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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1>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기사입력 2023/02/23 [08:01]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1>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입력 : 2023/02/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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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 젖가슴 1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 신문) 최봉혁 기자 =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1> 젖가슴 1

이야기에 이르며

 

1. 이 소설은 오성과 한음 그리고 포천을 다룬 이야기다.

2. 주요 문헌으로 조선왕조실록과 광해군일기, 백사집 등을 참고하였음을 알린다.

3. 큰 이야기의 흐름은 정사의 기록을 전적으로 따랐다. 그러나 이 소설을 문학으로서 유효하게 하기 위해, 쓰는 자의 상상력을 보태어 새로이 꾸렸거나 정설과 다른 해석을 부여한 이야기가 있음을 알린다.

4. 만들어낸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록 속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야기에 쓰이는 당대의 사회상과 장소명, 관직명 등을 말함에 있어 기록에 기초한 고증의 과정을 거쳤음을 알린다.

5. 그럼에도 고증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쓰는 자의 잘못임을 밝힌다.

 

차례

 

 

 

<1> 젖가슴 1

 

<2> 찢어진 것들 4

 

<3> 맞닿은 둘 7

 

<4> 베어진 머리 10

 

<5> 대립 13

 

<6> 검은 옷 16

 

<7> 사라진 하나 19

 

<8> 추적 22

 

<9> 서자와 서자 25

 

<10> 반신 28

 

<11> 다시, 포천 31

 

<12> 34

 

<13> 독대 37

 

<14> 모래 40

 

 

철령 높은 봉에

 

철령(鐵嶺)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山寃淚)를 비삼아 띄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 본들 어떠리

 -오성부원군 백사(白沙) 이항복-

 

<1> 젖가슴

 

젖가슴이 베어졌다.

포천 현감 정득겸의 전령이 의주에 닿았다. 여인 열다섯이 큰여울 모래밭에 시신으로 버려졌다고 했다. 선전포고를 가장한 적의 희롱이었다. 전령이 가져온 장계에서 정득겸은 무던한 어투로 싸움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에 덧붙여 전령은 망자들이 포천의 여인은 아니었고 멀리서부터 끌려온 듯했다고 고했다. 나는 찢어지다시피 해졌을 치맛자락의 끝을 떠올렸다. 뜻이 있는 죽임이었다.

가토 기요마사의 짓임을 직감했다. 내가 임금을 호종하는 동안, 도성을 지난 놈의 부대는 금천, 이천, 곡산을 차례대로 파하여 북상하였다. 반도의 목을 베러 함경에 오르는 길이었으리라. 이 땅의 젖가슴 부근에서 놈은 뜻을 전한 것이다. 젖줄을 끊겠노라고. 기어코 이 땅을 불모로 만들겠노라고. 대국의 앞자락에 작게 내어진 이 나라는, 적들에게 터가 아닌 길이었으므로.

우참찬은 살피고 옴이 마땅할 것이다.

임금이 내게 말하였다.

포천은 그대의 향()이 아니던가.

또한 명하였다. 살피고 난 뒤엔 철저히 막고 오라는 암명이었다. 임금은 영변에서의 일 이후로 줄곧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임진강의 패보가 전해져 평양 행재소를 파하고 의주로 향하던 길, 영변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나와 행렬의 꼬리로서 따르기를 간청하였다.

쇤네들은 며칠 주려도 호개놈도 잡아옴네다. 어드메로 가든 짐이라도 끌 터이니 그저 따르옵게만…….

그날 임금은 가마에 앉아 한 마디 말로 영변의 꼬리를 잘랐다.

마부는 어가의 일이 바쁜데 어찌 길을 지체하는가.

변의 민초들은 도성의 백성들과는 달랐다. 임금의 그 말에 가마에 돌을 던지기는커녕 한 무리는 혼이 나간 듯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고, 또 한 무리는 짐작하였다는 듯 아무 기색 없이 저마다의 초가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열의 끝을 호위하던 종사관에게 기어코 다른 무리의 꼬리들이 잡히고 말았다. 형조참의 김규열은 벌의 몫을 종사관에게 건네었다. 종사관은 뜻을 알았다는 듯, 꼬리에서 남정들만 골라 군졸들로 하여금 정강이를 마구 짓밟게 했다. 임금이 천한 행형을 보거나 듣는 일은 없었기에 형을 치르고 군졸들이 열에 복귀한 것은 한나절이 지난 뒤였다. 열은 그 사이 한 고을을 들렀고 아낙들은 말린 생선과 술 몇 말을 내어왔다.

그날 임금은 맛이 박하다며 혀를 찼다.

 

우참찬은 곧장 채비하여 떠나라.

임금이 나의 발길을 재촉하며 종사관 다섯과 군졸 수십을 붙여주었다. 영변에서의 일을 반복치 말 것을 전하였음이라. 큰여울 여인 열다섯의 죽음으로 포천에도 적들의 발이 닿았을 터, 남은 민초들이 꼬리로 붙지 않게 할 것을 명하였음이라.

말에 오르기 전, 포천 현감 정득겸의 전령을 불렀다. 길을 함께하기로 한 그에게 앞을 밝힐 것을 명하던 무렵, 임금은 다시 나를 찾았다.

 

바로 떠나되, 필히 요동의 장수가 당도하기 전 돌아오라.

요동의 장수가 오고 있었다. 청원사 한음이 이윽고 명에 닿은 것이다. 앞서 명은 3천의 군사를 우리에게 보내었으나, 평양성에서 매복하고 있던 왜군에게 대패를 당했다. 한음은 왜의 병력이 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병부상서 석성에게 직접 알리겠노라며 청원사로 다시 떠났다.

