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2> 찢어진 것들<2> 찢어진 것들
찢어진 것들만 이 땅에 가득하였다. 해가 바뀌어 나는 병조의 수장이 되었고, 요동의 장수 이여송을 접빈하여 그와 군세에 관해 논하였다. 그가 이끄는 4만의 천병과 1만의 조선 관군이 연합을 이루었고, 평양으로 간 연합군은 계사년 1월 마침내 성을 탈환하였다. 명군은 기습으로 이룬 승리에 도취하여, 도망가는 적을 쫓는 시늉만 하고는 애써 타진하지 않았다. 화포 없이 기병만으로는 적의 조총 부대를 쫓기에 무리가 있었던 것 또한 그 이유였다. 평양을 탈환하는 데는 명이 먼 나라 불랑기에서 가져온 화포가 큰 역할을 하였다. 허나 무겁고 몸이 느린 그 무기는 추적에는 맞지 않았다. 도망가는 적들에게는 그런 사정을 살필 눈이 없었다. 하여 거짓 추적을 받았다는 것이 외려 그들을 더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 되었다. 절치부심한 적들은 아직 반도에 남은 병력을 모조리 그러모아 한성으로 향했고, 다시 맞닥뜨린 양군은 벽제관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적을 경시하여 무리하게 진군한 이여송의 부대에는 속도를 맞출 수 있는 기병만 있었고 포병은 없었다. 하여 우위가 된 적들은 3개의 대(隊)로 연합군을 포위하여 조총을 무자비하게 쏘아댔다. 그 포화에 몸이 천공되어 숨을 거두는 자가 쌓이고 쌓이니, 살아남은 자가 그 시신 위를 밟고 전투를 이어갈 정도였다. 도원수에게 이여송을 무리하게 따르지 않도록 일러두었기에 간신히 조선군의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벽제관에서 패하고 다시 평양에 몸을 숨긴 명군은 줄곧 교섭과 화의에만 집중하였다. 이후 연합은 흐지부지 찢어졌고 전쟁은 소강기에 접어들었다. 잦아든 칼날은 이 땅을 더 괴롭게 하였다. 싸움은 사라졌으나 적들과 명군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사년에 이어 갑오년마저 흉년이 들었다. 일굴 땅도, 땅 일굴 손도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난이 드셀 때 한 칼에 베여 사라진 이의 혼백보다 작금에 살아남아 있는 이의 말라비틀어진 육신이 더욱 억울하게 울부짖어야 했다. 임금은 평양에 눌러앉은 명군에게 보급을 아끼지 않았다. 명군은 그들이 가져온 불랑기의 화포와 닮아 무겁고 느렸으며, 자주 많은 손을 필요로 하였다. 하여 그들이 이 땅에 있는 것이 민초들에게는 적의 존재보다 더욱 가혹한 일이었다. 임금이 허락한 술상에 거나하게 취한 타국 장수가 토사물을 길섶에 게워내면, 짐승처럼 기어가 그에 혀를 갖다 대는 것이 오래도록 주리고 있던 이 나라 백성들이었다.
― 과인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이란 이치를 어기고 분조(分朝)를 두게 한 것은 국난을 유연히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임금이 환도 길에서 중신들을 모아 입을 열었다. ― 과인이 천병을 청원하는 일에 힘쓰고자 친히 어가를 이끌어 의주로 향했고, 마침내 그를 실현하여 우리가 평양을 다시 얻었다. 이제 한성에 이를 길이 곧 보일 듯하니, 이만 분조는 폐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백성의 바람이 모이기에 길이 어지럽지 않도록, 조정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임금이 명군을 얻어 평양을 수복한 뒤 가장 먼저 행한 것은 찢어진 조정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일이었다. 난이 닥쳤을 때 임금은 수레를 타고 북으로 향했다. 그 후 세자에게 책임을 넘겨 작은 조정을 이루게 하니, 젊은 혈기가 사지에 남아 나라를 살핀 그곳이 바로 분조였다. 임금이 세자와 함께 분조에 남긴 이들은 최흥원, 정탁, 유희림, 유조인과 같은 노신들로 모두 일흔을 바라보거나 이미 넘긴 상태였다. 임금의 뜻은 형(形)만 유지하라는 것이었으나, 세자는 나뉜 조정으로 찢겨진 나라를 진실로 돌보았다. 친히 호남까지 내려가 근왕병을 모으고 의병을 격려하며 민생까지 살필 정도였다. 하여 세자와 분조가 민심을 얻으니 이것이 임금이 친아들을 아주 정적(政敵)으로 여기는 일이 되었다. 임금은 환도 중에 세자를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 드디어 두 사람을 이리 뵙습니다. 