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11> 다시, 포천
<11> 다시, 포천
포천에 이르자 관리 몇이 나와 반겨주었다. 낙향의 길이 충분히 멀어 그간 궐에는 일이 있었고, 나는 관리들을 통하고 나서야 한음의 유배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음이 재차 상소를 올리니 그 내용이 겉으로는 살제(殺弟)를 반대하는 글이었으나, 결국 그것은 임금의 길을 더욱 곧게 하는 글이 되었다. 임금은 한음을 용진에 유배함으로써 그 글을 받아들였다. 같은 선비로 남기 위해 때가 오면 나도 나의 글을 써야 했다. 몸이 나아 다시 한성에 닿는 날 임금에게 올릴 상소를 생각하며 날을 보냈다. 그러나 쉬이 써지지 않았다. 한 줄 잇는 것조차 어려워 몹시 괴로웠다. 글이 뜻을 따르지 못할 때 문인이 가야 하는 곳은 산천이었다. 나는 내 향의 강을 자주 찾았다. 몸이 불편하니 탄이 나를 도와 큰여울에 함께 자리하였다. 내가 생각에 젖어 홀로 있기를 원할 때 녀석도 화적연(禾積淵)의 모래밭을 맴돌며 산천을 눈에 담았다. 나의 향은 물이 많고 가까이 있었기에, 흐르는 것에 사람들이 곧잘 제 뜻을 띄워 보내곤 하던 곳이다. 나 또한 입직 전에 맑은 것을 닮아 보려, 청운을 선유담(仙遊潭) 물길에 띄우곤 하였다. 한음이 유배된 용진 또한 나루가 있어 물이 닿고 배가 통하는 곳이었다. 스스로 죄인이 된 벗님을 생각하는 나의 뜻을 물길을 통해 전하고 싶어졌다. 나는 눈을 바삐 움직여 내 향의 산천을 마음에 더 담기 시작하였다. 몸이 굳은 뒤로 생긴 나의 습관이다. 쉬이 움직이지 못하니 눈으로 전하거나 담아내는 것이 많아졌다. 백로주(白鷺洲)의 낮은 바위산에 닿아 그 몸피를 눈으로 꿰매니, 작지 않은 뱃몸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몸이 굳은 바위라 나아가려면 돛이 있어야 하니, 나는 다시 창옥병(蒼玉屛)에 닿아 바위 병풍을 빌려 그 뱃몸에 달았다. 눈이 벗을 생각하여 배에 돛을 달아 올리니, 그 몸이 물을 알고 길을 이어 뜻을 전해줄 것만 같았다. 나의 괴로움을 모르고 나의 향 포천은 감히 아름다웠다. 그에 젖어드는 것이, 낙향한 노신은 때론 두렵기까지 하였다. 함부로 아름다운 것들은 늘 사람을 작게 만들곤 한다. 그것들은 자주 자연이라 불리었다. 아름다운 것은 늘 비애 앞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이 사실이 아팠다.
좀처럼 곁을 비울 줄 모르던 종은 주인의 향에 이른 뒤로 몸의 흐름이 달라졌다. ― 눈에 담으니 혹 익숙하더냐. 내가 탄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게 기다리는 일로 늘 제 존재를 알리던 녀석이다. 포천에 닿고부터는 녀석이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으며 나를 따랐으나, 그것이 여느 때와 다른 결의 부재로 느껴졌다. 하루는 탄을 찾으니, 내게 오는 녀석의 걸음에서 구수하고 마른 내음이 올라왔다. 나에게 또한 익숙한 것이었으니, 그 내음이 큰여울의 모래밭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 눈에 익어 또 갔던 게로구나. 내 너의 근본을 알고…… 또한 알지 못한다. 오래 전 나는 너를 바로 이곳 포천에서 거두었다. ― ……짐작하였습니다. ― 너의 입을 볼 때면 항시 마음이 편치 못했다. 가엽게 여겨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녀석의 찢어진 입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살지 못할 너를 놓아, 그대로 죽게 두려 했던 앞날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인도 종도 저의 향에 닿았다. 사람이 다시 제자리에 닿으면 마땅히 고쳐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하여 묵은 일을 녀석에게 전해주었다. ― 먹을 것 없던 날에 네 입이 왜의 칼에 찢어졌고, 입이 곪아 농이 차니 너는 구태여 먹을 수도 없던 상태였다. 그러다 어린것이 낟알 대신 제 농을 목에 넘겼으니, 그 풀에 열이 올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 ……. ― 하여 나는 외양간 건초 더미에 너를 덮었다. 그 더미로 너의 울음을 막고, 네가 농으로 옮길 역질 또한 막으려 했다. 나는 너를 놓으려 하였다. ……서운하겠구나, 네가 평생 따른 내가 이리 말하니. 