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식개선신문) 어멍
조요섭
야야 문 좀 열어보련 너네 아방 오셨는지, 어멍 부름에 사립문 밀어내지만 잔잔한 바람에 가지만이 낭창거린다 여린 잎 하나 피고 짐에도 하늘땅 뜻 서려있건만 뜻 없는 기다림 생활이 되어 홍안 소녀는 백발이 됐다 그 한 올 한 올에 담긴 순간들 보채는 어린것 등에 업고 쑥 캘 때도 뚝배기 한소끔 끓이고 차지게 떡 치댈 때도 까막눈 당신은 기다림으로 세월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뚝, 뚝 하늘이 물기 젖은 숨 뱉으면 당신도 물푸레 아래서 몇 모금 한숨으로 젖은 눈 말렸다 언젠가 나무에 앉는 달빛에 꼭 그이만 한 그림자 비칠 때 벗은 발로 달려가다 이내 깨닫고는 땅에 코 박고 파리한 몸 비틀었다 본래 사람은 흙에서 오는 것이어서 기댈 곳도 모두 그 언저리 빈 찬그릇 채우는 것, 깨진 새끼 무릎에 짓이겨 붙이는 것 모두 흙에서 왔다 어멍은 노상 흙을 캤다 새들도 놀라 날아간 설운 봄부터 사라진 남편을 기다렸다 별자리처럼 한 곳만을 지켜온 어멍의 산에는 구덩이가 많았다 그중 가장 깊고 오랜 하나 어린 손아귀만 한 호미날이 평생을 판 곳으로 당신 몸 하나 간신히 누일 그곳으로 어멍은 돌아갔다 누인 얼굴은 그 옛날의 소녀였다 신랑을 기다리는 새각시의 미소로
어멍이란 이름의 자라지 못한 소녀는 앞날의 사랑을 기다리며 끝나지 않을 봄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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