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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우수상-박옥란 디룡이의 행복한 봄날 - (산문, 지체, 동화)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2/29 [13:55]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우수상-박옥란 디룡이의 행복한 봄날 - (산문, 지체, 동화)

최봉혁 | 입력 : 2022/12/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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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박옥란 디룡이의 행복한 봄날 - (산문, 지체, 동화)(사진=강선아작가의 해바라기 )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박옥란 디룡이의 행복한 봄날 - (산문, 지체, 동화)

 

디룡이의 행복한 봄날 

                                                                           박옥란

 

  

  치, 언제는 지렁이 똥이 최고라더니 자꾸 화가 납니다. 

  “누가 똥 쌌니?”

  “디룡이가요.”

  형들은 보지도 않고 대답했지요.

  “내가 안 쌌거든.”

  “안 봐도 알거든. 으, 구린내.”

  형들은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눈웃음을 치고 코를 잡고 나를 놀렸습니다. 

  “아니야, 진짜 내가 안 쌌어.”

  “냄새가 딱 보니 디룡인 거 같은데.”

  엄마아빠까지 내 맘도 모르고 형아들과 한 편이었습니다. 

  “으앙, 오늘 똥 안 쌌다니까.”

  아침부터 내 똥 이야기만 하다니 분하고 억울해서 지금까지 속이 상합니다.

  축축하고 캄캄하고 아늑한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파트 12층 할머니가 꾸며놓은 화단이었습니다. 어느 여름비가 억수같이 내려 베란다 화단이 무너졌고 하수배관을 타고 이사한 곳이 여기, 8층 봄이네 집입니다. 봄이네 베란다 창 앞에는 길쭉한 상자 세 개가 나란히 있어요. 제일 왼쪽에는 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있고 가운데는 제라늄꽃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여러 종류의 다육이가 있어요. 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심겨 있는 흙 속이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아파트는 다 똑같이 생겨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아침마다 베란다 창가에서 작은 새들이 노래하고 여름날엔 매미가 떼창을 해서 피곤하고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몰래 들어와 조곤조곤 다정한 이야기를 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저번 집은 양파와 파를 심어놓은 흙 속이라 코가 매워 재채기를 자주 했는데,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신선하고 달큰해서 매일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 또 12층은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는데, 여기는 엄마와 아빠 봄이, 세 사람이 산다는 겁니다. 우리 가족은 엄마아빠, 기룡이형, 니룡이형, 나, 이렇게 다섯이랍니다. 

 

  "아주머니, 어쩜 기룡이, 니룡이는 저렇게 늘씬하고 잘 생겼나요?"

  제라늄 아줌마는 오늘 아침에도 형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정말이지 형들은 미끈하고 빛이 나는 피부에다 홀쭉한 배와 키도 딱 적당합니다. 거기에 형들은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납니다. 엄마는 형들이 매일매일 흙 목욕을 열심히 한 거라고 하는데, 그건 참 이상합니다. 흙 목욕이라면 나는 형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내게는 그런 좋은 냄새가 안 납니다. 좋은 냄새는커녕, 지독한 냄새만 납니다. 

  "휴우, 뿌웅."

  "아이구, 구린내야!"

  "똥쟁이 또 똥 쌌니?"

  제라늄 꽃향기를 맡느라 흙 위에서 코를 벌름거리던 기룡이, 니룡이 형들이 소리쳤습니다. 코를 막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형들 때문에 나는 더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형들은 날씬하고 멋지고 똑똑한데, 왜 나만 못생기고 뚱뚱한 거야?’

  ‘어쩜 난 지렁이가 아닐 거야.’

  ‘무슨 지렁이가 이렇게 뚱뚱하고 크냐고?’

  베란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다는 것이 그만 방귀까지 싸 버렸습니다. 

  "누가 똥 쌌니?"

  "디룡이가 방금요."

  냄새가 너무 나서 내가 똥 싼 것을 누구라도 금방 알아챘습니다. 형들보다 키가 크고 몸집이 더 큰 나는 흙밥도 두 세배를 먹고 똥도 더 자주 눕니다. 

  "누가 똥 쌌니?"

  엄마나 아빠, 형들이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 나는 맘이 자주 상합니다. 이웃이 다 듣도록 크게 묻고 또 온 세상이 다 듣도록 대답합니다. 

  "디룡이가 쌌어요!"

  이 소리가 정말 창피해서 하루에도 얼굴이 몇 번이나 빨개집니다. 아기 때는 많이 먹고 많이 싸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구, 우리 막내 디룡이 잘한다, 잘한다."