지난 앞날을 말하는 일에서 늙은이는 대개 반김 받지 못하곤 한다. ― 울음이 그쳐 며칠 뒤에 살피니, 죽어 조용한 줄 알았던 네가 기어코 살아 있었다. 너를 살린 이는 마의의 손을 돕던 자로 천역을 진 관비였다. 탄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뱉는 숨이 사뭇 뜨거워진 듯하였다. 녀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가다듬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혹 그분께…… 지금 제가 닿을 길이 있습니까. ― 알지 못한다. 그 또한 스스로 근본을 알지 못한 자였기에, 내가 알 길은 더욱 없었다. 그는 너를 살리고 얼마 뒤 사라졌다. 나는 괴로울 종에게 구태여 말을 이었다. ― 내 염치없으나 말을 더 주어도 되겠느냐. 탄이 고개를 낮추어 듣고자 하였다. ― 갚을 이를 모른다는 것은 외려 모든 이에게 갚을 수 있는 일로 삼음이 마땅하다. 허니 때가 오는 날, 그 일에 남은 숨을 보탤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마지막까지 염치없는 늙은이로 남기로 하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종아이들 몇이 사라졌다. ― 가산댁에게 물으니, 개중에 정이 통하게 된 사이가 있었던 듯합니다. ― 두어라…… 찾지 말거라. 나는 주인됨이 옳지 못한 사람이었으므로 탓하지 않았다. 녀석들과 함께 얼마간의 소금과 쌀 그리고 솥이 사라졌다 하여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종은 줄었으나 내 몸의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여 탄이 먼저 나서, 아이 하나를 더 구해왔다. 내가 탄을 몹시 나무랐으나 어미가 친히 넘긴 것이라 하여, 사정을 짚어보고는 결국 아이를 받기로 하였다. 가산댁이 아이를 맡아 일을 가르쳤다. 가산댁은 선친이 벼슬하실 때부터 나의 본가를 살핀 고마운 여인이다. 종이 도망가 손이 줄고 이제는 그녀도 늙어 일을 성기게 꾸리니, 가끔 아이의 실수가 나의 옷가지나 밥상에 전해오는 일이 생기곤 하였다. 녀석이 손이 커 양이 자주 넘쳤고, 산에서 하루 해온 것이 많았는지 같은 나물이 며칠 계속 올라왔다. 어여쁜 실수였다. 버리는 일을 없애주려 애써 많이 먹었다. 하루는 비가 오래 내리도록 아이가 돌아오지 않아, 탄이 산으로 가 녀석을 찾아 왔다. 온몸에 누런 것을 잔뜩 묻힌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느타리였다. 광주리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가산댁을 불러 젖은 아이를 씻긴 뒤 안으로 들였다. 늙은 종을 대신하여 내가 처음으로 꾸짖으려 하였다. ― 큰 것과 넘치는 것은 구분하여야 한다. 안으로 든 아이는 상황을 몰라 겁을 먹을 줄도 몰랐다. 앉아 있는 것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손끝은 제대로 씻기지 않은 듯 녀석의 손톱에 누런 것이 그대로 껴 있었다. 아이의 손톱과 눈을 번갈아 보던 나는 더 꾸짖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 캐는 것이 좋더냐. 비에 그리 젖어가며. 녀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녀석이 캐온 것을 생각하였다. 느타리가 자라기에 포천의 기후는 퍽 알맞아 그 내음과 맛이 좋았다. 느타리는 사는 일에 젖는 날이 많은 민초들처럼, 젖는 날이 많아야 사는 버섯이었다. 몸 둔 곳이 늘 습하고 차가운 윗목이라는 것 또한 같았다. 하여 손이 큰 아이는 젖는 것도 모르고, 저와 닮은 것이 마냥 좋아 한가득 캐어왔음이라. 선비가 글월을 익히기 훨씬 전, 민초는 키 작은 몸으로 더 중한 것을 익힌다. 상소는 몇날 며칠을 고심만 하여 줄곧 쓰지 못하다가, 그날 겨우 간신히 글 하나를 써 아이에게 이름으로 주었다. 크다는 뜻이었다. ― 날이 젖어 밤이 차니 일찍 쉬거라. 그리고 내 너를 앞으로…… 한이라고 부르마. 나는 한이 머무는 행랑에 불을 더 때게 하기 위해 탄을 찾았다. 잠시 녀석이 보이지 않다가, 곧 나타나 내게 오니 곁에 사람이 있어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좋지 못한 소식이 한탄(漢灘)을 넘어 기어코 포천에 닿았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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