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21 대상, 최우수상 수상작 모음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18-단편소설-대상]-조요섭 - 가슴에 돋는 못①2018-2021 대상, 최우수상 수상작 모음“네놈 하는 짓거리가 순 망나니가 아니고 뭐야? 썩을 놈! 망할 놈!” 윤 노인의 역정이 수화기를 넘어 스물이 넘는 터울의 막내아우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아이고, 큰성 또 시작이시다.” 윤귀태는 큰형의 역정을 예상한 듯,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붙든 상태에서도 다른 손으로는 즉석 김치찌개 국물을 연신 목으로 넘기고 있었다. 중고나라에서 구매한 뒤 자신의 집무실 한편에 비치해 놓은 2만 원짜리 전자레인지로 갓 돌려낸 것이었다. 윤 노인이 봤더라면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냐고 더욱 화를 냈을 광경이다. 귀태는 오후 시의회 출석을 위해 바삐 점심을 해치우는 일과 큰형의 역정을 성심껏 들어드리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전부 휴대전화라는 문명 덕택임에 감사했다. 비록 그 문명이 악에 받친 고성을 여과 없이 너무 잘 전달했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수화기 너머 형의 심기를 더욱 거스를까 싶어 얼마 되지도 않는 건더기는 씹지 않고 통화 내내 국물만 몰래 넘기는 것이 젊은 시장의 아우 된 도리였다.
윤 노인은 정오 뉴스 자료화면에 나오는 아우를 보고 잔뜩 화가 났다. 충청남도 아래 홍성, 보령, 태안, 서산 등의 기초지자체장이 모여 역간척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장면이 송출된 것이었다. 지방선거가 여러 번 치러지는 과정에서도 내내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사업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모양새였다. 보령호와 함께 서산 고파도리가 사업의 첫 대상지로 선정되었다는 자막이 뉴스 화면에 깔리자 윤 노인은 분노의 검지로 서산시장의 전화번호를 누른 것이다. “어떻게 만든 건데, 어떻게 만든 땅인데…” 전화를 끊은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마구 고성을 퍼붓고 난 뒤였다. 그래, 어떻게 만든 것이던가. 그가 말단 노무자로 서른 중반에 참여해 쉰을 넘겨서야 준공을 마친 것이 서산간척사업이다. 조차(潮差)가 10미터에 가까운 상황에서 물막이 작업에 쓰일 바위들이 물살에 유실되자 일명 유조선공법이 사용된 게 바로 그 사업이다. 뭇사람들은 공법의 획기적인 면만을 전설처럼 읊어대지만, 23만 톤급 폐유조선의 탱크에 바닷물을 채워 방파제를 만들었던 모든 과정이 자신과 같은 말단 노무자들의 손에서 빚어진 것을 윤 노인은 현현히 기억하고 있었다. 준공을 마친 지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그 당시 노무자들이 각자의 푸른 봄들을 다 바쳐서까지 바다를 메우는 일에 전념했던 것은 막연한 노임 벌이로 설명될 것이 아니었다. 전후(戰後)의 시대정신이던 먹고사니즘을 넘어 이윽고 대발전의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던 때가 아니었던가. 모두가 잘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땅이 필요했다. 흔히들 일컫는 옥토 말이다. 정전을 사흘 앞두고 고지전을 펼친 금성지구나 투기의 뿌리였던 70년대 강남처럼 땅에 대한 집착이 지독하게 서려 있는 곳이 반도다. 그 역사를 더듬어 봤을 때 그나마 마지막으로 순백을 띤 집착이 바로 그때의 간척사업이었고 노무자들은 성공을 위해 함께 한 몸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아이들도 커갔다. 방파제를 기준으로 조금씩 넓어져 가던 땅처럼 말이다. 수로로 담수를 들여오고 소금기를 빼내는 작업을 수년간 더 치러야 했지만 간척지는 점차 식량을 책임질 농지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준공이 끝난 무렵에는 훗날 비행기로 농약을 뿌려야 할 만큼 넓은 농지가 서산에 마련되었다. 그 땅은 비단 농작물만이 자리할 곳이 아니라 생태공원과 관광단지 그리고 멀지 않은 시기엔 각종 첨단시설이 들어서서 국력을 키워낼 부지이기도 했다.