그리고 청원이 성사되었다. 한음이 오고 있다. 장수가 오고 있다. 4만의 원병이 압록강을 건너오고 있다. 한음의 발 빠른 전령은 의주로 오고 있는 그가 이여송이라는 장수임을 알렸다.

포천의 상황을 헤아리고, 가토 기요마사의 진로를 살피고, 돌아와서는 이여송을 맞아야 한다.

신 이항복, 명을 받들겠나이다.

나는 큰여울로 향했다.

 

 

나는 나의 향에 다다르는 일이 두려웠다. 적의 칼에 베어져 어디선가 나뒹굴고 있을 정득겸의 머리를 수차례 떠올렸다. 적이 가까워 오자 어느 기암의 끝에서 무수히 던져졌을 육신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떠다닐 강을 떠올렸다. 큰여울을 떠올렸다.

나는 허깨비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아스라이 맴돌 때마다, 내 향 포천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한때는 이 시름 모두 놓을 때면 향으로 돌아가 권농하고 시부를 지으며 살겠노라 작심하며,

나는 조정을 버텼다.

 

그러나 당이 나뉘고, 난이 터지고, 쟁이 커지자 편전에는 외려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묵음에 현기증을 느꼈다. 편전을 울리는 목소리는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리 지어 서 있는 신들의 등 뒤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현현히 살아있는 실체였다.

그것들은 서로 겨루지 않고, 서로를 견디기만 하였다. 견디고 견디다 어느 하나가 파하여지면 또 다시 다른 쟁으로 서로 견디기를 반복하였다.

 

파하는 일은 임금의 몫이었다. 하나를 택하는 일은 하나를 파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조정의 순리였다. 용상의 뒤에도 실체 없는 실체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등 뒤에도 무언가 서있으리란 공포를 느꼈다. 허깨비였다. 모두가 허깨비였다.

 

사람 아닌 허깨비에게 제 향이란 없는 법이기에 포천은 이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여겼다. 입직 후 그런 세월을 보냈다. 그런 내게 임금이 향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나는 아흐레 만에 포천에 닿았다. 박한 날씨와 험한 길목에 걸음들이 자주 지치고, 자주 추위에 떨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머리 올린 여인 하나가 나를 맞았다. 지레 도망간 객줏집 주인의 첩이라고 했다.

여인은 박하지 않게 내게 예를 차려주었으나, 그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처자들은 나를 개의치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정득겸의 전령이 그네들을 다그치려 하기에 말렸다. 그는 현장에서 정득겸의 부고를 듣고 마음이 몹시 상한 상태였다.

 

여인은 하루 만의 일이었다고 전했다. 놈들이 한번 크게 휩쓸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토에게 포천은 함경으로 향하는 길목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놈이 칼날을 쥐는 시간은 하룻밤이면 족했을 것이다. 그 탓에 이렇게 간신히, 산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드문드문 보이는 송장을 제하고, 성한 남정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깊지 않은 구덩이에 새앙머리 처자들은 송장을 옮겨 묻었고, 주변 땅에 불을 놓았다.

소첩이 듣고 익힌 바가 적어 고작 이리밖에 보살피지 못합니다.

돕는 자 중에 남정은 거의 보이지 않네. 힘쓸 자들은 정녕 다 죽었는가.

 

괜한 물음이었다. 나는 죽은 자를 옮기고 죽은 땅에 불 붙이는 저 처자들이 앞서 나를 대하던 태도가 이해되었다. 그네들은 지난날에 벼슬아치와 남정들의 모습을 겪은 이들이다. 적이 오기 전이든, 적이 오고 난 후든. 심지어 살아서는 객줏집 첩년 따위가 무엇이라고 나서는가, 하며 다친 몸을 끌고 떠났을 그 투박한 걸음도 있었으리라고 나는 금세 짚어보게 되었다.

 

내가 너무 늦었다. 늦었다는 말이 염치가 없을 만큼 늦었다. 다치는 밤이 지나고 고치는 낮에 당도한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따라온 군졸들을 시켜 고치는 일을 돕게 했다. 개중에 체구가 작은 자들을 둘씩 추려 한 몸이라 일러주었고 떠나는 길에는 말 한 필씩만을 허락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남는 말은 향의 사람들에게 주어 향을 고치는 데 쓰게 했다.

 

돌아가는 길, 어느 고을의 허름한 의원에라도 다친 자들을 옮기기로 하였다. 가망 없는 자는 버려야 했다. 살 수 있는 자를 택했다. 가장 어린 것은 칼끝이 얼굴에 닿은 듯 입 한쪽이 아주 찢어진 아이였다. 핏덩이의 어미가 적의 칼날 앞에 아이를 안았음이라. 그 안음의 길이가 꼭 손가락 하나만큼이 부족하였음이라.

여인에게 이름을 물었다. 입직 전의 오랜 시절, 나의 향에 머물며 몇 번이고 들은 듯한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여인은 그 사이에도 향을 보살피는 일이 서투른 처자, 아니 계집아이를 불러 일손을 고쳐주었다. 아이의 이름 또한 흔한 이름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내게 종사관 하나가 나서 물었다.

 

참찬 어른, 다시 의주로는 언제 향하실 겝니까.

오직 내가 가진 허깨비 같은 이름만이 퍽 생경하였다. 현기증이 일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진눈깨비가 내렸다. 각흘산의 높은 봉 위에서 젖물 같이 계속 흘러내렸다.

임진년 11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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