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식개선신문)=장예총,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사마귀 ②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미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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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름이 반드시 우리말로 돼야 한다는 억지처럼 속 좁은 게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샹송이라는 이름에는 유럽풍의 세련됨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름이 특이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혹자는 샹송빌딩이 세계 최고층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여 ‘아리랑’처럼 민족혼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명칭을 권했었다. 또 누구는 만방으로 뻗어가는 웅혼한 기상을 ‘고구려’라는 이름이 적절히 대변해줄 것이라 조언했다.
그런데 그 빌딩의 모양이랄 게 독특한 점이 전혀 없기에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려 해도 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까 그냥, 아주 크고 높은 빌딩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 한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로써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난 샹송빌딩이 ‘철(凸)’이라는 한자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글자는 욕이 될 수도 있고, 음란한 모양이기도 하므로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샹송빌딩의 뒷골목에는 눈치 없는 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그것은 매우 어색한 풍경이었다. 최고와 최저, 최선과 최악이 등짝이 서로 붙은 샴쌍둥이처럼 나란히 전개돼 있었던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전봇대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전깃줄, 대충 막 올려놓은 옥탑방 들은 도시의 경관을 해쳤다. 그 무질서와 혼잡함에 눈살을 찌푸리는 행인이 많았다. 여름에는 코를 막는 자도 있었다. 동네 초입에 갈겨놓은 오줌 냄새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골목 한가운데에 구토를 해둔 이도 있었다. 덕분에 그 동네 비둘기는 아침을 굶지 않았다. 비둘기 옆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는 사람들은 별 이유 없이 서로 멱살을 잡기도 했다. 뒷골목 집들 중 대다수는 방을 아무렇게나 막 쪼개 놓았다. 원래 4평 정도의 방을 2개로 나눈 식이다. 그래서인지 샹송빌딩 뒷골목에는 생각보다 참 많은 주민이 살았다.
도시 미관이 망가지는 것 같아요. 볼썽사나워요. 지저분해요. 냄새나요. 세계적인 도시에 어울리지 않아요. 외국인 친구 보이기에 부끄러워요. …… 언론은 시민의 원성을 빌려 뒷골목을 차츰 포위하고 있었다.
샹송 그룹은 뒷골목 주민들의 집을 몽땅 사주었다. 도매로 처리하다보니 가격도 도매금이었다. 염치없는 주민들은 항의했다. 언론은 님비(NIMBY)의 팽배가 성숙한 사회를 가로막는다고 질타했다. 핌피(PIMFY)가 공공선을 해한다고도 우려했다. 결국 부족한 보상금은 공공의 이익으로 상쇄될 수 있었다. 집은 숲이 되었고, 거리는 호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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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학교의 규범을 조속히 몸에 익혔었더라면, 나 역시 샹송 그룹의 일원이 됐을지 모른다. 조기교육은 확실했다. 교사들은 말했다.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라! 어려서 급사하여 깨어나지 못하였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죽어야 했다.
친구들은 잠깐 죽어 오래 살자 다짐했다. 잠시 참아 길이길이 즐기리라 위안했다. 몇 년 참으면 평생이 편하다고 했다. 대학만 가면 젖과 꿀이 흐른다고도 했다. 개중엔 그 젖이라는 말을 고이 기억해두었다가 용두질하는 벗도 있었다. 수음(手淫)을 하던 그는 소원을 말했다.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다, 이 손은 어느 여인의 손이다, 그 여인은 젖이 크고 섹시하다. 그러자 TV에서 많이 본 듯한 여귀가 그의 팬티 속에 정말 나타나주었다. 대학만 가면 여자들이 홀라당 다 벗는대. 색귀에 홀린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렇게 믿고 살았다.
부모들은 자식의 죽음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번을 정해 담임과 식사했다. 그리고 자식의 엉덩이를 담임에게 헌납하였다. 어미는 엉덩이 틈으로 인간을 낳고, 담임은 엉덩이로써 인간을 만들어갔다. 그들의 협업에는 포근한 정이 오갔다. 그럴수록 담임의 팔뚝이 굵어져 갔다. 아이들의 엉덩이에는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교복 바지가 반들거릴수록 훌륭한 시민이 되리라.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훗날, 화려한 부활로써 죽음을 승화시킬 수 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죽으라는 이도, 기꺼이 죽어가던 이도 부활의 실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재생은 모두에게 예정돼 있지 않았다. 덕분에 난 늘 죽어야 했다. 한편으론 기껍기도 하였다.
철이 바뀜에 따라 교문 위의 현수막은 걷히고 다시 내걸렸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죽어지내던 학생들은 현수막에 이름을 남겼다. 그들이 명예로워지자 순백한 현수막이 천사의 날개처럼 너풀거렸다. 사람들은 눈이 부셨는지 이마에 손차양을 치며 승천을 관람하였다. 경례하는 듯했다. 그리고 또 기록하였다. 올해를 빛낸 OO人! 진리대학교 29명 합격, 사법시험 7명 합격, 행정고시 5명 합격, 외무고시, 법원행정고시 및 입법고시 각각 1명 합격! ……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릴케가 축가를 부르자 모두 포도주에 취한 듯했다.