그런 땅이었다. 그런 땅을 다시 짠물로 뒤덮고 갯벌로 만들겠다는 아우의 말은 윤 노인과 노무자들의 젊은 날에 질퍽한 진흙을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척이 끝난 지, 꼭 그들 형제의 나이 터울만큼 고작 스무 해 정도밖에 되지 않았건만 그것을 다시 거스르겠다니 일흔을 넘긴 노인이 어찌 고성을 내지 않았으랴. 고파도리는 과거 윤 노인이 참여한 간척사업지는 아니었지만 금번의 역간척 1호 대상지로 선정된 만큼 앞으로 확대될 움직임의 도화선과도 같았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지 그러냐.” 그는 곧장 아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낮은 어조였다. 귀태는 즉석 김치찌개 용기를 치우려던 찰나에 큰형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큰성, 과잉개발 탓에 지금 나라꼴이 어떻습니까. 다들 그러잖아요. 자성의 시대라고, 반성해야 한다고. 다시 되돌려놔야 해요.” 용기를 손에 들고 선 채로 그도 큰형에게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자성의 시대고 어쩌고 하는 그런 놈들, 잘난 척만 해대면서 나라 퇴보시키는 놈들이다. 생태 보존이란 것도 지금부터의 것들을 지켜나가면 될 일이지. 왜 지난 인생들이 청춘을 다 바친 산물을 굳이 다시 거스르려 드느냐 이 말이다.” “그 땅 다시 갯벌로 되돌리는 게 나라에도 훨씬 이득이에요. 실제로 통계 결과가 그래요. 해외 각국에 비슷한 사례도 많고요. 그게 결국 생명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는 길이란 말입니다.” “이득이고 자시고! 자성을 한다면 우리 세대가 하는 것이지, 너희가 아무렇지 않게 이상적인 신념 하나로 쉽사리 침범할 것이 아니다. 뭘 안다고, 뭘 겪었다고.” “......” 윤 노인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자 귀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님 그렇게 가시고, 너 대학 공부까지 마치도록 뒷바라지한 게 누구냐. 누가 희생한 탓에 막노동 집안에 민선 시장까지 나온 것이야?” 15년이 걸린 간척사업은 귀태가 초등학교 졸업을 할 때 시작해 대학 졸업장을 받고 취직할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부친의 별세로 집안의 가장이 된 장남에게 어린 막내아우는 꼭 책임져야 할 존재였다. 앞날 윤 노인은 젖은 땅 위로 마른 흙을 옮기던 일에서 한 삽씩 한 삽씩 흙을 퍼 올리며 그것들에 많은 바람을 투영시켰을 것이다. 아우의 교복과 등록금과 첫 정장과 같은 것들을. “그래놓고 한다는 짓이 그거냐.” 순간 감정이 북받친 듯 윤 노인의 목소리가 한차례 휘었다. “저는 어디 편하게 책만 본 줄 아세요? 대학 졸업식 때 사내놈이 훌쩍인다고 나무라셨죠. 제 눈에 눈물이 고였던 진짜 이유가 뭐였는지 말씀드려요? 모교 교정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하고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 그랬어요. 4년 동안 다닌 학교 교정을 졸업식 때가 돼서야 제대로 바라봤다는 게 슬펐어요. 수업 끝나면 곧바로 과외 뛰고, 도서관에, 하숙집에 매일을 그렇게 보냈어요. 큰성, 저도 열심히 살았어요. 아버님한테 부끄럽지 않게요.” 내내 큰형에게 다정다감하던 아우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프고 아픈 이름이 두 형제의 입에서 나왔다. 고조 때부터 쭉 서산에서만 살아온 윤 씨 집안이 대구로 피란을 간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윤 노인이 고작 예닐곱 살이던 시절이다. 그의 부친 윤천갑은 어릴 적부터 목공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노무자였다. 대구 친척과 함께 고무신 노점상을 하며 연명해 오던 몇 년의 시간 끝에 마침내 천갑은 몸을 쓸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정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기에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의 복구공사장에서 인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천갑이 곧장 찾아간 현장은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제대로 된 장비는 부족했고 인부의 노동력을 통해 원시적인 방식으로 교각을 세우고 있었다. 