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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③

최봉혁 | 기사입력 2023/01/28 [20:51]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③

최봉혁 | 입력 : 2023/01/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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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③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③

 

해가 바뀌고 부친의 기일이 되었다. 

 두 눈에 쎄멘이 들어가도 공사판 가는 건 안 된다고 소리치던 여인은 여전히 살아 아흔의 노구를 움직이고 있었다. 애처롭던 만류가 한 번은 남편에게, 한 번은 장남에게 거절당한 이후 한동안은 장남과 의절하고 지냈지만 그래도 자식은 산 사람이 아니던가. 남편은 죽어서 영영 볼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현현히 살아있는 아들과 여인이 다시 왕래를 통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본가에서 함께 지내기를 몇 년, 장남을 시작으로 자식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분가한 이후론 여인은 그곳에서 쭉 홀로 지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고 여인은 노모가 되었다. 열여섯 나이에 시집을 온 그 집에, 전쟁통에 잠시 비워두었던 바로 서산 그 집에 당신은 아직까지 살고 계신 것이었다.

 싸리문에서 함석문 그리고 다시 철제 대문으로 바뀌기까지, 비루한 한 가정집에도 건설의 역사가 올올이 서려 있었다. 녹이 쉽게 슬고 구멍이 잘 나는 함석문을, 남편 천갑이 아등바등 조막손을 움직여 철제 대문으로 바꿔 놓은 게 꼭 그가 한강 인도교 복구를 위해 상경하던 날의 바로 전날 밤이었다. 그 후론 지금껏 그 집의 대문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통하는 문인 듯.

 여닫을 때마다 앙칼진 신음을 뱉어내는 대문으로 윤 노인이 들어섰다. 제기에 올릴 과일을 양손에 들고 있던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엔 한 줌의 못이 담겨 있었다. 처에겐 문이라면 아들에겐 못이었다. 어미가 쥐여준 참을 아들이 가져다 놓으면, 망치질을 그만두지 않고 한참을 하던 일에 집중하던 부친이었다. 참이 다 식도록, 배에서 주린 소리가 나도록 아들 앞에서 등짝만 보이던 아버지였다. “허기질 땐 요렇게 못을 입안에서 오물오물 핥는 것이야.” 하고 못밥을 먹던 천갑의 모습을 윤 노인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 탓에 그는 부친처럼 평생 망치를 드는 것도 그리고 놓는 것도 무겁게 할 줄 알던 노무자였다.

 윤 씨 집안에서 못밥은 제사상에도 오르는 것이었다. 끓는 물에 소독한 못을 작은 제기에 담아 정성스레 올리는 것은 지금껏 막내 귀태의 몫이었다. 올해는 귀태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윤 노인은 본인 손으로 직접 못을 싸 들고 왔다. 해가 바뀌었고 민선 6기의 임기가 올 6월이면 끝이 난다. 민선 7기의 지방선거도 있을 거고 귀태는 재선시장이 되기 위한 준비로 한창 바쁠 시기다. 더욱이 앞날의 오해와 다툼도 있었으니 막내아우가 본가로 찾아오지 않아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구름이 다소 낀 듯 윤곽이 선명치 않은 달 아래, 윤 노인은 지방(紙榜)을 쓸 한지를 말끔히 다듬기 시작했다. 노모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일어나 제사상을 두루 살피더니 제기를 한 각씩 한 각씩 돌리며 모양새를 고쳤다. 이제는 하나같이 지긋한 나이가 된 피붙이들이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이를 기릴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끼이익’

 불현듯 고막을 찢는 소리가 울렸다. 대문 쪽이었다. 곧이어 뜀박질해 오는 그림자에게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함께 이어졌다. 귀태였다.

 “막둥이 왔냐. 못 올 줄 알았건만.”

 아흔의 노모가 쉰 살의 막내아들에게 말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거야 원, 요즘 너무 바쁘다 보니…”

 귀태는 그리 말하고는 노모 옆에 서 있던 피붙이들에게 ‘작은성, 누님’ 하며 호칭을 부르고 반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청 일을 마치고 곧바로 온 길인 듯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 거실 한편에 가방을 놓아둔 그는 제사상 앞에 앉아 있던 큰형에게 다가갔다. 맏이와 막내의 대면은 거의 반 년 만에 이뤄졌다. 

 윤 노인은 다가오는 아우에게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나자, 굳어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큰성이 직접 싸오신 거예요? 저도 잔뜩 가지고 왔는데.”   

 불룩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귀태가 제기에 담긴 못밥을 보고 말했다.

 “이번엔 헝겊으로 잘 싸온 것이야? 저번엔 비닐로 싸서 허벅지에 찔렸지 않니.” 

 윤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을 보이면서도 정확하게 귀태의 왼쪽 허벅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못에 찔린 게 어느 쪽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부친이 떠나고 짊어져야 했던 책임의 무게가 무심한 애정의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는 그였다.  

 더 뿌옇게 흐려져 가는 달무리 아래서 가족들은 노모와 함께 제사를 올렸다. 늦겨울 추위가 가고 선선한 밤의 고요 속에서 흑백의 생을 기리는 시간이 흘렀다. 굳은 석고 같은 무릎을 굽혀 그들이 올리는 절은 부친의 앞날에 올리는 경건한 경배였다.

 제사가 끝이 나자 귀태의 누이는 용돈을 쥐여준다고 노모를 안방으로 모시고 갔고 작은형은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제사상이 놓인 거실에는 윤 노인과 귀태만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혹여 부친이 조막손으로 쥐기 어려울까 싶어 당신의 왼 편이 아닌 오른 편에 놓아둔 못밥도 함께 말이다. 

