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8> 추적
<8> 추적
궐내에 말이 돌았다. 대사헌의 국문 중에 박응서가 역모를 꾀하였음을 실토했다는 소문이 궐내 고관들 사이에 은밀히 퍼졌다. 모반은 시도되었단 사실만으로도 조정을 어지럽게 한다. 하여 며칠 양사의 책임자 선에서 조용한 국문이 뒤이어지고 모든 틀이 짜 맞추어진 뒤에야 조정은 벌을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죄와 벌을 명징하게 나누고 모반의 대가를 셈하는 일을 속히 처리한다. 때로는 누구를 죽이는 일보다 누구를 살릴지를 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모반을 처분하는 일의 본질이기도 했다. 나는 틀을 맞추려는 이이첨의 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이첨이 임금의 패기를 자극하는 일은 막아야 했다. 대북은 진실로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아니다. 젊은 군왕이 가는 길에, 아직은 초입인 그 길에 무효한 피가 뿌려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지 않아야 했다. 맨발로 걷는 임금의 길을 늙은 신하가 살펴 닦아야 함이 마땅했다. 하여 임금이 조정에서 하나를 택하고 파하는 일이 더 이상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일이 되어선 안 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죽은 자의 형을 찾아야 했다. 그런 와중 궐내의 흐름을 쫓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애태우며 탄을 기다렸다. 그사이 한음은 대비와 독대하였다. 뒤에 한음과 만난 자리에서 순서를 묻지 않았고, 한음 또한 먼저 순서를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비가 한음을 먼저 찾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선왕의 급사 후, 옥새를 쥐고 있던 대비는 큰 씨름 없이 그것을 세자에게 건네어 그의 군왕됨을 허락하였다. 그녀에겐 부친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있었다. 영의정 유영경과 소북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세 살배기이긴 하나 선왕의 적자인 대군이 있었다. 한 차례 시도는 해봄직한 세를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세를 놓았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사이 연흥은 연로하였고, 유영경과 소북은 주살되었다. 대비는 용상을 넘보지 않아 대군을 살렸다. 넘보지 않음이 곧 약조의 청이었고 임금은 청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연흥과 대비 그리고 대군을 궐에 허락하였다. 그마저도 거슬리는 것인가. 이이첨은 피지 않겠노라며 스스로 싹을 죽인 씨가 적통이라는 것이 거슬려, 정녕 그를 멸하려 하는 것인가. 고민이 깊어질 때 탄이 돌아왔다. 여드레 만이었다.
― 서얼은 억압받기에 외려 머리가 깨어, 열려 있는 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곳에 몸을 숨겼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궐은 한음이 살펴 주리라 믿었으므로, 시급함을 알고 탄과 나는 곧장 말에 올랐다. 나는 묻지 않았고 탄은 사라진 하나가 있는 곳으로 길을 밝혔다. 하여 탄에게 지난 여드레를 묻는 일은 말에서 내려 함께 걸을 때에서야 시작되었다. 우리가 말을 나무에 묶은 산지는 높지 않았으나 풀이 우거져 인적이 드물었다. ― 혹…… 사찰로 향한 것이냐, 억압받기에 열린 곳이라 하면 그곳밖에 없겠구나. ― 그러합니다. 죽은 박치인의 형은 한성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사찰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 목 두 개가 베어진 날, 시신 든 수레를 끌고 나가는 형리에게 부러 몸을 부딪쳤습니다. 넘어지며 손으로 가마니를 훑었고 두 시신의 얼굴을 모두 익혔습니다. 궐에서 말의 달림으로 불과 이각 정도, 그 후에 걸어 일각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 사라진 자가 친형이니 죽은 자와 닮은 얼굴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열린 사찰을 돌며, 익힌 얼굴을 찾으니 여드레 만에 닮은 이를 만났습니다. 그가 저를 극히 경계하였으나 대감의 존함을 알리니 그 자가 경계를 풀었습니다. ― 머리도 몸도 지혜롭게 썼구나. 탄과의 대화가 끝날 때쯤 망자의 형이 나와 우리를 맞았다. ― 대감, 소인 인사를 올립니다. 박가 치의라고 합니다. 박치의의 등 뒤로 그가 몸 숨기고 있던 작은 암자가 보였다. 암자에 들자 짙은 황토 내음이 올라왔다. 