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식개선신문)
[2020-단편소설-대상]
까망
이대연
변기의 레버를 내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설물이 빨려 내려갔다. 진우는 여전히 불편한 배를 한두 번 손바닥으로 쓸고는 주섬주섬 바지춤을 올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남자 화장실에도 손을 씻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더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장례식장은 예외인 듯했다. 어디에도 줄을 설 만큼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품비누를 짜 손을 비비며 진우는 무심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손 씻는 시간 삼십 초를 재기 위한 곡이었다. 해피 벌스데이 투 유... 해피 벌스데이 투 유... 장례식장에서 부르기에 적당한 노래가 아니었다. 진우는 실수를 깨닫고 거울을 통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노타이에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진우 자신뿐이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턱밑의 두툼한 살집을 감출 수는 없었다. 관록이라고 하기에는 나이에 비해 갖춘 것이 너무 적었다. 숙취가 가시지 않은 눈은 언뜻 봐도 탁해 보였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과음한 다음날의 몰골이었다. 진우는 뒤늦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출근길이건 대낮이건 가리지 않고 음주 측정을 하는 시대에 무슨 용기로 차까지 빌려 운전을 하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객을 하는 렌터카 업자와 대강 계약을 하고 차 키를 받아들었던 것이다. 음주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정밀한 음주 측정기가 아니라도 알아보기 쉬웠다. 조금만 운이 나빴더라면 면허정지는 피해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자식.” 진우는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히며 마스크 속에서 뇌까렸다. 캐스팅에서부터 투자까지 모든 과정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영화감독 십수 년 동안 이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제작사와 살짝 언성을 높이기는 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건 접어두고라도 코로나 여파 속에서 제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천우신조였다. 문제는 조피디였다. 엊저녁 술을 마신 것도 조피디 때문이었고 함께 마신 사람도 조피디였다. 그리고 고성과 욕설과 삿대질로 서로를 비난한 사람도 조피디였다. 나이 서른에 첫 독립장편 영화를 찍을 때부터 조피디가 줄곧 제작피디로 옆에 있었다.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렇게 함께 일한 게 벌써 십수 년이었다. 누구보다 진우를 잘 알고 진우의 영화를 잘 이해했다. 그랬기에 그의 비난이 뼈아팠다. 둘이 너무 오래 붙어 다녔나… 진우는 젖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구강청결제를 꺼내 입안을 헹궜다. 마음이 서운했다. 알싸한 민트 향이 입안에서 비강을 타고 후각을 자극했다. 그제야 자신이 장례식장에 와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고인에게 미안했다.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조문에 익숙해진 나이였지만 친구의 죽음에 무덤덤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일상을 둘러싼 번잡함을 앞에 두고 온전한 마음으로 사자를 애도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진우는 신경질적으로 구강청결제를 뱉었다. 퇴색되어 탁한 액체가 세면대 경사를 따라 배수구로 흘러들었다.
고인의 빈소를 공지하는 로비 모니터에 부영근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진우는 행정사무실에 문의한 뒤에야 이미 발인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조문을 받기가 어려워 대부분 삼일장 대신 이일장을 치른다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고에 아마 이런 내용이 있었으리라..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그는 서둘러 흡연장소를 찾았다. 영근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건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간간이 통화를 했지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수신한 시간은 어제 늦은 오후였다. 조피디와 일찌감치 술과 욕설로 난장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문자메시지를 열자 부고가 떴다. 술이 덜 깬 눈에도 ‘본인 부고’라는 네 글자가 확연했다. 진우는 마음이 황망해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비행기부터 예약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짙은 연기와 함께 민트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진우는 담배연기를 볼 수 없는 선천적 전맹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영근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영근이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신앙 때문이었다. 대신 박하사탕을 들고 다녔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 옆에서 오물거리며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는데, 사탕을 건네는 영근의 손은 유난히 하얬다. 그때 베리어프리 영화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게 뭔데?” 