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이상기 회초리 - (산문, 시각, 수필)
회초리
이상기
회초리를 드시고
“종아리를 걷어라”
맞는 아이보다
먼저 우시던
어머니.
-「회초리」/황금찬-
위 시는 생전에 팔천여 편의 시와 시집 39권, 수필집 15권을 남기고 몇 해 전(2017.4.8.)에 강원도 횡성 향리 자택에서 향년 99세로 돌아가신 황금찬 시인의 ˹회초리」 시 전문이다.
우리 나이로 100수를 누리시고 1세기를 사시며 한국 시 문단의 산증인이셨던 후백 황금찬 시인은 98세 되시던 해, 한 문학 행사장에 참석한 후학들 앞에서 이 시를 읽으시며 잠시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 어제 일같이 아직도 새록거린다. 노시인은 생전에 남긴 시 팔천여 편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회초리」라 하셨다.
왜 우리는 아직도 부모님 회초리를 쉽게 못 잊는 걸까?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 아픈 추억일진데
어릴 때 부모님께 맞던 아픈 회초리 채를 못내 그리워하는 걸까?
그것은 회초리를 드셨던 부모님의 참사랑에 대해 누구든, 그리움과 더불어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悔恨)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지난해 봄, 시간이 날 때면 자주 들리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엘 갔었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미술 작품들과 공예 작품, 사진 작품들을 함께
두루두루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그날은 주중인지라 비교적 전시장이 한적했다. 전통 한옥 기와집의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을 개조해 예술 전시관으로 꾸며 놓은 몇몇 한옥 전시관 중 수공예품을 전시해 놓은 한 전시관을 찾았다. 마침 그곳 전시장 처마 귀퉁이에 하찮게 걸려있는 나무 회초리와 회초리 아래 활시위처럼 걸어놓은 수예 주머니 뭉치를 거금(?) 오만 원에 사 들고서 집으로 돌아와 안방 침대 머리맡 벽면에 소중히 걸어 놓았다.
당시 1, 2층에 전시된 다양한 수공예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감상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전시된 여러 작품 중 유독, 전시관 입구 천장 귀퉁이에 하찮게 걸어놓은 그 작품이 눈에 들어와, 전시 주체 접수대에 가서 가격을 물으니 일금 오만 원이란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이름난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인데... 혹,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가격을 물으니 두말도 하지 않고 오만 원만 내란다. 그리고는 하찮은 듯 낡은 종이가방에 주섬주섬 싸주는데 회초리는 없고 수예 주머니만 달랑 싸준다.
아마, 회초리가 아니라 수예 작품이 탐나서 사는 줄로 알았나 보다.
하나, 나는 수예 주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초리를 싸 달라고 하니 “그깟 집 주변이나 산과 들에 흔히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왜 싸 달라느냐?”며 오히려 의아해하는 눈초리로 나를 되 쳐다본다.
내 나이 어느덧 육순을 넘어 ‘마음 가는 데로 행해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從心)의 나이다. 벌써 머리 위에 무서리가 내려앉아 서릿발이 성성해도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회초리 채를 들고 산다. 사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선 생전에 회초리는커녕 큰 소리 한 번 안치시고 나를 키우셨다. 아마도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내가 측은하고 안쓰러워서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손주가 얼추 다 커버린 지금 이 나이에도 뒤늦게나마. 마음속 한구석엔 여전히 회초리 채를 든 채 살아가고 있다.
육십 평생 세간살이... 그 굴곡지고 험난한 삶을 지금까지 홀로 꾸려오면서 아무도 내게 회초리를 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세찬 삶의 현장에서 올바르고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내 마음속에 회초리로
수 없는 매질을 해대며 지금껏 살아왔다. 나는 안다. 다 쓰러져 가는
팽이가 회초리를 맞고 나면 곧추 일어나 다시 팽팽 돌 듯, 잘못된 삶과 인생살이가 회초리로 매를 맞을 때 다시 곧추 일어선다는 걸.
요즈음엔 어느 집엘 가도 회초리를 찾아볼 수 없다.
머지않아, 오랜 박물관이나 가야 옛 부모님들이 자식 훈육에 사용하던 회초리를 찾아볼 수나 있게 되리라. 하지만, 매 없이 살아가는 지금 세대가 난 무척이나 두렵다. 매 없이 살아갈 만큼 지금 세대가 올곧지도, 그들이 사는 요즘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구 팽이처럼 매 없이도 스스로 곧추서서 팽팽 잘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잖은가?
우린 누구나, 목매기송아지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아직 코뚜레를 뚫지 않고 매 한번 맞지 않은 목매기 어린 송아지는 참 앙증맞고 어여쁘다. 그러나 코뚜레 굴레로 단속하지 않은 황소는 어느 야수(野獸)보다 더 사납고 무섭다. 조율되지 않은 악기가 제소리를 낼 수 없듯이 코뚜레를 뚫지 않고, 회초리 채로 단속하지 않는 인생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난 오늘도 철없는 목매기송아지가 되지 않기 위해, 코뚜레가 없는 야생 들소가 되지 않기 위해 매운 회초리 채로 내 마음자리를 매섭게 내리친다. <끝>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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