사찰은 근본이 없는 곳으로 주지 또한 없는 곳인 듯했다. 다만 비구니 몇 사람의 걸음이 오고가니, 그들이 지어 불도를 닦는 곳으로 보였다. 늙은 비구니는 묻지 않고 우리를 들여 주었다. 박치의에게도 그리하였으리라고 나는 짚어보게 되었다. 그녀는 여윈 것으로 암자 앞 마당을 쓰는 척 조금씩 시간을 두며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 대감의 명망을 알기에 뵙겠다고 하였습니다. 풍문으로 듣건대 일이 저희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고 하니, 바로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박치의가 입을 열었다. 탄은 경계를 서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물렀다. ― 죽림의 서얼들이 나의 유효함을 안다면 나는 이미 조정에서 무효한 걸세. 말을 끊어 예를 잃었으나, 시급하여 재촉 않을 수 없네. 듣고자 하는 말을 곧장 해줄 수 있겠나. 작은 암자에서 둘만의 대화가 이뤄졌다. ― 저희는 서로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박치의가 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끊지 않고 계속 듣겠단 의미로 침묵하였다. ― 용상으로 가 그 앞에서 죽으려 하였습니다. 군왕의 앞에서 서로를 베어 뜻을 전하려 한 것이지요. 허통을 외친 일곱의 숨으로 기록되고자 하였습니다. 한데 군왕에게 닿기까지 적지 않은 군관과 환관을 베어야 할 테니, 군사가 필요하였습니다. 하여 군자금을 모으려 한 것입니다. ― 계속 말하라. ― 이 일은 본디 선왕의 재위 시절부터 계획한 것입니다. 선왕 또한 서출이었으나 소용없음을 알고 저희는 세자의 즉위를 기다렸습니다. 한데 선왕이 급사하였지요. 저희 일곱 서얼의 바람대로 서자의 서자인 세자가 왕위에 올랐고, 그가 개혁을 이루고 있는 바로 지금이 적시임을 저희의 우두머리가 강조하였습니다. ― 박응서를 말하는가. ― 그렇습니다. 선왕의 급사로 시기가 당겨지자 박 형이 부족한 군자금 앞에서 기어코 불의를 행하려 했습니다. 한성으로 가는 재물을 탈취하겠다 하여 제가 빠진 것입니다. 방법이 옳지 않음을 탓하여 저는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제 아우 치인은 저 몰래 뜻을 강행한 것이지요. 일곱이 여섯이 된 연유가 이러합니다. 박치의의 말로 나는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정리가 되었으나 여전히 어지러운 상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이 일에 배후가 있는가. ― 있었다면 불의하게 재물을 강탈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우문에 박치의가 답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 역모라니 말도 안 됩니다. 꾀하지도 않은 역모가 박 형의 입에서 나온 것을 저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박 형은 성정이 드세어 구차하게 살길을 쫓을 사람이 아닙니다. 애초에 배후 없이 일곱의 서얼이 벌인 일이다. 그러니 일의 시작은 이이첨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었다. ― 역모가 아니었습니다. 칼을 들고 용상 앞에 가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칼은 임금을 베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앞에서 서로를 베어 뜻을 전한다면 서자의 서자, 그중에서도 차자인 임금만은 우리를 이해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선왕을 대신해 왜란을 막았던 그 서자 앞에서…… 같은 서출인 저희들은 목숨을 놓을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 박치의의 눈이 젖어 자못 붉어졌다. ― 누군가 허통을 약조하면서, 역모를 꾀하였다고 고변할 것을 사주했을 것입니다. 이이첨이었다. 시작은 저절로 일어난 일이나, 일이 틀어진 그들 앞에 나선 것이 이이첨이었다. 틀어진 일을 또 한 번 비틀어, 저의 극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 허나 약조는 거짓이겠지요. 박 형은 이미 일을 그르친 마당이었으니, 서얼허통이라는 뜻을 위해 거짓일지 모를 약조를 부러 믿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혹…… 일곱이 이 일을 도모하며 서로에게 남긴 증좌가 있더냐. 박치의가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제 품에 손을 넣었다. 임금이 극을 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나는 이이첨의 극을 막기 위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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