진우의 물음에 영근은 사탕을 오독 깨물었다. “시각장애인들이 보는 영화야.” 이율배반과 모순 형용으로 이루어진 대답이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주어와 본다는 서술어가 맞지 않았고, 종합예술이라고는 해도 시각 이미지 중심인 영화를 시각장애인들이 본다는 것도 얼른 납득되지 않았다. 애초에 시각장애를 지닌 영근이 영화 동아리에 들었다는 사실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해질 수 없는 이유도 아니었다. 대학 일학년 때였고, 반짝거렸고, 생기로 가득한 시절이었다. 진우는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후 담뱃갑을 무심히 재킷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문득 의아해졌다. 이미 무언가 들어 있었다. 꺼내보니 반으로 접은 조의금 봉투였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ATM에서 현금을 인출해 준비한 것이었다. 진우는 다시 망연해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ATM에 현금을 도로 입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우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려다 말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주소록에서 부영근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족 중 누구라도 받지 않을까 싶었다. 건조한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영근이 받을 것 같았다. “장 감독 웬일이야?” 그러면 진우는 평생 부목사라며 영근을 놀렸을 것이다. 영근은 제주 부 씨라는 희귀성을 좋아했지만 평생 부목사라며 놀리는 데는 질색했다. 진우는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를 찾았다. 망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족이 받기를 기대하는 동시에 망자가 받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그를 추억하는 기묘한 상황이 스크린에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이미지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며 생각을 중지시켰다.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도, 어머니의 염습을 지켜보면서도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움직이며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타이핑했다. 그 순간의 공기와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려 애쓰고 있었다. 무슨 대단한 예술을 한다고... 스스럼없이 패륜적 감각을 몸에 익힌 자신이 혐오스럽고 끔찍해 몸서리쳐졌다. 진우는 전화를 끊고 장례식장으로 되돌아갔다. 행정사무실에서 유족의 연락처를 알아보려 했지만 행정 직원은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조문도 허탕을 치고 조의금도 전하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행정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카톡 수신음이 울렸다. 조피디였다. 어디냐는 질문에 진우는 제주라고 짧게 답했다. 잠시 후 다시 조피디의 말풍선이 떠올랐다. ‘네 말대로 난 누아르는 모르지만 돈은 구해왔다. 너는 네 할 일 해라.’ 어제 진우가 한 말 때문인 듯했다. 조피디는 진행하는 영화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진우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업 장르 영화로 데뷔한 이후 자기만의 미학을 구축한 감독들이 있다. 왕가위가 그랬고 이창동이 그랬다. 그들은 누아르로 시작했지만 곧 협소한 장르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개척했다. 진우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저예산 영화였지만 데뷔작이 누아르였다. 다음 작품도, 그다음 작품도, 그리고 바로 직전 작품까지, 누아르였다. 진우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그에 걸맞는 대우는 없었다. 진우는 성공에 목말랐다. 이번에는 자신의 모든 테크닉을 다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제작사와 투자사에서도 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피디는 못마땅해 했다. 사람보다 칼이 먼저 보인다고 나무랐다. “감독이 아니라 기술자가 되고 싶은 거냐?” 술이 한참 오른 조피디가 빈정댔다. 홧김에 진우가 소리쳤다. “내가 감독이고 내가 연출자야! 네가 누아르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넌 가서 돈이나 끌어와!” 이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감독이 연출자였고 진우가 감독이었다. 제작피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투자금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서로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서로 상처가 되었다. 조피디가 잠시 후 문서 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투자사에서 보내온 계약서였다. 몇 가지 추가할 사항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 들여다보던 진우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서둘러 문서를 닫고 영근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다만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인지 뉴스레터처럼 매주 설교 요약문을 보내왔다. 예상대로 프로필 사진은 교회였다. 약간 흐리기는 해도 교회 이름이 보였다. 검색해 보니 서귀포에 동명의 교회는 없었다. 진우는 잰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하며 리모컨 기능이 내장된 차 열쇠를 꺼내 도어 오픈 버튼을 눌렀다. 멀리서 짧은 경적이 울렸다.
