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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⑤-제5경기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2/11 [00:09]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⑤-제5경기

최봉혁 | 입력 : 2022/12/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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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⑤-제5경기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⑤-제5경기 

 

5경기.

 

주말 아침부터 아버지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으나, 받는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준희는 재작년에 복지센터에서 달아준 벨을 눌렀다. 방 안에 있어도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는 바로 구급차를 부를 수도 있었다.

 

?”

 

아버지의 무뚝뚝한 대답에 준희는 고개를 움직여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뭐 좀 줄까?”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 없는 준희에게 말을 건네는 아버지에게 준희가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을 확인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 사진, 어디서 났어?”

 

제가 부탁했어요. 제가 계속 보여달라고 졸라서 삼촌이 어쩔 수 없이 보여주셨어요. 삼촌한테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 한 거예요.”

 

아버지는 말없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버지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절망한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진을 바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라.”

 

저 좀 일으켜 주세요.”

 

아버지가 준희를 일으켜 휠체어에 앉혔다. 아버지의 늘어진 티셔츠에서 잘 말린 빨래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준희가 먹을 식사를 미루거나, 빨래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준희는 언제나 깨끗하게 빨아 잘 말린 옷을 입었다. 대충하시라고 만류해도 아버진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계속 전화하는 사람이 누나인가요?”

 

누나라니? 너한테 누나가 어딨어?”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힘없는 목소리로 현실을 부정했다. 이미 진 경기라는 걸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왜 누나 전화를 안 받으세요?”

 

준희가 재차 물었다.

 

혹시 누나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

 

침묵을 견디던 아버지는 결국, 진희가 꼬박꼬박 돈을 보낸 내역과 문자들을 보여주셨다. 온통 준희에 대한 걱정과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 담긴 문자를 준희는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너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간신히 마음 붙잡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데 더 불행하게 만들지 말라고 한 다음부터는 연락이 좀 드문드문 했는데.”

 

아버지는 말씀 중에 한숨을 쉬셨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너무 무거워 쉬어가는 것 같았다.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구나.”

 

아버지는 처음으로 진희를 준희의 누나라고 불렀다. 준희는 그 사실에 감격하느라 이어진 단어에 대한 파급을 얼른 느끼지 못했다. 결혼. 결혼이라니. 누나가 결혼을 한다니.

 

결혼이요?”

 

그래. 결혼하기로 하고 신랑 될 사람에게 우리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고. 피치 못해 헤어져 살았지만 이제는 가족으로 만나고 싶다고. 결혼식 전에 신랑 될 이의 얼굴도 보고 같이 밥도 먹자고 매일 전화를 했어

 

아버지는 준희의 얼굴을 살폈다. 차마 사위나 매형과 같은 호칭을 쓸 수가 없어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는 청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한 것 같았다.

 

절대 안 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먼저 연락할 일 없을 테니 신랑 쪽에 다시는 우리 이야기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우리는 지금처럼 진희에 대해 잊고 살면 된다.”

 

진희라고 딸의 이름을 발음할 때 아버지는 불길에 타는 듯 고통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너를 두고 떠날 때 너무...힘들어 했어. 내가 우겼다. 네가 자라면 여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남자인 내가 너를 맡고 진희를 엄마가 데려가는 게 옳다고.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식들 생각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마구 몰아쳤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친정집이 있는 도시로 떠난 엄마는 한동안 밤새 운전을 해서 준희네 집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열리지 않는 대문을 두드리던 엄마는 새벽에 길을 떠났다가 밤이 늦으면 달려오는 일을 반복했다.

 

몇 년 지나니 잦아들더구나. 네 누나 학교 보내야 하고, 일도 해야 했으니까 마음을 잡았지. 그러니 엄마가 너를 아주 외면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다 내 탓이야. 그간 너 병원 다니고, 치료받은 것도 다 엄마와 누나가 보내준 돈이 있어 가능했어.”

 

아버지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얼음장 같았다.

 

네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 그게 최선이었어. 그러니까 진희는 그냥 지금처럼...살게 놔두자. 아버지를 원망해. 아버지가 미안하다. 아버지가 미안해.”

 

아버지는 끝까지 해야 할 말을 했다. 그게 아버지였다. 평생 자식밖에 모르던 아버지.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버지를 냉정하게 만들었다. 그 차가움 속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길이 되어 아버지를 태우고 있었다.

 

아버지, 눈 감으면 엄나랑 누나 얼굴이 생각이 안 나요. 아무리 자세하게 보고 그리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요. 사진 돌려주세요. 더 보고 싶어요. 얼굴을 그릴 수 있을만큼만 볼게요.”

 

아버지는 다 구겨진 사진을 준희의 손 근처에 놓았다. 아버지 당신도 사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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