. 군중은 오직 그를 보기 위해 밀려들었다. 나는 피식 간사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평범한 사람도 죽은 후에는 인기가 많아질까. 혹시 나도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죽을 때는 꼭 길바닥에 드러누워야겠군. 하긴 악성댓글을 밧줄 삼아 목매 죽은 연예인은 사후에 비로소 용서를 받고 인기를 누리지 않던가. 우리가 그 혹은 그녀의 얼굴에 뱉어놓은 침이 수정처럼 반짝이며 죽은 이를 눈부시게 꾸며주지 않던가. 나 원, 연예인은 죽은 후에야 안티(anti)가 사라지는군. 1개 소대병력이 철저히 보호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유력정치인 같기도 했다. 아무튼 아무나 누리기 힘든 호사였다. 다른 게 있다면 이미 죽어버렸다는 점, 그것도 참 이상하게 죽었다는 점, 이 죽음은 잠깐 죽는 게 아니라는 점, 따라서 부활할 수 없다는 점 들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날 이해할 수 있겠군. 잠시만 죽어지내자는 담임의 꾐에 넘어간 후로 나는 소생할 수 없었으니. 김 형사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서 시신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하… 내 이럴 줄 알았어.” 김 형사의 얼굴에 익숙한 표정이 번졌다. 그것은 골치 아픈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문이 없군요. 그럴 법도 하겠지.” 기왕 염산을 사용했으면 지문까지 말끔히 지우는 게 나았을 것이다. 경찰이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들 수 있을 테니. 김 형사도 이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타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쩌면 자살이 아닐까……. 막연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비슷한 광경을 꼭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뷰, 그 흐릿한 감각이 근거라면 근거였다. 낯선 이의 낯설지 않은 죽음은 이상하게도 내 자신을 낯설게 만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 경악할 참담함 앞에서 데자뷰를 운운하는가. 어쩌면 인간의 무의식은 지하수 같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두운 땅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밖의 엉뚱한 곳에서 분출하는 돌발적인 의식, 그것을 우리는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숨 죽여 지내던 그 음습한 의식이 어째서 지금, 이곳에서 솟구치는 걸까. 9 어느새 흉물에 익숙해진 나는 시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시신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리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게 자살이라면, 대체 왜 이렇게 죽었을까. 자살하려는 자들에게서 나는 삶의 의지를 엿본다. 나 여기서 뛰어내리겠어요! 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한강대교 난간 위의 사내는 위안을 받고 내려온다. 위로 한마디가 절망보다 클 수는 없겠지만, 위로 한마디에 세상을 달리 볼 수 있을 만큼 그는 생의 의지를 오롯하게 지니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노동자는 분신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포기하는 죽음이 아니라 염원하는 죽음이었다. 노동자는 재가 되었고, 재는 동료를 위한 비료가 될 수 있었다. 높은 데서 뛰어내린 말 없는 약자, 그들은 사실 피로써 항의와 시위를 한 것이며, 그 반항의 기저에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구가 배태돼 있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지만, 죽으면서 무언가 말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저 시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웅변을 발산하는 대신 염산처럼 속으로만 파고들었던 당신은 누구였고, 무얼 하고 살았으며, 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좀 남들처럼 알아듣기 쉽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까! 하지만 지문까지 증발해버렸으니 이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당장 알 길이 없어 보였다. 김 형사가 지갑을 뒤져봤지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마저 지워져 있었다. 어차피 신원을 감추려고 했다면 지워진 주민등록증은 지갑에 왜 꽂아두었단 말인가. 그리고 등에 맨 저 가방은 또 뭐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만약 이 사건이 자살이라 할지라도, 아마 그렇겠지만, 나는 일단 타살 사건으로 기사를 작성할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론이 확정될 때까지 시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당신을 지워버리는 악마」, 이 열 글자가 인터넷에 뜨는 순간, 내 기사의 인기는 폭발할 게 뻔하다. 나는 경찰의 수사 진행속도보다 훨씬 빨리 타자를 칠 것이다. 그들이 채 범인을 잡기도 전에 몇 건의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제2탄은 「기는 경찰 위에 뛰는 악마」가 될 것이다. 제3탄은 「미궁 속으로…제2의 살인의 추억?」