정부의 긴급통화조치로 절하된 화폐가치와 전후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가 막대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골재 값과 노임까지 치솟자 복구공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밀려든 홍수에 간신히 세워 놓은 교각까지 함께 쓸려 떠내려가 버리자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때 건설사 대표 일가에서 자신들의 집을 팔아서라도 적자를 줄이고 공사를 마치자고 사재를 깡그리 내놓았고, 계약 공기(工期)를 넘기고 막대한 재정손실까지 남기긴 했지만 마침내 고령교 복구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후 그들은 정부로부터 신용을 얻어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까지 맡게 되었고 훗날 큰 건설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건설사가 신용을 얻은 대신 천갑은 왼손에 큰 상처를 입어 손가락을 아주 못 쓰게 되었다. 홍수가 지나가고 인부들이 현장을 치우던 과정에서 교각 잔해 하나가 떨어지며 그의 왼손을 조막손으로 만든 것이다. 돌아온 남편의 손을 보고 눈물 대신 실핏줄을 세워 보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윤 노인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서산에 돌아왔을 때는 한동안 천갑의 처가 품을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렸다. 두 눈에 흙이 아니라 ‘쎄멘’이 들어가도 다시는 공사판에 가는 걸 허락 못 한다던 처를 뒤로한 채, 결국 천갑은 상경하여 인도교 공사에 합류했다. 손가락은 못 써도 무게를 지는 데는 문제없던 왼팔에, 그는 폭이 좁은 합판 하나를 노끈으로 묶어 양팔로 자재를 나르곤 했다. 그런 그가 10년을 더 공사판을 누비다가 세상을 아주 등지게 된 것은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였다. 반도의 대동맥을 잇는 데는 77명의 순직자가 발생했고 천갑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귀태가 태어나 돌도 치르지 못한 때였다. 사고사라고 들었건만 윤 노인은 번번이 부친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억측인지 합리화인지 알 수 없는 상상과 함께 안타까움을 연신 토해내곤 했다. 혹여 부친의 왼손이 멀쩡했더라면 죽음의 순간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어디 우리 집안만 그렇겠느냐. 노무자회 사람들 집구석 전설도 들어보면 어찌 그리 굴곡진지.” 불과 3년 전까지 여러 공사판에서 현장 일을 계속해 왔던 윤 노인은 많은 노무자들과 연이 닿아 있었고 그런 그는 은퇴 후 서산노무자회 회장직을 맡았다. 자신의 낡은 연립주택이 곧 노무자회 사무실이었고 회원들은 틈틈이 그곳에 모이곤 했다. 회장이라 해봤자 자신처럼 일흔을 넘기고 은퇴한 회원들이 마지막을 맞으면 부고를 알리고, 꼭 조문을 가 얼굴도장을 찍고 그들을 기리는 일을 도맡아 하는 자리였다. “그래, 모두 열심히 살았지. 너도 나도 그 사람들도.” “모르지 않아요. 그분들 희생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서산 앞자락이 어떤 땅이냐. 회원들 대부분이 그 땅 만드는 데 참여했던 인부들이다. 그 사람들이 일하면서 흘렸을 것들을 생각해 봐라. 짜디짠 것을 몸으로 빼낸 거야. 젖은 땅에서 소금기를 빼낸 것이 자연의 힘만 들어간 게 아니다.” “......” “그걸 거스르려 드는 게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귀태는 통화 내내 들고 있던 김치찌개 용기를 들여다봤다. 채 다 먹지 못한 국물이 남아 있었다. 식은 국물 속의 화학성분들은 조강시멘트처럼 빠르게 응고되어 물컹한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처럼, 식고 굳었어도 여전히 맵고 짠 감정이 윤 노인의 가슴에 일렁이고 있음을 귀태는 담담히 짐작했다.