임금이 찾지 않는 세자가, 나와 한음을 찾았다. 북녘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 저하, 그간 강녕하셨나이까. ― 이 사람은 그래도 남쪽에 있어 경들처럼 추위로 고행하진 않았잖습니까. 그보다 한음…… 부인의 소식에 내 마음이 찢어집니다. 세자가 한음의 한쪽 팔을 붙들고 말했다. 한음이 청원사로 명에 가 있는 사이, 그의 핏줄들이 머물던 고을에 적이 닿았다. 미처 도망 못 한 그의 부인은 적들에게 몸이 더럽혀질 것을 염려하여 자식들을 종에게 맡기고는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 한음은 이 소식을 청원 길에 들었다. ― 왕가의 수족 된 자가 먼저 살필 곳은 제 집안이 아니라 나라일 것입니다, 저하. ― 한음은 내게 큰 형과도 같고, 백사는 작은 숙부와도 같은 분입니다. 우리 나이의 다름이, 마음의 같음이 꼭 그렇지 않습니까. 세자가 한음을 위로하였다. 분조의 노신들은 지혜로우나 몸이 무겁고 당파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세자는 한음과 나를 특별히 가까이 생각하였다. 그중에서도 한음을 더 중히 여겼다. ― 다시 아래로 와주니 큰 힘입니다. 저마다 바쁠 것이나 종종 뵈었으면 합니다. 세자의 친모 공빈은 그가 2살 때 망인이 되었고, 성품이 드센 친형 임해는 세자와 조금도 가깝지 못했다. 친부인 임금마저 자신을 정적으로 여겨 미워하니, 그가 의탁할 사람이라곤 몇몇 신들 말고는 없었다. 다만 친모는 아니나, 왕후가 그를 어릴 때부터 아주 아꼈으니 왕가의 사람으로서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러나 왕후는 후사가 없어 입지가 모자란 상황이었다. 하여 그녀의 모정은 세자를 가까이 하여 정치적 동반자로 유효하게 하기 위한 결탁이었음을 오래지 않아 세자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왕가에서는 무엇 하나 정치가 엮이지 않는 것이 없었고 모든 일의 처음으로 그것이 존재했다. 모든 것의 ‘첫’이 정치가 되어야 했던 왕가는 세자를 일찍이 지혜롭게 만들고 또 한편 더없이 외롭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궐에서 세자는 늘 혼자였다. ― 자네…… 정말 괜찮은 겐가. 자리를 마치고 나온 뒤 함께 걷던 한음에게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 가까이 와서는 얼굴은 왜 찌푸리시오. 형은 내가 명에서 풍토병이라도 걸려온 줄 압니까. 나 멀쩡하오. 괜찮으니 그 얼굴 좀 펴시오. 그러다 늙습니다. 한음이 애써 농을 쳤다. 오랜만에 보는 익살이었으나 도저히 받기가 어려웠다. ― 일이 바쁘오. 우리 저 가련하고…… 또 위대한 고아를 좋은 군왕으로 만드는 일만으로도 족히 바쁠 것이니 제 집안의 일은 잠시 미뤄둠이 마땅하겠습니다. 나는 소용없음을 알고 더 이상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퇴궐하려던 차에 안면 있는 마의(馬醫)가 나를 찾았다. ― 살아날 수 있겠더냐. ― 그것이……. 나의 향에서 거두었던 아이의 일 때문이었다. 입 찢어진 그것의 근본을 모른다는 이유로 궐의 의관들은 아이를 치료할 것을 거부하였다. 적이 쳐들어와 일찍이 죽인 자가 다친 자를 고치는 자였으니, 고을에 남아있는 의원들도 없었다. 궐의 말을 고치는 마의 하나가 이를 알고 드문드문 녀석의 입을 살펴주었기에 한동안은 나아져 밥도 넘기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찢긴 것에서 농이 차고 그 정도가 심해 살리기 어려운 듯싶었다. ― 죽게 두어라. 한음의 말대로 바쁜 것이 있다면 무언가 미뤄둬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놓아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굳이 택해야 한다면 대개 그것은 이미 찢어진 것이 되어야 했다. 나는 전란이 닿은 때의 벼슬아치였기에 찢어진 것을 놓을 줄 알아야 했다. ― 농이 심하면 역질을 옮길 수 있을 테니 건초 아래 아주 덮어두어라. 더욱 바쁜 일이 있으니 어린것의 숨을 거기서 이만 놓기로 하였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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