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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0/26 [06:56]
장예총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장예총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최봉혁 | 입력 : 2022/10/26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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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장예총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대상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장예총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김민주 -사마귀 ① 숲의 요정

 

비가 그쳤다. 얕은 숲 너머의 도로는 지겨운 소음으로 번다했다. 이따금 낡은 버스가 요란스레 굴러갈 때마다 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눈앞의 호수처럼 평화롭고 잔잔해졌다.

비가 그친 지 한참이 지났다. 두터운 잿빛 갑옷을 걸쳐 입은 하늘은 힘겨워했다. 그것은 무거운 갑옷을 벗으려고 몸을 요리조리 비틀어댔다. 하지만 그럴 깜냥이 없는지라 무작정 한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처럼 하늘은 납작 엎드려 아주 느릿하게 포복했다.

오래된 우산에는 살이 한 개 빠져 있었다. 채 가시지 않은 빗방울들이 우산의 움푹 찌그러진 사면을 따라 떨어졌다. 제 차례가 된 빗방울은 정해진 운명처럼 내 무릎에 떨어져 조각났다. 어쩌면 저 물방울이 터질 때마다 그 속에 사는 작은 요정들이 희미한 비명을 내지르는 게 아닐까. 나의 시력이 그들을 볼 수 없듯 청력 또한 닿을 수 없을 테니까. 무릎에 스미는 빗물을 느끼며 나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비 그친 하늘엔 바람이 일었다. 숲의 나무들이 술렁이자 물수제비가 수면 위로 퍼져나갔다. 바람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고, 호수는 뒤집어져 작은 파도를 일렁이고 있었다.

 

2

호숫가 벤치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도시의 부랑자였다. 시멘트 바닥에서, 아스팔트에서 방황하다가 학원으로 쫓겨 다니던 집시였다. 풀밭을 보고 피가 끓는 야생마처럼 그들은 뛰어다니고 있었다. 뜀박질에 미숙한 한 아이가 넘어졌다. 아이는 한동안 잔디에 얼굴을 묻고 풀냄새를 맡는 듯했다. 풀려난 죄수가 자유의 대지에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나는 순식간에 늙어버렸다. 늙어간다는 건 더 이상 뛰지 않음을,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음을, 한가로움이 죄가 되지 않음을 말한다. 난 뛰지 않고, 친구가 없고, 한가롭다. 나는 늙어 있었다. 그렇기에 벤치를 양보해야 했다.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어느 가족을 위해 일어섰다.

썩어가는 나무밑동이면 어떨까. 상관없었다. 표면엔 버섯인지 곰팡이인지가 먼저 앉아 있었다. 곰팡이를 깔고 앉았다. 난 여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름 모를 풀이 버릇없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나는 풀줄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게 바라보았다. 말라붙은 가래 덩어리가 풀줄기에 붙어 있었다. 나는 역겨워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응시했다.

헛것을 보았나. 누런 가래가 쩍 갈라지더니 초록빛 요정들이 뛰쳐나왔다.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 가래를 찢고서 나왔다. 세어보지 않아도 수천 마리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나는 저 요정들이 물방울 집을 잃어 가래 속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각각의 요정들은 등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얼굴은 뾰족한 삼각형이었는데, 비좁은 덩어리 속에서 사이좋게 모여 살려면 저런 도형이 적합하리라 여겼다.

나는 한참이나 요정들을 관찰했다. 마치 동화나라에 초대된 기분마저 들었다. 거대한 도시의 한 복판에 자리한 호수, 그 호수를 둘러싼 숲 어딘가에는 동화나라로 이어지는 탈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 잡초 줄기가 그 통로의 열쇠이길 바랐다. 저 줄기를 좌우로 두세 번 꺾었다가 보드랍게 문지르면 문이 열릴까? 아니다,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어쨌든 저 줄기 속에 관통해 있을 좁은 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뿌리가 있겠지. 그 뿌리의 복잡한 갈림길에서 방향을 잘 택한다면 난 초록요정의 나라로 갈 수 있겠지. 요정들의 환대를 받으며 신세계에 입성하겠지. 어쩌면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진 집에 살며, 초콜릿 침대에서 잘 수도 있겠지. 선량한 요정들은 아침마다 내 귓전에서 윙윙거리며 나의 단잠을 깨우겠지.

사각사각사각사각. 희한한 소리가 나를 환상 속에서 건져 올렸다. 나는 물에 빠졌다가 구출된 사람처럼 또다시 멍해졌다. 사각사각사각사각. 이것이 무슨 소리일까.

사각사각사각사각. 소리는 여전히 미약했다. 더러 숲 너머로 요란한 경적이 울릴 때면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빨간 신호등이 도로의 소음을 붙잡아둘 때에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소리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괴음이 나를 포위해 오는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야! 나는 환청에 시달리다가 끝내 고함을 질러야 하는 안타까운 사람처럼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여기야. 무언가가 나를 이끌었다. 어디라고? 여기야. 이쪽이라고. 여길 봐.

 

3

갓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사마귀들이었다. 그것들은 형제의 숨통에 도끼 같은 앞다리를 푹 쑤셔 넣었다. 아직 무딘 칼날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연약한 동족을 살육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형제가 형제와 어깨동무를 하는 대신 형제는 형제의 목을 쳐 갉아먹고 있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저 살고자 형제를 뱃속에 욱여넣는 걸 탓해야 할까. 도끼를 휘두르지 않으면 자신이 두 동강 난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사마귀 새끼가 내 앞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동생을 씹던 한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넌 이겼어! 장하다! 교미를 끝낸 네 어미가 너의 아비를 갈아 마시던 장면을 난 똑똑히 기억한다. 너는 그 아비의 분해된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이어 붙여져 탄생하였겠지. 그리하여 하나의 아비는 수천, 수만의 새끼로 쪼개져 영원히 살 수 있겠지. 장차 너도 그 길을 좇겠지. 너의 어미는 너의 아비를 먹었다. 어미의 패륜을 탓하지 않은 넌 지금 형제를 박살내고 있구나. 사각사각.

초록빛 요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래 뚜껑을 열어봐도, 줄기 속을 뒤져봐도 동화나라로 갈 통로는 없었다.

도시에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둘러싼 숲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쭈그려 앉아 있고, 내 주변엔 사마귀 새끼들이 죽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형제를 배반한 사마귀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고, 나는 어느 축축한 숲에서 곰팡이를 깔고 앉아 있으며, 숲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호수에 면해 있고, 그 호수는 말도 안 되리만치 거대한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 도시에 내가 산다. 사마귀도 산다. 그러니까 나와 사마귀가 함께 산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잿빛 갑옷을 벗은 하늘은 맨살을 드러냈다. 누렇게 뜬 피부 위에 붉은 핏빛이 번져 있었다. 쓰러질 듯 버티던 해는 결국 어느 거인의 등 뒤로 넘어갔다.

거인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내 얼굴을 흑백의 야누스로 갈라놓았다. 나는 우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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