정도가 적당할 듯싶다. 김 형사가 수사과장에게 정강이뼈를 까일수록 부장은 나의 어깨를 힘껏 쳐주겠지. 불쌍하지만 무능한 내 동기생 인턴 기자 둘은 어쩌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끔찍한 죽음을 이용해 정규직을 노리다니…. 죽은 이에게는 유감이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이웃하던 슈퍼마켓이 폐업하면 난 아이스크림을 8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두루마리 휴지는 개당 100원이다. 지금 자취하는 방도 자살한 학생이 쓰던 방이라고 매달 방세를 5만 원 덜 낼 수 있지 않는가. 아하, 그렇군. 난 그렇게 살아가고 있군. 쓰러진 이웃의 주검을 거름 삼아 활용하는군. 하지만 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10 김 형사는 한참을 뭔가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형사 특유의 피곤한 주름이 이마에서 잠시 사라졌다. “자살인 거 같아.” “네?” “자살이라고….” “어째서요?” 그는 번번이 매우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런 말투는 서늘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나는 공무원들의 사무적인 태도를 볼 때마다 한 대씩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성급히 자살로 몰고 가는 김 형사의 경솔함만큼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다. 그것은 나의 특종을 너무나 빨리 부정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기에 그렇다. “어째서 자살이라는 거죠?” 나는 내심 자살이라 추측하면서도 왜 타살로 몰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이따위 괴팍한 자가 스스로 죽어갔음을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는가. 사이코패스의 불발이 아쉬워서?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저런 방식으로 죽었어야 했을 저 사람에 대한 동정심일 수도 있다. 그래, 차라리 남이 죽인 게 낫겠다. 그게 오히려 훈훈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나에게도 인간애가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서 안도했다. 김 형사는 말을 이었다. 여하간 그의 말투는 졸릴 정도로 단조로웠다. “사체를 처음 봤을 때는 나도 타살을 의심했었어. 자네는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짬밥이 꽉 찬 형사한테는 감이란 게 생기거든. 설명할 수 없는, 뭐 그런 거 있잖아. 물론 현재로선 감일 뿐이야. 만약 타살이라면 가해자는 정말 미친놈이겠지. 좀 더 기다려보자고, cctv 분석 결과가 곧 나올 테니까.” 김 형사의 노련미가 증거로 뒷받침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ctv 분석 결과가 나왔다. 죽은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2시간 전에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고되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때만 해도 얼굴은 멀쩡했단다. 꽤 잘생기기까지 했다고 여경들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굉장한 분노를 느꼈다. 나의 예측이 맞아서일까. 아니면 세계 최고층 빌딩의 허술한 관리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부장을 기쁘게 해줄 수 없음에 실망한 것인가. 혹은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가. 난 샹송그룹이 옥상 관리를 허술하게 한다는 점, 따라서 가뜩이나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이 나라의 국격(國格)이라는 것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기사화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 기사가 인기를 끌기만 한다면, 그래서 부장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기쁨이 아닐까. 샹송의 허점을 낱낱이 파헤치면 부장은 나의 정의감에 박수를 쳐줄까? 아차! 샹송그룹의 회장은 우리 신문사의 대주주다. 젊은 시절에는 혈기를 조심하라는 격언은 두고두고 내 인생의 보배가 될 것이다. 격언은 또 장년에는 다툼을 삼가고, 늙어서는 탐욕을 멀리하라고 덧붙였다. 둥글게 살면서 무리하게 욕심 부리지 않는 부장의 인생이 바로 그러했다.
시신은 이미 말라 있었다. 태양 아래의 그는 아직 살아 있는 듯했다. 그는 생전에 축축한 곳을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면 기왕 죽는 마당에도 충격을 덜 받고 싶었던 걸까. 왜 하필 호수를 향해 떨어진 것이었을까. 자유낙하 하다가 우연히 그 지점으로 추락한 것일 수도 있겠지. 막 투신자살하려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왜 하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죽으려는지. 왜 굳이 높이 올라가서 추락하는지. 그냥 죽으면 안 되나. 혹시 자신의 한 줌 종말을 광고라도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죽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 간 자신을, 그렇게 결의할 수밖에 없는 못난 자신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던 것일까. …… 모든 파괴된 것은 어떤 증오에 연유한다. 스스로 파괴된 모든 것은 오래된 피로에 말미암는다.