  밥 먹고 똥 쌀 때마다 엄마가 내 궁둥이를 두드리며 칭찬했습니다. 흙밥 먹고 똥 싸는 것을 최고 자랑으로 생각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이 좀 든 요즘엔 다릅니다. 똥을 많이 싸고 똥냄새가 심해질수록 가족들이 나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고 특히 형들은 다른 친구나 이웃 앞에서도 나를 놀려댔습니다. 키득거리거나 손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이상하네, 요즘 디룡이 똥냄새가 안 나네."

  엄마가 계속 코를 벌름거리며 우리 흙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동안 집안 냄새가 좋아졌는걸."

  아빠도 껄껄 웃으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형들은 자기들끼리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난 엄마아빠 말에 몰래 웃었습니다.

  "이제 내 똥냄새는 못 맡을걸요."

  나는 큰소리로 엄마아빠에게 대답했습니다. 

  엄마아빠는 서로를 보며 말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디룡이가 수상하네."

  "그러게요, 밥만 먹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와요."

  사실 나는 똥꼬에 힘을 꼭 주고 재빨리 집을 빠져나가 제라늄 상자 흙 속에 똥을 누고 왔습니다. 제라늄 아줌마는 마음이 착해 코를 잡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오히려 나에게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디룡아 자주 놀러 와."

  "네, 미안해요, 아줌마."

  몰래 똥을 싸고 나오다 들킨 나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제 똥냄새가 지독하다고 형들이랑 엄마, 아빠가 놀려서요. 여기에 똥을 누면 아무도 안 놀리니까 제가 그만, 죄송해요."

  "괜찮아, 디룡아. 아줌마 잎 냄새도 아주 지독하단다. 하지만 좋은 점이 있지. "

  "뭔데요?"

  "나쁜 벌레들이 얼씬도 못 하지. 그리고 잎 냄새는 고약하지만 이렇게 분홍이 같은 예쁜 꽃을 낳았지 않니?"

  "좋겠어요, 아줌마는. 저는 못생기고 키가 너무 크고 똥냄새만 지독하고... 좋은 점이 하나도 없어요."

  "무슨 소리야, 디룡아.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가 얼마나 좋은 게 많은데."

  "괜히 위로하실 필요 없어요. 저도 잘 알아요. 아마 전 지렁이가 아닐지도 몰라요. 우리 가족 중에 저처럼 생긴 지렁이는 아무도 없거든요."

  풀이 죽어 축 늘어져 있는 내게 제라늄 아줌마는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디룡아, 네가 매일 몰래 똥을 누고 가서 분홍이가 건강해졌단다."

  제라늄 아줌마네에 올봄 분홍이가 태어났는데 분홍이는 몸이 약해 늘 시들시들했거든요. 

  "네? 제가 똥을 눠서 분홍이가 건강해졌다니요?"

  "사실, 네 똥은 건강한 흙을 만든단다. 그러면 분홍이와 우리의 뿌리가 그 흙 속에서 좋은 것을 먹고 더 튼튼해지는 거지."

  "아, 몰랐어요. 제 똥은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맨날 쓸모없는 건 줄만 알았는데."  

  "어쨌든 분홍이가 다시 건강해지고 예쁘게 피어서 저도 기뻐요."

  제라늄 상자를 건너오는 내 기분은 하늘 위 구름보다 더 높이 둥실 떠올랐습니다. 괜히 억지로 방귀를 뀌어 보기도 했습니다. 

 

  벚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달리고 목련 나무 가지마다 작은 새처럼 꽃들이 앉아 있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나는 베란다를 통해 하늘이랑 나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 집에 사는 봄이가 베란다 빨간 소파에서 읽어주는 책입니다. 

  "버, 버, 버."

  "봄아, 말을 똑바로 해야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봄이는 여덟 살이라 이제 곧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아직 말을 못 합니다. 

  "엄마, 아빠, 버, 버, 버."

  엄마아빠 소리 외에는 모두 버,버,버 라고만 합니다. 처음부터 봄이가 말을 못 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봄이가 다섯 살 때부터 좋아하던 혁이 뺨에 뽀뽀를 쪽 했습니다. 

  "에고고, 봄이 입에서 구린내가 나!"

  혁이가 소리 지르자 민들레 반 봄이 친구 모두가 하하 웃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배를 잡고 뒹굴며 봄이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기도 했습니다. 봄이의 뺨은 당근처럼 빨개지고 심장에서는 쿵쾅대는 소리가 났습니다. 봄이는 앙하고 울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봄이의 입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그날부터 봄이는 누가 물어도 버,버,버, 라고만 했습니다. 

