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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삐 와 유니가 함께 쓰는 추억일기

고정자 | 기사입력 2024/07/22 [00:09]

하삐 와 유니가 함께 쓰는 추억일기

고정자 | 입력 : 2024/07/22 [00:09]

 


(장애인인식개선신문=마곡 수필)

2. 두 번째 일기→ 100일 맞이 이벤트
  ○ 2015년 7월 ×일 
    유니와 만나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지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보람이고, 삶이 즐겁다. 
    오늘은 예쁜 케이크를 사다가 100일 맞이 축하 파티를 한다.

3. 세 번째 일기→ 365일 되는 날
 ○ 2016년 4월 ×일 
내일은 유니의 첫돌이며, 우리가 만난 지 1년 되는 뜻깊은 날이다. 유니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백화점 선물 코너를 샅샅이 뒤지면서 벌써 두 시간째 헤맨 끝에 바라던 선물을 구할 수 있었다.     

우선 위생적이다. 만지고 놀다 입에 물어도 괜찮다. 촉감이 부드럽고 색상도 예쁘다. 수공예 품이다. 다음날 유니에게 줄 선물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파티장으로 간다.

유니는 이미 도착해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니도 나를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나에게 덥석 안긴다.
오늘의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복받아라. 
축하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오늘의 주인공이 돌잡이로 뭐를 잡는지 관심 폭증이다.

진행자가 유니의 부모들에게 뭘 집기를 바라느냐고 물으니 두 사람 모두 거의 동시에 "돈이요" 한다. 순간 장내가 까르르한다. 주인공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사임당의 초상이 들어간 5만원권을 집어 든다. 또다시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유니가 효녀로구나.

너에게 축복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 잊지 말고, 앞으로 쭉 행복한 날이기를 바란다.

4. 네 번째 일기→ 하삐 가지 마.
 ○ 2017년 5월 ×일 
어느 월요일 저녁, 유니 외할머니와 교대 시간에 맞추어 가방을 챙기고 옷을 집어 드는데 갑자기 유니가 울음보를 터트린다. 
   "하삐 가지 마."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진주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나를 애타게 잡으려는 모습이  가슴을 후빈다. 안사돈 뵙기에 민망하기도 하고, 나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유니를 안고 달래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 가슴에 안겨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5. 다섯 번째 일기→ 유니야~! 계속 하삐라고 불러줘.
 ○ 2018년 5월 ×일
어느 토요일 저녁
그동안 나에게 계속 "하삐"라고 부르던 유니가 갑자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순간 나는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왠지 어색하다. 그래서 유니에게 부탁을 해본다. "유니야~! 나는 유니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것보다 "하삐"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좋은데~!" "으응~ 그럼 계속 하삐라고 부를게"
 

"그래, 고맙다. 앞으로 쭈욱 '하삐'라고 부르는 거야' 이렇게 약속을 하고 난 뒤 나는 '하삐'라는  애칭으로 굳어졌다. 그 뒤 가끔 누군가가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이내 "하삐야 하삐"라면서  지적질까지 한다.

 6. 여섯 번째 일기→ 한밤에 걸려 온 전화
   ○ 2018년 5월 ×일

어느 날 저녁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했더니 유니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수화기 저편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유니야, 왜 그래" 나는 이 시간에 전화한 것도 그렇고, 울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하~삐, 보고 싶어, 영상통화 해요"
나는 영상통화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보았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유니는 태연하게 "하삐, 나 우는 연기 어땠어?" 한다.
나를 두 번이나 깜짝 놀라게 한다.

7. 일곱 번째 일기→ 하삐, 잘 줌 셨어.
  ○ 2019년 5월 ×일 
일요일 점심시간에 전화기를 열어서 카톡 문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유니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하삐잘줌셨써" 보낸 시간을 보니 아침 일찍 보낸 것이다.
아니 이 아이가 언제 문자까지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문자를 받고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을 해 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실망했을까?

8. 여덟 번째 일기→ 사랑의 열병
 ○ 2020년 5월 ×일
    "하삐 사랑해"
    "하삐 아주 많이 사랑해"
    "이 세상에서 하삐가 제일 좋아"
    아까부터 이 아이는 내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인다.
    그러면서 양팔로 내 목을 감싸 안고 힘껏 끌어안는다.
    "유니야, 나도 우리 유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하삐, 유니는 하삐를 우주만큼 사랑하는걸"
    하하하~ 나는 껄껄 웃는다.
    “유니야~ 우주만큼이 얼마나 되지?
    “에이, 하삐는 하늘하고 땅 사이까지 전부 다~아”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유니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유니야~! 제발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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