 “저는 아버님이 입안에 못을 넣으신 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실 얼굴도 모르죠. 저는.”

 귀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날의 회상이 아니라 어렴풋이 짚어 보는 한 그림자를 떠올린 것이다.  

 “그래, 네가 돌도 안 돼서 돌아가셨으니.”

 그 그림자를 선명한 등짝으로 기억하는 윤 노인이 대답했다. 

 “그래도 큰성한테서 그 이야기 듣고 홀로 아버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그랬죠. 큰성 말 듣고 아버님 제사상에 못밥 올리는 것도 제 평생 해왔잖아요. 보지도 못하고 겪지도 못한 것을 말로만 들어놓고 참 신기하게도 평생을, 그렇게.”

 “......”

 생각에 잠긴 듯 두 사람은 잠깐 서로 다른 곳을 응시했다. 길지 않은 침묵에서 먼저 소리를 낸 것은 귀태였다. 그는 ‘영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꼭 직접 겪지 않아도 생생히 더듬어 보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큰성.”

 가방에서 꺼낸 것은 지난번 집무실에서 윤 노인 앞에 보였던 대봉투였다. 그간의 고민을 보여주는 듯 겉표지와 서류의 끝자락은 저번보다도 더 너덜 해진 상태였다.

 “저번에 미처 말씀 못 드린 거 지금 얘기해 드릴게요.”  

 

 

*

 

 

 7월이 되었다. 

 아직 장마가 찾아오기 전이었지만 제법 습한 기운이 서산을 감싸고 있었다. 윤 노인이 공구함을 들고 찾은 현장은 기념관의 신축공사가 치러질 자리였다. 서산시에서 발주한 기념관 공사에는 국내 굴지의 건설기업이 참여했다. 앞날 고령교와 인도교의 복구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서산간척을 진행한 바로 그 건설사였다. 

 기념사업인 만큼 건설 계획은 공적 가치를 많이 띠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인력 수급의 절반은, 서산시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 근로와 자활근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와 저소득층, 노년층이 주된 참여자였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귀태가 공익을 최우선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었다. 

 “큰성, 요즘 어떤 시대인지 아시죠? 시장 빽은 못 써 드려요!”

 윤 노인은 현장에서 아우의 말을 떠올리며 홀로 애증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년이고 오랜 건설 경력을 가진 데다가 주머니 상황이 변변치 않다는 사정은 윤 노인을 어렵지 않게 공공근로사업의 참여자로 채용되게 했다. 시장인 아우의 힘을 쓰지 않고도 말이다. 

 기념관 안에 들어설 무수한 기록과 사진, 영상들은 대부분 건설사의 자료보존실에서 기부할 계획이었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한반도라는 호랑이의 가슴팍에 빚어진 역작, 서산간척사업을 기억할 그 장소로 말이다. 

 “기념관에서 한 층은 반드시 노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에 초점을 맞춘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하게 전달했습니다.”

 귀태의 말처럼 기념관의 1층은 노무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설계될 계획이었다. 윤 노인이 속한 팀에 주어진 과제는 커다란 원통형의 목조건축물을 제작하는 것이었고, 첫날인 오늘의 일은 그것의 골조공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도면에 따르면 원통 건축물은 360도 개방형의 1층 매표소 중앙에 자리할 예정이었고, 커다란 건축물의 둘레를 가득 채울 것은 다름 아닌 간척사업에 참여했던 모든 노무자들의 이름이 담긴 명패들이었다. 윤 노인은 골조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입안으로 한 줌의 못을 담았다. 

 그 시각, 귀태는 시청 대강당에서 2018년의 하반기 시무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가 민선 7기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기쁘고도 무거운 시간이네요.”

 귀태가 강당 중앙의 연단 위로 올라 입을 열었다. 큰 행사였던 만큼 지역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찾아온 기자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재선 영감이 됐어도 저 여전히 젊은 시장입니다. 동의들 하시지요?”

 귀태가 뱉은 농담에 작은 웃음소리들이 강당을 울렸다. 청중들은 귀태의 선거 포스터에 새겨져 있던 ‘젊은 시장’이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 화끈하게 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타 후보들로부터 수없이 공격받았던 역간척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의 익살스러운 말에 박수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간척은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만들어 낸 건설 사업이었습니다. 앞 세대의 희생, 모르지 않습니다. 다 압니다. 하지만 역간척도 상생이라는 소신으로 빚으려 했던 건설입니다.”

 유쾌함이 넘치던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저는 건설이라는 울타리 아래 두 진심이 부딪히는 위기가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자격으로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고 그 위기를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같은 건설의 영역에서 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귀태의 말에, 배석하고 있던 박 의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귀태처럼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고 3선 시의원의 자격으로 시무식에 초청된 것이다.  

 “오늘 착공을 시작한 서산간척사업기념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산간척이라는 업적을 영원으로 남기면서, 고파도리 역간척은 그대로 진행할 것입니다. 다만 그 형태를 시범사업으로 변경하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천명합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목표를 말하는 외침에는 선명한 강단이 있었다. 

 “또한 시범사업의 성패를 떠나 향후 4년간은 역간척의 확대가 없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말해 역간척은 민선 8기의 과제로 넘기겠습니다. 4년간의 변화를 바탕으로, 본 사업의 존치 여부를 시민들께서 직접 판단해 주십시오!”

 귀태는 못이라도 문 듯 입술을 말고 뜸을 들이더니, 뜨겁게 마지막 말을 뱉었다. 

 “여러분들이… 주인이시니까요!”      

 

 

 

<필자가 올리는 말씀>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서사에서 언급된 단체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서산간척사업을 비롯한 대한민국 건설 70년 역사의 모든 현장에서 

숭고한 노동으로 희생하신 노무자들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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