11 “생전 그렇게 큰 소리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위치에너지는 9.8mh이므로 저 젊은이의 질량과 샹송빌딩의 높이에다가 중력에너지 9.8을 곱한 총합을 생각해보십시오. 참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셈에 밝은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안타까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조차 양적 환산을 통해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구체적인 수치로써 충격을 계량화 해 주자 이 죽음이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를 더욱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프라도 그려주었더라면 더 고마웠을 텐데. 점심시간이 이미 끝났음에도 구경꾼들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놀란 눈빛을 하고서 SNS에 속보를 전송했다. 어떤 사람들은 관찰하기보다는 사진부터 찍는 습관이 있다. 그 때문에 청년의 시신은 꼭 패밀리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나 파스타 수준으로 격하될 뻔했다. 하지만 논평이 등장함으로써 이 죽음은 어떤 의미를 띨 수 있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야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만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인데, 여기서 이렇게 죽어버리면 꺼림칙해서 산보라도 하겠나.” “요즘 젊은 것들은 나약해서 큰일이야. 저렇게 죽을 놈이라면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게야. 내가 군 생활 할 때만 하더라도 말이야…….”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았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인데…. 죽을 각오로 살아 봐! 무엇인들 못 하겠나.” “흠…. 샹송그룹에 취직을 못한 젊은이인 듯한데…. 쯧쯧. 그런데 우리 아들은 말이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관객들은 저마다의 입에 말풍선을 물고 있었다. 누군가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공공의 이익에 침해를 준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었다. 그의 탐구는 개인과 공동체 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나름의 통찰을 띠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삶이 죽음보다 훨씬 복된 상태임을 강하게 전제하고서 익숙한 논변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생과 사에 대한 일반적 견해에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상식에 호소하는 바가 컸었다. 어떤 이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매우 특수한 관계에 기초하여, 인간은 결코 가장 기본적인 정리(情理)를 배반해서는 아니 된다는 윤리적 정언(定言)을 선언했다. 그 역시 많은 사람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예리한 추측으로써 논평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세 번의 도전 끝에 결국 샹송 그룹에 입사할 수 있었음을 덧붙여 고백함으로써 주위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육사 나온 우리 아들은 전방에서 포병 중대장으로 복무하고 있다우. 연대장님이 마침 나랑 동향이라 한 시름 놓았지 뭐유.” “어머, 그래요? 우리 딸은 로스쿨 준비하다말고 다음 달에 시집가잖아요. 뭐 어쩌겠어요. 남자가 학벌이 조금 딸려도 그쪽 아버지가 어디 은행 감사라잖아.” 우리가 모든 이의 죽음을 애도할 필요는 없다. 만약 우리에게 그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건 죽음이 삶을 너무 침해하는 일이 된다. 관객들은 무척 현명하게도 이런 사실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저승의 안식보다는 이승의 개똥밭을 선호하는 긍정의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또한 그 개똥밭을 기름지게 일굴 줄 아는 개혁주의자에 가까웠다. 범죄와 일탈의 긍정적인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그로 인한 시민사회의 도덕적 각성과 재결속에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청년의 자살은 시민들로 하여금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는 어떤 태도로 생을 영위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환기시켜주었다. 역시 그는 죽음을 의미 있게 맞이했던 것이다.
꽤 시간이 흐른 흐르고서야 전시회는 끝이 났다. 관객들은 각자의 개똥밭으로 돌아갔고, 소동의 뒤처리는 김 형사의 몫으로 돌아왔다. 김 형사는 시신의 가방을 열어 유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책이잖아. ‘7급 국사’라….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학생인가? 어라? 책에는 여자 이름이 적혀 있는데….” 김 형사는 정체 모를 책의 등장에서 흥미를 느낀 듯했다. 만년 경사인 그였지만 호기심마저 몽땅 사라진 건 아니었다. “유리알…010-xxxx-xxxx.” 그는 책에 적힌 이름과 연락처를 중얼거리듯 읽고 있었다. “그럼 뭐야. 죽은 청년이 이 학생의 책을 훔쳤다는 게 되나? 훔쳤다 하더라도 굳이 왜 이걸 소지하고 있지? 죽은 후에 자수할 생각이었나.” 김 형사는 잠시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몇 초도 걸리지 않아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 “음…… 아냐, 아냐, 아무튼 자살이야.” 김 형사는 잠시 뭔가를 파고드는가 싶더니 그만두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살이라는 결론이었다. 그 수사결과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김 형사는 안도했다. “자살이야.” 그는 후- 하고 안락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의 태양은 어느새 샹송빌딩의 거구 뒤로 몰락했고, 짙은 그림자를 남겨두었다. 김 형사는 샹송빌딩이 선사하는 그늘에 감사하며 이마의 땀을 식히고 있었다. 빌딩 그림자가 그 주인을 닮아 비대해질수록 청년의 시신은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었다. 무대가 막을 내릴 때쯤 되자 태양은 마침내 청년을 비춰주던 하이라이트를 완전히 거둬들였다. 그는 어두워 보였다. 마침내 죽은 듯했다. “어이, 곽 순경, 이 책들은 분실물로 처리하고, 주인 찾아 줘.” 김 형사는 퇴근했다.