“윤 회장님이시죠? 연락드렸던 아띠 대표, 최민입니다.” 윤 노인의 집으로 시민단체 대표라는 여자가 찾아왔다. 이미 전화상으로 이야기가 오간 뒤였다. 통화에서 최민은 간척사업을 지지하고 서해안의 산업벨트 구축을 꿈꾸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벨트가 곧 반도의 아름다운 띠가 될 것이고 그런 의미로 단체명을 아띠로 지었다는 것까지 함께 말이다. 윤 노인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역간척이 화두로 떠오르자 충남 지역의 언론이 온통 그 찬반논쟁으로 도배됐을 무렵 언젠가 그 단체의 이름을 TV로 스치듯 들었던 기억이 났다. 최민은 단체 대표의 자격으로 농어촌공사 산하의 새희망사업단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또한 같은 자격의 위원으로 노무자를 대표할 만한 이를 위촉하기 위해 물색 중에 있었다고 전했다. 노무자회 회장이자 평생 현장을 누볐고, 더욱이 간척사업 전 과정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윤 노인은 위원으로 위촉하기에 아주 적확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 젊은 대표는 서산노무자회 사무실이자 윤 노인의 자택인 곳에 찾아온 것이다. “그렇습니다만 함께 오신 분은 누구신지요?” 윤 노인이 최민 옆에 함께 서 있던 남자를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중년의 나이로 보이던 그는 양복 왼쪽 라펠에 배지 하나를 달고 있었다. “아, 이 분은 서산시의회 의장직을 맡고 계신 박성만 시의원이십니다. 저랑 같이 새희망사업단 위원이시기도 하고요.” “반갑습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최민의 소개에 목례를 나눈 두 사람은 낡은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박 의원도 지긋한 나이의 중년이었지만 여전히 눈에는 총기가 서려 있고 눈빛으로는 밉지 않은 자신감을 표출하는 사람이었다. “방문을 시원하게 수락해 주셨으니, 저희도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윤 노인의 안내에 따라 거실 소파에 앉은 박 의원이 정중하게 말했다. “서산시의 역간척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릴 생각입니다. 새희망사업단도 같은 입장이고요. 계획이 중단 없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예산의 이중 집행이 이뤄지는 겁니다. 이미 시민 혈세가 막대하게 들어간 상황에 기존 사업 철거비용이며, 역간척 비용이며 재정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 게지요.” “안전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해수를 들인다고 노후화된 배수갑문을 장기간 개방해 버리면 결함으로 시설물 파손도 일어날 수 있어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겠죠.” 박 의원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최민이 말을 거들었다. “그런 문제들은 뉴스로 익히 들었소. 나는 이 늙은이한테 굳이 찾아와 위원을 하랍시고 이런 얘기를 꺼내 놓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사업단 아래 역간척을 반대하는 소조직이 마련될 거예요. 조만간 그들과 시청 광장 앞에서 정식으로 소규모 집회를 열 생각입니다. 물론 집시법은 엄격하게 준수할 거고요. 평화롭게, 아무 마찰 없이 진행할 생각입니다.” 윤 노인의 물음에 최민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면 보나 마나 현장에 경찰도 배치될 텐데 거 괜찮겠소? 시민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일단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연다 하면 언론도 주목할 거고요. 시민들에게도 우리 목소리가 전해질 겁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지만요.” 윤 노인의 우려가 적시에 터졌다는 듯 최민은 그 말을 곧바로 맞받아쳤다. “그때 윤 회장님이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 의원이 입을 열었다. “서산간척사업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청춘을 다 바쳤습니까. 그런데 지금 서산시는 그날의 역작을 깨부수려 하고 있어요. 당치도 않는 일입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 회장님께서 그 모든 분들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 윤 노인은 그 말에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배석하고 있던 두 사람은 그 사이에 서로 눈을 마주치며 긴장을 공유했다. “그럼 나더러…” 처음 입을 뗀 건 윤 노인이었다. “여론몰이에 협조해 달라 이 말이군요. 가식 없이 말해서.”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윤 노인이 ‘여론몰이’라는 거침없는 표현을 꺼냈지만 박 의원은 주눅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근데 노무자회 회장님 아니십니까. 이런 일에는 나서주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도 역간척에 반대하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 그의 말이 끝나자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긴 침묵이 윤 노인의 거실에서 흘렀다. 두 방문자는 그의 결정을 기다리면서도 재촉 않는 존중을 보였다. 해가 저물고 막 어스름이 지기 시작하는 어느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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