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링
김희철
꽁꽁 얼어붙은 쇠붙이는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요란한 굉음을 내지르며 쇄빙선이 지나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음 위를 지나갈 때마다 짐승의 괴성 같은 악다구니가 새어 나왔다 극야의 오랜 어둠은 그의 나날들처럼 아무리 굴착해도 쉬이 밝아오지 않았다 충혈된 날이 켜켜이 쌓인 침묵을 털어내며 얼어붙은 밤을 더듬어 나아갔다
단단한 쇳덩어리 안에 웅크리고 깃든 생명이 불빛을 쫓아 힘차게 꼬리를 휘저으며 솟구쳐 오를 때 밀링공 김 씨의 눈동자에도 불꽃이 피어났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 무엇도 충혈된 눈이 날을 세우면 깎아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날 오후 깜박 졸았던 대가로 가족의 생계가 달린 뭉툭한 손목을 핏발선 밀링의 비틀림날이 삼켜버렸다 그 후 그는 손목에 갈고리를 달았다 천년을 날아도 접지 않을 날개를 푸득 거리며 오랜 극야의 밤을 건너갔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저만치 힘들게 벌어진 틈 사이로 매끈한 몸체의 태양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밤이 깊었던 만큼 낮이 길어지는 백야의 시작이었다 그래 해보는 거다
* 회전축에 고정한 커터(cutter)로 공작물을 절삭하는 공작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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