12 난 이 독특한 자살사건의 기사 제목을 구상했다. 무엇이든 제목이 가장 중요하다. 진리대학교를 다니던 친구와 진리대학교를 다니지 않던 내가 같은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벌써 두 번째 학사경고를 받았기에 제적 되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군에 입대했다. “학교에서 잘리느니 차라리 목이 잘리지!” 그는 스스로 저질러놓은 일이 자신의 가냘픈 목을 겨냥하고 있음에 울먹거렸다. 그의 제목은 목보다 소중해 보였다. “평점 0.99? 0.01 차이로 학고라고? 100미터 달리기 하냐? 소수점 둘째 자리로 손에 땀을 쥐다니 말이야.” 전액장학금을 수령한 상규가 나의 학점을 듣고 큭큭 웃었다. 하지만 상규는 학사경고 때문에 입대한 친구에게는 괴짜라는 말을 써가며 두둔했었다. “원래 똑똑한 애들 중에 괴짜가 많지. 여유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나 친구를 위한 상규의 우정은 자신에 대한 자포자기와도 같았다. “뱀의 송곳니로는 결코 용의 꼬리를 깨물 수 없어. 우리 학교 수석보단 차라리 진리대학교 꼴찌가 낫지. 난 아무리 아등바등해봐야 영원히 육두품일지도 몰라. 육두품 안에서 1등이든 꼴찌든 몽땅 육두품 아냐?” 상규는 열심히 공부하여 뱀의 대가리가 되었지만 용의 꼬리를 보고서는 슬그머니 독니를 감추었다. 물론 내가 제목의 긴요함을 처음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간 후가 아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대형 자습실을 갖추고 학생 전원을 그 속에 밀어 넣었다. 1호실에는 인문계 200명이, 2호실에는 자연계 200명이 아우슈비츠의 유태인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독가스를 들이마셔야 했다. 천장 한가운데에 달린 cctv는 360도로 쉴 새 없이 회전했다. 자습실에 감독선생은 따로 없었지만 공간 전체가 선생들로 꽉 찬 기분이었다. 만약 윤리교과서에 파놉티콘(panopticon)이 나왔더라면, 나는 이 학교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제러미 벤담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리교과서는 감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난 벤담의 철학을 암기하는 데 저항하지 않았다. 나의 친한 친구, 그러니까 학사경고를 두 번 맞고 군대를 간 그 친구는 인문계 1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건 그가 인문계에서 시험점수가 가장 높다는 걸 의미했다. 내 자리는 99번이었으나 웬일인지 1번 자리에 앉아 보고픈 충동이 생겼다. “우리 오늘은 자리 바꿔 앉자.” 내가 부탁하자 1번은 순순히 99번이 되어 주었다. 1번 자리의 의자에는 봉황문양이 없었으나 나는 왕좌에 앉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호기로움은 가난뱅이의 아들 녀석이 소공자의 정장을 한번 걸쳐볼 때 느껴야 하는 처량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2번은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고, 3번과 4번은 키득거렸다. 키득키득. 그게 문제였다. cctv는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포착했고, 마침 그날 당직이었던 담임이 자습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문이 닫힌 후의 소리는 부드럽지 않았다. 내가 뜨거운 뺨을 어루만지며 다시 자습실에 들어오자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때 비로소 자습실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개의 시선과 400개의 눈알과 2,000개의 손가락이 구성해놓은 질서는 바로 제목이었다. 난 자리는 바꿀 수 있었으나 제목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나의 제목은 설사 내가 1번 자리에 앉는다 할지라도 99번이었다. 1번이 설령 음습한 뒷골목 같은 99번에 잠시 머무른다 해서 그의 제목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번은 그의 본령이었고, 99번은 나의 본질이었다. 200개의 시선이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왕자와 옷을 바꿔 입는다 해도 넌 결국엔 거지야.” 잊고 지내던 동화 한 편이 염려하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여주었다. 나는 동화책의 충고를 받아들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반칙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후로는 계속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남을 수 있었다. 제목이란 게 이렇게 중요해서일까. 실력보다 우선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는 부장 역시 기사의 제목만큼은 신성시 하곤 했다. 한데 지금 난 왜 이토록 신중을 기하는 것일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첫 기사를 적어볼 때가 떠올랐다. 며칠 후 있을 정규직 전환자 발표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난 이 기사를 인턴 기자로서의 마지막 숙제로 제출해야 하고, 부장은 나를 성경책 잡듯 잡아주거나 혹은 내야 할 십일조처럼 자신에게서 떼어낼 것이다. 둘은 헌금이 되고, 하나는 성경이 된다. 헌금은 소비되지만, 성경은 부장의 손을 잡고 주일을 거룩하게 보낼 것이다. 덜덜.
