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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②

최봉혁 | 기사입력 2023/01/28 [20:47]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②

최봉혁 | 입력 : 2023/01/2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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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사진=최봉혁기자의 사진여행)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 신문=최봉혁기자)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 ②

 “큰성,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시청 직원들과 함께 인근 식당으로 들어온 귀태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반갑게 말했다. 조촐한 찬거리에 식사 중이던 윤 노인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뵙자고 전화드렸잖아요. 드릴 말씀 있다고. 오늘 금요일인데 착각하신 거예요?”
 “아니다. 약속이 있어서.”
 “그래도 시청 근처에 오셨으면 연락이라도 한 통 주시지. 그날 제가 언성 높인 건 죄송했어요. 마음 푸세요, 큰성.”
 큰형에게 가까이 다가선 귀태는 미안하면서도 내심 섭섭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문득 윤 노인의 맞은편에도 밥 한 공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일행분이 계셨군요. 잠깐 자리 비우셨나 봐요?”
 “시장님, 여기서 또 뵙네요.”
 귀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박 의원이었다. 그와 귀태는 그리 좋은 관계이지 못했다. 단순히 소속 정당이 다른 것을 넘어 시의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충돌하던 그들이 가장 격렬히 부딪힌 것은 역시나 최근에 점화된 역간척 의제에서였다. 시청과 의회라는 이원형 구조가 사업 진행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사실은 각 기관의 수장인 그들의 사이를 보면 쉬이 짐작 가능한 것이었다. 
 귀태는 큰형 맞은편에 놓인 공깃밥의 주인이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시의회 의장이란 사실에서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평생 현장에서만 살아온 큰형이 어찌 그를 알고 대면하여 밥까지 함께 먹는단 말인가.
 그 의문은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 돼서야 풀렸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집무실에 들어선 귀태는 탁자에 놓인 지역신문에서 낯익은 두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희망사업단, 간척사업유지 태스크포스 출범’이라는 활자 아래로 박 의원과 윤 노인이 뭇사람들과 함께 사진에 담겨 있었다. 순간 알 수 없이 밀려오던 감정의 흐름을 깨버린 것은 예기치 않게 울린 내선전화였다.   
 “시장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큰형님 되신다고 하시는데요.”
 “들어오시라고 전해주세요.”
 잠시 후 윤 노인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별도의 접견실 없이 책상 앞에 배치된 소파가 곧 손님을 맞는 장소였다. 검소한 성품의 귀태가 당선이 되어 첫 출근을 했을 때 부서조정보다도 먼저 지시한 것이었다. 바쁠 때면 소파에 앉아 즉석식품을 올려놓고 먹던 그 탁자에 신문이 놓여 있었고, 윤 노인의 심각한 얼굴에는 신문 속 사진과 똑같은 표정이 배어 있었다. 
 귀태는 머그잔에 인스턴트커피와 물을 붓고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큰성, 죄송해요. 도시가스 설치가 안 됐거든요. 그래도 맛은 똑같을 겁니다.” 
 “비품으로 전기포트 같은 걸 하나 구매하지 그러냐.”
 “비서실엔 있어요.”
 “그럼 부탁하지 않고?”
 “커피 타는 거까지 심부름시키기 싫어요. 제가 기가 찬 게 그거였어요. 처음 출근하고 봤더니 어떻게 된 게 포트 하나가 집무실 안에 없는 거예요. 근데 시키지도 않은 차를 아침이고, 점심 후고 가져다주는 겁니다, 비서실 직원들이. 그날로 딱 말했죠. 차 들이지 말라고. 앞날에 이 자리 앉아 있던 양반이 노상 남이 타준 것만 마셨단 말밖에 더 됩니까.”
 귀태의 말이 끝나자 간편 데우기를 마친 전자레인지가 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제가 비서실로 가서 직접 탈 수도 없는 노릇이죠. 보는 직원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자, 드세요.”
 귀태는 윤 노인에게 커피를 건네주고 TV를 틀었다. 큰형과 마주한 자리에서 이른 아침의 조용한 공기가 다소 불편했다. 
 “오후 약속을 굳이 아침으로 앞당긴 이유가 뭐냐. 전할 말이라는 건 또 뭐고.”