담임은 우리에게 성실을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성실(誠實)’이라는 말을 좋아했었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 나온다. 『중용』은 말한다. 성실이란 하늘의 모습입니다. 또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실하고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중용』은 참된 인간에 대해 2,500년 동안 사색하고 있다.
한문을 담당했던 담임은 오래된 고전을 간단히 재해석했다. 그는 성실한 자는 무엇이든 얻는다고 가르쳤다. 무언가를 가지지 못한 자는 성실치 못하게 살아온 것이라 했다. 낙관주의자는 환영받기 쉽다. 모두 그를 좋아했다. 존경한다고 했다. 참스승이라고도 했다. 국어교과서는 기표와 기의가 무관할 수 있음을 내게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난 그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침마다 7시까지 교실에 도착해야 했다. 다행히 일요일은 9시까지 등교였다. 담임은 늘 나보다 먼저 교실에 와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촌형은 7시가 출근이라고 했다. 나는 대기업에 다니기 위해 예행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담임 덕분에 나는 어째서 십계명에 ‘성실하여라.’ 라는 약속이 없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질투하는 신은 왕좌의 좌우에 수능과 내신을 앉히지 않는다. 그 신은 알고 있다. 인간은 섬길 우상을 찾아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는 것을. 오직 나만을 섬기어야 할지어다, 신은 경고했다. 오직 수능과 내신이 있을지어다, 담임은 겁을 주었다. 대체 누굴 따라야 하오리까! 나는 둘 중에 아무나 붙잡고 여쭤보고 싶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사랑했다. 예수든 부처든 도움이 되는 쪽을 믿어라. 수험생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종교에 의지해보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담임은 종종 이런 어려운 말을 했다.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십자가 위의 남자도, 해탈한 왕자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던 그들은 교실의 상담교사로 전락해 갔다.
교실 공기가 불편할 때마다 발칙하게도 도주를 꿈꾸었다. 빗장은 늘 풀려 있었다. 초병은 없었다. 누구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됐다. 울타리 너머로 황량한 사막이 보였다. 그곳엔 달콤한 오아시스도, 그늘도, 물도 없었다. 물론 친구도 없었다. 그냥 머물기로 했다. 머물러도 친구는 없었다. 오아시스도, 그늘도, 물도 나에겐 없었다. 그래도 그냥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가 부활의 요령을 익히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담임의 신병훈련조차 숙달치 못한 나로서는 샹송그룹에 얼씬할 수 없었다. 부활을 체험한 자만이 샹송 그룹의 환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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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따위로 살 텐가! 아버지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 다만 생활의 안정과 퇴직연금의 축복을 근거로 공무원의 길을 권하셨다. 부족한 봉급은 맞벌이가 해결해줄 것이라 조언하셨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말씀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인내심으로 연마된 음성이 나를 재촉했다. 아직 늦은 게 아니다. 넌 날 닮아서 원래 머리가 좋다. 본디 꿈이란 것은 어른이 될수록 작아지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공무원이 어디냐. 공무원 시험에 붙으면 가문의 영광이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지요.
잠시 죽어 오래 살고자 했던 친구들은 드디어 부활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번데기 주름이 활짝 펴져 탱탱하고 반질거려 보였다. 그때의 그 교복처럼 윤이 났다. 마침내 나 혼자 깨어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 뱃속에 들어앉아 탯줄로 목을 감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옛 지휘관을 잃었지만 탈영하지 않았다. 개중엔 새로이 지휘관으로 부임한 이도 있었다. 잘 훈련된 병사는 오합지졸이 되지 않는다. 교관의 가르침은 체화되었다. 그들은 항상 성실할 수 있다. 성실이란 말은 죽었다 생각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대체 무엇일까. 살면서 죽고, 죽어서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그들은 내게 무어라 충고한 적은 없었다. 대신 모임이 파할 때쯤엔 반짝이는 카드로써 친구의 방황을 일갈하곤 했었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자주 머뭇거렸고 주춤했었다. 딱히 그럴싸한 이유도 없음에도 난 뛰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이 악습은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계속해서 욱신거리다가 곪아버렸다. 상처를 조기에 치유하지 않은 자는 뒤늦게야 무리수를 둔다. 그러니 지금의 직장에서 어떻게든 정규직이 돼야 한다. 담임 말을 따를걸. 그가 현명했어.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까. 이제부터는 앞만 보고 살자. 제발 그렇게 살자. 빈정대지 말고 살자.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질 않는가.
어느 땐가, 상규는 대단한 명구를 얻어오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라는 말은 기억하기도 쉽고, 그 의미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는 저 출처 모를 명언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네 글자로 축약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탄했었다. 그는 결국 미쳤고, 세계 일류에 미치고자 하는 저 미친 샹송그룹에서 다른 미친 사람들과 함께 미친 듯이 일하고 있다. 더욱 미치기 위해! 미쳐가는 그가… 지금은 부럽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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