목적지까지는 이십 분 남짓 걸렸다. 서귀포의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하며 중산간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해안 쪽으로 빠지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갈대만 무성한 벌판이었다. 간혹 이런 일이 있더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닥치니 몹시 당혹스러웠다. 다행히 행인이 있어 물어보니 한 블록 옆이어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돌담이 둘러싼 교회는 담백하게 반듯한 이층 건물이었다. 좌측 벽면에 이층으로 통하는 철제 계단이 붙어 있었다. 영근의 말대로라면 아래층이 예배당이고 위층이 목사의 관사인 모양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담임목사의 발인 날에 교회 문이 열려 있을 리 없었다. 진우는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면서도 공연히 잠긴 출입문 손잡이를 두어 번 더 돌려보았다. 그때 출입문에 붙은 아크릴판이 보였다. 작은 동그라미가 여럿 그려져 있었는데, 어떤 동그라미는 검고 어떤 동그라미는 속이 비어 있었다. 점자인 듯했다. 세 개씩 이열 종대로 늘어선 동그라미 여섯 개가 한 단위였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교회 이름인가 싶었지만 글자 수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동그라미는 오려 붙여서 약간의 요철이 있었지만 검은 것이나 흰 것이나 똑같아서 시각장애인이라 해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읽을 수 없는 점자라니... 미스터리한 점자였다. 진우는 잠시 자신의 실망감을 잊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라도 누군가 점자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찰칵 소리가 났고, 이곳에서 더 할 일은 없었다. 진우는 차로 돌아와 비행기 시간을 검색했다. 잠시 후 진우는 카페를 향해 좁은 일 차선 도로를 건너려다가 생각을 바꿔 아예 차를 카페 앞에 주차했다. 속에서 신호가 왔다. 과음 다음날의 설사는 고질병이었다. 다급하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 공항으로 가기에는 불안했다. 카페는 영근의 교회와 쌍둥이 건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판박이였다. 네모반듯했고, 이층이었고, 외부로 철제 계단이 나 있었다. 다만 좁은 뜰에 현무암을 잔뜩 깔아놓았는데, 걸어 다니기 쉽도록 출입문까지 통나무를 잘라 만든 징검다리를 몇 개 박아놓았다. 아마 현무라는 이름 때문인 듯했다.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사찰 처마의 풍경처럼 맑고 서늘한 소리였다. 계산대 너머에서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른 젊은 남자가 인사를 했고 짙은 커피향이 났다. 주문을 하려 계산대 앞에 서자 젊은 남자는 손을 반듯하게 펴 실내를 가리키며 자리를 잡고 앉으면 주문을 받겠노라고 했다. 클래식한 스타일이었다.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진우는 얼마 머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가 뒤따라와 메뉴판을 놓고 갔다. 단단하게 코팅한 앞장을 여니 백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고 요철이 가득했다. 점자 메뉴판인 듯했다. 바로 건너편에 시각장애인 목사가 담임을 맡은 교회가 있다는 것이 이 카페로서는 번거로우면서도 명확한 영업전략이 되었는지 모른다. 진우는 눈을 감은 채 손끝으로 요철을 더듬어 보았다. 영근이 가지고 다니던 점자판이 기억났다. 뭉툭한 송곳이 달려 있어 단단한 받침에 종이를 고정시키고 송곳으로 누르면 구멍은 뚫리지 않고 작은 요철이 도드라졌다. 영근은 언제나 그 판위에 부지런히 뭔가를 썼다. “죄송합니다. 건너편 교회 분들이 자주 오셔서 만들어놓은 건데 잘못 드렸네요.” 주문을 받으러 온 남자가 사과하며 서둘러 새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진우는 보지도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화장실은 실외에 있었다. 진우는 현무암을 밟으며 철제 계단 옆을 지나 건물 뒤편으로 갔다. 화장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지만 막상 들어가려 하니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스위치가 고장 난 것인지 전구가 나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이 나있지 않아 빛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스위치를 올리면 낮게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진우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까닭 모를 공포가 엄습했다. 그렇지만 뒤도 급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망신보다는 불확실한 공포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앱을 작동해 플래시를 켜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환풍기 소음이 더욱 크게 들렸다.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의 선택을 강요하는 귀신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마를 부딪치거나 넘어지는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환풍기가 돌아간다는 것은 더없이 다행이었다. 진우는 플래시로 화장실 이곳저곳을 비춰보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꼿꼿하게 서있는 똥자루와 깔끔한 쓰레기통 밖으로 살짝 나와 있는 휴지와 세련된 디자인이지만 어둠에 가려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 같은 것들은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전달하기에 좋을 것이다. 진우는 잠시 플래시를 껐다. 기억해 보면 젊은 시절에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을 즐겼다. 지금처럼 좌석 배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세 편을 동시에 상영하기도 했기 때문에 한 편이 끝나도 그대로 앉아 다음 영화를 봤다. 낮은 조도의 불빛이 잠시 켜졌다 꺼지면 곧 낮은 소음과 함께 한 줄기 빛이 스크린에 영사됐다. 어둠 속에서의 짧은 긴장과 안온함이 좋았다. 꼿꼿한 똥자루 같은 자신감과 비죽 내민 휴지 같은 욕망과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 같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고집과 탐욕과 실의로 변질되었다. 그 시절 어둠 속에서 뭘 보고 싶었던 걸까… 다시 플래시를 켜려다 뭔가를 잘못 누른 듯했다. 