 “시청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가도 되는 건데 보여드릴 자료도 집무실에 있고, 주말엔 이것들 정리 좀 한다고 시간을 다 보냈거든요. 빨리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귀태가 책상에서 대봉투 하나를 들고 오며 말했다. 서류가 가득한 듯 봉투는 꽉 차 있었고 여러 번 손을 댄 탓인지 겉표지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귀태가 그것을 탁자에 놓았을 때 TV에선 아침 뉴스 프로의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9시 충남 뉴스광장, 이번 월요 대담의 주제는 역간척입니다.”
 아나운서에게서 역간척이라는 말이 나오자 두 사람은 행동을 멈추고 함께 화면을 바라봤다. ‘월요 특별대담-서산 역간척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자막이 하단에 깔리며 방송이 시작됐다. 
 “역간척 반대 측 패널로 서산시의회 의장직을 맡고 계신 박성만 시의원님을 모셨습니다. 의원님, 편성 시간이 짧은 관계로 바로 모두 발언을 시작해 주시겠습니까?”
 “예, 우선 저는 서산시청과 윤귀태 시장에 대한 통렬한 질책을 공식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입을 벌린 채 화면 속 박 의원의 발언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집중했다. 
 “윤귀태 시장은 20세기 서해안의 최대 건설 역작인 서산간척을 뒤엎고 역간척을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생태보존을 빙자해서 앞 세대의 업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요. 그런데 정작 윤 시장의 친형님이 바로 간척사업에 15년간 참여한 인부라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습니다.”
 박 의원은 총기 넘치는 눈으로 정중앙을 응시하며 발언을 이어나갔다.
 “평천하까지 갈 필요 없이, 수신제가치국이라는 말을 떠올려 주십시오. 이는 정치적인 관점을 잠시 제쳐두고 봤을 때 한 집안에서 아우가 형을 부정하는, 그런 인륜을 거스르는 패악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형도 못 알아보는 사람한테 우리 서산 시민들 민생을 맡겨놔도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한 지자체의 수장이라는 사실에 저는 서산시 시의회 의장으로서 극렬한 개탄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박 의원의 모두 발언이 끝나고 카메라가 찬성 측 패널을 비추던 시점에 귀태는 곧바로 TV를 껐다. 바로 사흘 전에 큰형과 함께 있던 박 의원이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 얘기를 꺼내자 손이 떨려왔다. 오늘자 신문에서 함께 찍힌 두 얼굴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가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속에서 몇 번을 생각해도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큰성,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그게 웬 소리냐? 난 저 양반한테 네가 아우라는 사실 밝힌 적 없다. 그날 박 의원은 그 질문을 하지도 않았어!”
 윤 노인의 언성이 높아졌다.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비서실에서도 심각한 분위기를 인지한 듯 직원들 사이에 긴장이 돌기 시작했다.
 “신문에 집회를 개최할 거란 말도 있더군요. 시청 앞에서.”
 “그건 참석 여부에 아직까지 확답을 주지 않았다. 내 아무리 역간척에 반대한다지만 그래도 시청은 네가 있는 곳이 아니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싶다고 돌려 말했다. 그보다 내 말에 답을 하거라. 방금 네가 한 말의 속뜻이 무엇이야? 설마 형이란 사람이 저 양반 앞에서 아우를 욕 보이기라도 했단 소리냐, 방송에서 저런 수작질을 하라고 내가 시키기라도 했단 것이야?”
 귀태는 큰형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윤 노인이 결코 그럴 성정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틀이 맞는 모든 상황들이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하게 했다.   
 “막내 네가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나를…”
 윤 노인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귀태의 미온적 태도가 아프게 불쾌했다. 더 소명하려는 의지가 그에게서 사라졌다. 어느 쪽이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아우의 태도 자체가 50년 세월을 함께한 형제에겐 치명적이었다.  
 “다신 찾아오지 않으마. 너도 연락하지 말거라.” 
 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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