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경기.
일요일 오후, 준희는 친구들이 여럿 모이는 복지관으로 느릿느릿 출발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지만 준희의 휠체어는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준희야, 컨디션 안 좋아?”
대환의 물음에 준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좀 천천히 가려고요.”
“그래. 피곤하면 꼭 말해. 중간에라도 집에 가면 되니까.”
야구장에 다녀온 뒤로 대환은 더 꼼꼼하게 준희를 신경 쓴다. 그 마음이 준희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선생님. 혹시 결혼식 가보신 적 있으세요?”
“결혼식? 응. 가본 적 있어. 가족들이랑 같이 갈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작년에 사촌 형이 결혼했거든. 그땐 좀 달랐어. 다른 형들이랑 부조금도 받아보고 신기한 경험 많이 했지. 이젠 나도 그런 데 가면 가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된 거야. 으윽.”
익살스러운 대환의 앓는 소리에도 준희는 웃지 못했다.
“그...있잖아요. 신부 가족들이 앉는 자리 말이에요.”
“아, 혼주석?”
“네, 거기 아무도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혼자 가족 아무도 없이 결혼하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준희의 말에 대환이 생각에 잠겼다.
“음, 아직 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 말이야. 내가 그렇네.”
“네?”
“나 아버지 안 계시거든. 엄마만 계셔. 결혼하면 혼주석 한 자리는 비어있겠지.”
기분 좋은 일이 없어도 싱글벙글이 기본값인 것처럼 웃는 얼굴이던 대환의 얼굴이 그처럼 굳은 것을 준희는 처음 봤다.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도 몰라.”
“왜요?”
준희는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마른 왜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우리 아버진 나쁜 사람이었거든.”
대환은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가 아닌 사람과 살고 있다고 들었어. 상대도 여러 번 바뀌어서 사는 곳도 여기였다가 저기였다가 아주 복잡하더라. 그래서 가끔 친척들이 소식 전해줘도 들은 척 안 해. 실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준희는 대환이 왜 그렇게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한 번도 짐작하지 못했던 대환의 아픈 그림자에 준희는 뭔가를 깨달았다. 건강하고 활기찬 선생님에겐 당연히 불행이 없을 거라 마음대로 짐작한 것이 마음을 얼얼하게 했다. 늘 이기는 경기를 하는 선수에게도 핸디캡은 있는 법이다. 다만 내색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괜찮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준희에게 대환은 웃음을 보였다. 아까 그 굳은 얼굴은 지워지고 언제나처럼 싱글벙글로 돌아온 대환을 보고도 준희는 쉽게 표정을 풀지 못했다. 복지관 친구들과 만난 준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국밥집으로 향했다. 모두들 얼큰한 국물을 좋아해서 정한 메뉴이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들 자신들이 겪게 된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식탁 밑으로 바퀴 안 들어가나? 좀 더 바퀴를 넣어요.”
앙칼진 핀잔에 준희가 괜히 전동휠체어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런다고 식탁 밑으로 바퀴가 들어갈 리 없었지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나운 눈꼬리가 조금은 내려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빙하는 직원들이 저마다 휠체어를 피해가며 눈을 흘기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거나 한 마디씩 거들었다. 친절한 사장님이나 직원을 만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점을 물어봐 주고, 나서서 의자를 치워주는 분들도 계신다. 그렇기에 오늘의 이 뾰족한 응대를 견딘다.
“아우, 진짜.”
대환이 이를 악물고 한 마디를 흘린다. 선생님 마음을 준희도 안다. 다만 소용이 없을 뿐이다. 처음 활동 보조 일을 시작 했을 때, 대환을 가장 막막하게 한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이었다. 준희가 이유 없이 당하는 부당한 일을 다 따지고 짚으려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대환이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준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십중팔구는 자신의 민낯에 더욱 분노했고, 그 분노를 준희에게 풀려고 했다. 그저 가만 있는 것 말고는 준희를 도울 일이 없다는 것이 오래도록 대환을 힘들게 했다. 준희는 대환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하고는 밥 먹는 친구들에게 슬쩍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식에 가본 적이 있느냐는 말에 준희 옆에 앉아 있던 우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국밥집에서도 이렇게 찬밥인데 결혼식장에 우리가 어울리겠어?”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 그게 축하하는 길이라고 가족들이 말하는 바람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준희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준희야, 무슨 일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결혼식 있니?”
재차 대환이 질문했지만 준희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하자니 결혼식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결혼식이 있다고 해야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준희는 진희는 없는 사람으로 치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한테 누나가 있대요.”
그래도 준희는 대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지 않으면 목구멍까지 차오른 무언가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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