진우는 살짝 소스라쳤다. 카메라가 켜지면서 얼굴이 비쳤기 때문이었다. 진우 자신의 얼굴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라면 자신의 얼굴도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추레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라면 더욱 그랬다. 진우는 카메라를 끄려다 말고 바로 전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는 버튼을 눌렀다. 교회 출입구에 붙어 있는 아크릴 점자가 나왔다. 삼열 종대 여섯 개의 점을 한 글자라 하면 모두 여덟 글자였다. 여덟 글자를 맞추며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았지만 영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뭐라 답하기도 곤란해 진우는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냈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갑자기 거칠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뜯고 두드리는 소리였다. 빨간 휴지 파란 휴지와는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왔다. 눈이 부셨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사장님이 좀 그래요. 가끔 사람을 놀래요. 스위치 고장 난 걸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점원인 듯했다. 하긴 사장이라기에는 너무 젊다 싶었다. 그의 말에 진우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자리로 돌아가려다 되돌아와 점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점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모른다고 답했다. 문가 자리에는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다. 갈증 나는 속을 식히며 비행기 시간을 검색하고 있을 때 거구의 사내가 빼꼼 문을 열고 점원을 불렀다. 사장인 듯했다. “나 제주에 갔다 온다.” 그가 문을 닫았다. 제주란 제주시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가 다시 문을 열었다. “저기 공 집사 오신다. 오늘은 커피값 받지 마라.” 잠시 후 선글라스를 끼고 입성이 깔끔한 초로의 사내가 들어왔다. 공 집사라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점원이 친한 사람을 대하듯 반갑게 맞았다. 그는 흰 지팡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진우는 맹인이 밤중에 등불을 들고 길을 가더라는 옛이야기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니 음산한 기운이 돌 법도 한데 그저 밝고 건강해 보였다. 점원이 주문을 받지도 않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히 소리쳤다. “공 집사님! 여기 계신 손님이 점자에 대해 물어볼 게 있으신 모양인데요!” “어, 그러지. 누구신데? 이리로 와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우는 약간 당황하면서도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못한 척 커피를 들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는 수다스러웠다. 사진 속 점자의 뜻을 물어보기 전 인사치레로 한 질문에 그는 자서전을 써 내려가듯 깨알같이 진술해 나갔다. 우선 그는 교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성경공부 모임에는 참석했다. 건너편 교회 목사와 친구 사이인데 그 목사가 죽었다. 오늘이 발인이라 가고 싶었지만 민폐가 될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서 목사와 커피를 자주 마셨다. 공 집사는 그가 교회 나오라는 뜻으로 장난스럽게 붙여준 별칭이다. 그를 추모하러 왔다. 진우는 말을 끊으려다가 영근의 얘기가 나오자 마음이 무거워져 경청했다. “그래 물어볼 게 뭐요?” 진우는 영근의 사인이 뭔지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간소하나마 장례 절차를 치른 것으로 보아 적어도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진우는 스마트폰 사진을 열어 공 집사의 손에 올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진우는 공 집사의 손바닥에 점을 찍어가며 설명을 했다. 공 집사가 한 자 한 자 발음했다. “보… 시… 기… 에… 좋… 았… 더… 라…” 진우도 성경을 읽은 적이 있기에 창세기의 한 구절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영근의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한 말이었다. “이 점자란 게 말이에요…” 공 집사가 또 입을 열었다. 그는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게 아니라 녹내장으로 천천히 시력을 잃어갔다. 그랬기에 이후의 생활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점자를 배우지 않았다. 몇 번인가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 익히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력을 잃은 후에 점자를 익히느라 고생께나 했다. “난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요.” 공 집사의 말을 끊은 것은 전화벨이었다. 발신자에 부영근이라 떴다. 진우는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손가락에 커피잔의 물기가 묻어 자꾸 미끄러졌다. 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나서야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여보세요?” 영근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진우는 대학 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해 제주에 놀러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습한 날씨와 노인들의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와 처음 보는 음식들… 그리고 아직 젊었던 영근의 어머니의 모습까지. 그 뒤도 일로나 쉬러나 제주에 오면 들러 인사를 드리곤 했다. “어머니, 저 진웁니다. 기억하시겠어요?” 진우는 갑자기 목이 메어 헛기침을 하며 커피를 들이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도 눈물을 참는 듯했다. 진우는 서둘러 위로의 말을 전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한사코 조의금을 거절했다. “권사님! 저 공 집삽니다!” 옆에서 공 집사가 목소리를 높여 끼어들었다. 