“곽 형사님!” 책을 펼쳐보고 있던 곽 순경을 불렀다. 그는 불과 1년 전까지 수험생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책장을 찬찬히 넘기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마침내 책의 뒷면까지 훑어본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분명, 과정은 쓰나 그 과실은 달다, 라는 격언을 체험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책들 말인데요. 제가 분실자들에게 연락해서 돌려주면 안 될까요?” 곽 순경은 좋다고 했다. 그는 퇴근했다.
부장은 인간이 된 후에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자의 진짜 실력이란 바로 저널리즘에 있다는 가르침도 덧붙였다. 제목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제목을 더욱 빛내줄 것은 기자만의 개성 있는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부장은 우리 앞에서 저널리즘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스토리텔링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부장 말대로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훌륭한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여기 분실된 책의 주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은 죽은 청년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엔 둘이 떠나고 하나가 남는다. 저널리즘이든 스토리텔링이든 진실의 추구든 창작의 열정이든 나에겐 뭐든지 중요하다. 다음 주엔 한 명만 남으니까.
13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장이 말하는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선 갖추어야 할 조건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는 확고한 신앙, 신앙에 기초한 신념, 신념에서 나오는 성실, 성실로 빚어지는 신뢰, 신뢰로 열매 맺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그 조건으로 꼽았다. 인간관계에 기름칠을 하는 것은 약속 시간 준수이다. 그는 약속 시간 준수 여부로써 기자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지각을 탓하지 않았다. “어서 와. 이리 앉아, 한 기자. 수고했어요.” 부장의 아들이 금메달을 땄음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자식 자랑하는 게 팔불출이라지만 말이야….” 부장은 서론, 본론, 결론 혹은 기승전결을 매우 중히 여겼다. 그의 이야기가 본론으로 치닫는 걸 보니 내가 한참이나 늦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본론을 또다시 기승전결로 나누어 전개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공부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었다. 또한 특유의 성실함과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우리 아들이 이런 성과를 내보였다. 그 아이는 틀림없이 아비처럼 진리대학교에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자네들도 투입에 비례하는 성과를 내보이거라, 라는 매우 안정적인 논설을 구술하고 있었다. 나요한은 수첩 필기로써 부장에게 화답하였으나, 나는 그가 수동적인 인물임을 간파했다. 나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부장에게 경의를 표했다. “대단하십니다, 부장님!” “저희같이 젊은 사람들은 부장님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르실 수 있었습니까? 또한 아드님을 훌륭히 키우신 부장님만의 교육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청컨대, 시장하시더라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나는 부장에게 무엇을 질문하든 기승전결을 갖추었다. 그는 내가 일을 빨리 배운다고 칭찬하곤 했었다. 부장은 이번만큼은 거두절미하고서,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느냐!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눈에 힘을 실었다가,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가,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고개를 부드럽게 세 번 끄덕였다. 마침내 내가 눈을 깔고 사색에 잠긴 듯 흠- 하고 고뇌에 찬 신음소리를 내자, 부장은 내게 술잔을 권했었다. 나요한과 다른 동기생은 고기를 구워야 했다. 나는 동기생들이 술에 곯아떨어진 와중에도 부장의 곁을 끝까지 지킴으로써 원활한 인간관계를 체화하였음을 보였다. 부장이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그를 부축해줌으로써 된 사람으로서의 실천력도 과시했다. 부장의 달콤한 꿈이 그의 필름을 끊어놓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핸드폰 전원을 켜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객님, 실은 고객님께서 저의 마지막 상담 고객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고객님과의 상담이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고객님을 사랑하는 OO텔레콤 박보현 드림> 오후에 요금제 문의를 했던 통신사 상담원이다. 그녀가 날 짝사랑한다는군. 난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만약 전 인류가 비정규직 혹은 인턴이라면 우린 서로를 증오할 일이 없겠지. 모두가 사랑을 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뜻밖에도 세계평화의 해법은 고용불안에 있었군. 인턴 계약이 끝나가기에 내가 부장을 존경하듯 그녀 역시 마지막의 묘미를 아나 보지. 몇 분 후, 상담평가 메시지가 도착했다. ‘매우 만족’을 선택해주었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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