 

  봄 햇살이 내 눈꺼풀에 내려와 살짝 앉았습니다. 어제부터 다이어트한다고 흙밥을 반 공기만 먹었더니 오늘 아침은 니룡이 형이 남긴 밥까지 다 먹어 버렸습니다. 하품이 계속 나옵니다. 봄이가 얼른 나와야 할 텐데. 나는 빨간 소파 앞까지 슬금슬금 기어 나와 봄이를 기다리며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말을 못 하는 봄이는 친구가 없습니다. 봄이는 엄마아빠가 없는 시간에는 항상 베란다에 놓인 빨간 소파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버, 버, 버."

  그런데 나는 봄이가 읽는 소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헨젤과 그레텔을 읽어줍니다. 

  "흑, 불쌍한 헨젤, 그레텔."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귀를 바짝 소파 쪽으로 대고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윽, 갑자기 똥이 마렵네. 이야기 들어야 하는데, 아, 아, 급하다."

  아까부터 참던 똥을 누려고 급하게 스륵 스륵 상자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봄이가 나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뱀이다!"

  "뱀?"

  나는 뱀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봄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봄이와 눈이 처음 마주친 그날 세상에서 제라늄아줌마네 분홍이가 제일 예쁘다고 한 생각을 일초에 취소했습니다. 봄이의 눈은 캄캄한 하늘에 별처럼 반짝였고 봄이의 뺨은 분홍이보다 더 희고 환했고 봄이의 입술은 방울토마토보다 더 붉고 빛났습니다. 봄이를 오래봤지만, 오늘처럼 자세히 쳐다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뭐, 내가 뱀이라고?"

  너무 놀라 방귀가 저절로 뿡 나와 버렸습니다. 봄이가 냄새난다고 할까봐 엉덩이를 빨리빨리 흔들었습니다. 

  "뱀이니?"

  이번엔 봄이가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아니, 난 지렁이야. 내 이름은 디룡이야."

  "뱀이 아니고 지렁이야?"

  "응, 내가 형들보다 키가 크고 좀 뚱뚱하긴 해도 틀림없이 난 지렁이야."

  "히야, 정말 지렁이구나."

  나를 찬찬히 보던 봄이는 활짝 웃었습니다. 봄이가 웃으니 창밖에 꽃들이 더 붉어집니다.

  "하하, 디룡아, 난 봄이라고 해."

  "응, 사실 네 이름은 벌써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매일 소파에서 읽어주는 책들도 다 알고 있어. "

  "그래? 너도 이야기를 좋아하니?"

  "그럼, 그럼, 나도 봄이 너만큼 세상 이야기를 너무너무 좋아해. 그리고 넌 세상에서 젤 책을 잘 읽어."

  봄이는 내 말에 손뼉을 치고 좋아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매일 봄이는 책을 읽고 난 열심히 들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오고 축축한 바람이 베란다에 불어오는 오후였습니다. 이런 날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입니다. 나는 오늘도 봄이와 만날 생각에 베란다 창에 더 오래 붙어 서서 머리를 매만지고 흙을 쓸어내고 배를 좀 집어넣고 요란을 떨고 있었습니다. 

  ‘오늘 봄이는 용에 대해 더 읽어 준다고 했어.’

  ‘난, 용을 본 적은 없지만, 용처럼 멋지게 날아가는 꿈을 꿔야지.’

  "엄마야, 베란다에 웬 지렁이야? 징그러워."

  순간 내 몸이 부웅 뜨더니 이마와 배와 꼬리에 한꺼번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습니다.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꾹 참았습니다. 날기 위해선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며칠 전부터 겨드랑이가 좀 간지럽더니 날개가 자랐나 봅니다. 나는 드디어 봄이가 읽어 준 책 속의 용이 된 걸까요? 정말이지 내가 형들보다 키가 크고 몸이 뚱뚱한 이유가 용의 아들이기 때문일까요?

  "아, 어지러워."

  빙, 빙, 생전 처음 느끼는 기분입니다. 난 미운용의 새끼인 게 틀림없어요. 봄이 엄마는 나무젓가락으로 나를 들어 베란다 밖으로 던지려 했습니다. 

  그때, 

  "엄마, 안돼! 디룡이, 좋은, 똥!"

  봄이가 버,버,버, 하지 않고 똑똑하게 말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봄이 엄마는 너무 놀라 나를 떨어뜨린 줄도 몰랐습니다. 

  "봄아, 봄아, 다시 말해 봐."

  "엄마, 디룡이 똥, 흙, 좋아."

  "아이고, 내 새끼, 맞아, 맞아, 지렁이는 흙에 좋지."

  봄이를 얼싸안은 봄이 엄마는 눈은 울고 입은 호박만 하게 웃었습니다. 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기분이 좋아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처럼 날아보았습니다. 봄이만 아니었다면 베란다 밖으로도 훨훨 날아보았을 텐데. 그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오늘 봄이는 말을 하고 난 날 수 있었으니 헤헤, 멋진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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