그는 발인과 화장과 납골당 안치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말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권사님, 그러시지 말고 그냥 헌금으로 하라고 하세요. 그럼 부목사도 괜찮다고 할 거예요!” 진우는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영근의 어머니는 누군가 옆 사람과 조심스럽게 상의하더니 그러자고 했다. 공 집사에게 맡기려 했지만 그는 앞 못 보는 사람에게 이런 거 맡기는 거 아니라고 농을 치며 카페에 맡기라고 했다. 점원에게 의사를 물으니 흔쾌히 동의했다. 전화를 끊고서야 진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진우는 창밖을 바라봤다. 멀리 범섬이 보였다. 호랑이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제주에 호랑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영근이 빈정거렸던 섬이다. 멀리서 보는 바다가 평화로웠다. 공 집사에게 인사를 한 진우는 카페를 나서며 점원에게 봉투를 맡겼다. 점원은 금액을 세어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하자 점원은 봉투를 열어 돈을 꺼냈다. “이건 뭐예요?” 점원이 내민 건 영화표였다. 얼마 전 베리어프리 영화제 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예전 작품 중 평이 좋았던 한 편을 골라 베리어프리 영화로 제작해 상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자고 한 후 영근에게 전화를 해 자랑을 했다. 내 영화가 네가 말하던 베리어프리로 제작된다고, 이참에 제주 촌놈 서울 구경 좀 하라고. 영근은 짐짓 놀라워하며 꼭 가겠노라 했다. 박하사탕도 사 가겠다고, 이참에 담배 좀 끊으라고도 했다. 마지막 통화였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문을 여는데 어디선가 박하향이 나는 것 같았다.
골프 복장을 한 중년 사내는 거칠었다. 내리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야, 눈깔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후진을 차를 빼 도로로 나오다가 정차하는 차를 살짝 들이박고 말았다. 큰 충격이 아니었을 텐데도 사내는 목덜미를 잡은 채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옆 좌석의 젊은 여자는 그를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 그냥 가자. 진우는 황급히 렌터카 업체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물어보니 다행히 계약서 보험란에 모두 체크를 해 이 정도 사고라면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중년 사내는 진우를 용서할 수 없는 듯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할 거 아냐!”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공 집사가 나왔다. 과장된 동작으로 지팡이를 두드리며 사내 옆을 지났다. 머쓱해진 사내가 헛기침을 했고 조수석의 젊은 여자가 거보라며 타박을 했다. 진우는 다시 한번 공 집사를 향해 인사를 한 후 중년 사내가 다소 누그러진 틈을 타 렌터카 업체에 연락한 것과 보험사 지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한 번 누그러지자 사내는 더 이상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커피를 마시려던 것이었는지 안에서 기다리겠다며 젊은 여자를 데리고 카페 안으로 사라졌다. 진우는 차 문을 열어놓은 채 운전석에 반쯤 걸터앉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날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공 집사가 조그맣게 점이 되고 있었다. “점자는 파이프예요. 꼭 파이프는 아니고, 굵으면 파이프고 가늘면 실이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기도 하고 사람과 세상이 연결되기도 하고 사람과 신이 연결되기도 하고 그런 거지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는 점자를 배우고서야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아직 신과 연결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게 눈이에요. 연결해 주는 거. 보는 게 아니라. 연결이 되니까 보이는 거지 보여서 연결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말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멍하니 현무암을 바라보던 진우는 문득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갑자기 소리를 질러 놀래려 몰래 다가가는 진우를 영근은 금세 알아차렸다. “나는 다 볼 수 있어. 내 눈은 하늘에 있거든.” 영근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놀라워하는 진우를 향해 말했다. 갑자기 이 기억이 왜 떠올랐을까… 진우는 알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보험사 직원이 정확한 위치를 물었다. 진우는 일어나 도로가로 보험사 직원을 마중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차 한 대가 카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난기류 때문에 기체가 흔들린다고 방송이 나왔다. 진우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벨트 푸는 것을 잊어 한 번 주저앉아야 했다. 뒤늦게 깨닫고 안전벨트를 푼 후 일어섰을 때 진우는 잠시 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통로를 중심으로 검은 점들이 삼열 종대로 늘어서 있었다. 마치 점자 같았다. 사람들이 점이 되어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저 글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조피디의 취한 음성이 떠올랐다. “누아르가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칼이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지, 사람이 칼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되면 안 되잖아.” 진우는 갑자기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일어선 채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서있는 것을 보고는 승무원이 다가왔다. 진우는 아무 일 아니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까만 점들 사이를 지나갔다. 끝.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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