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②제 2경기
매치포인트
김보미
제 2경기.
새로울 것 없는 아파트 단지 풍경에 분홍이 끼어든다. 불이 번지듯 벚꽃이 피었다. 짧은 약속의 시간이다. 봄비가 내려 떨어지기 전에 한껏 끼어든 옅은 분홍이 반가워 잠시 바라본다. 어느새 도착한 선생님도 준희에게 말을 시키지 않고 같은 방향에 서서 벚꽃 구경을 한다.
평화로운 꽃놀이가 끝나면 전쟁이 시작된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은 전투에 가깝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전동휠체어는 달갑지 않은 돌발상황이다. 몇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나서야 겨우 버튼을 눌러 미끄러져 들어간다.
장애인을 위해 설치되어 있으니 배려해달라는 현수막은 아무 힘이 없다.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왜 그 몸으로 밖에 나왔냐”고 준희에게 면박을 준다. 처음엔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항의하거나, 설명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입을 다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침묵이 가장 좋은 방어전략이다. 선생님은 부러 찬바람이 쌩하게 휠체어를 미는 것으로 준희의 마음을 달래준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선생님과 준희는 소심하게 분을 푼다.
분홍은 반갑지만, 일교차 때문에 봄이 좋지만은 않다. 안 그래도 원활하지 않은 대사에 급격한 기온 차가 준희의 몸을 굳게 하고, 발작을 일으키게도 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선생님은 능숙하게 준희 무릎에 담요를 두르고 초코바를 하나 꺼내 손가락 틈에 끼워준다.
떨어진 혈당을 올리려고 초코바를 한 입 먹으려는데 옆 칸에서 막 건너온 아저씨가 비릿하게 웃으며 준희를 뚫어지게 본다.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도 준희는 피할 수 없다. 꽃이나 나뭇가지가 운명을 예감하고도 맥없이 꺾여야 하듯 준희도 마찬가지다.
아저씨는 단숨에 준희의 손에서 초코바를 빼앗았다. 뭔가 장한 일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남자의 행동에도 준희가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다. 깜짝 놀란 외마디 비명에 휠체어에서 조금 떨어져 핫팩을 흔들고 계시던 선생님이 방향을 틀어 준희의 앞을 막아섰다.
“뭐하는 짓입니까?”
선생님이 거칠게 항의하자, 남자는 놀란 눈치다.
“아니, 나는 내가 껍데기나 까줄까 하고...”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던 남자는 초코바를 던지듯 준희에게 돌려주고 다시 다음 칸으로 도망가버린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준희에게 괜찮냐고, 뭐 저런 사람이 있냐고 편을 들어준다. 준희는 괜찮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건널목에서 혼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일부러 인도 방향으로 바퀴를 틀어 올라설 듯 위협을 하며 굉음을 내는 운전자도 있었다. 휠체어를 급하게 뒤로 물리려다 길바닥으로 떨어진 준희가 사지를 바들거리는 모습을 보고 운전자는 만족한 듯 웃으며 떠났다.
큰 쇼핑몰에서는 카트로 경주를 하듯 준희의 휠체어를 따라다니거나, 정면에서 충돌할 것처럼 질주해서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가는 것을 놀이처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분하거나 억울한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했다. 활동 보조 선생님과 같이 다닐 수 있게 되고부터는 그런 일을 당하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감내하지 않으면 외출이라는 더 큰 가치를 잃어야 한다. 그래서 준희는 그런 일들을 그냥 받아들였다. 때로는 지는 경기에도 나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는 걸 그렇게 배웠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열이 오른 핫팩을 준희 몸 여기저기 붙여주시면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준희 어깨를 두드려준다. 선생님 방식의 위로다. 그 어떤 말로도 준희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언젠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준희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가라앉은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준희가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선생님은 세상에 대한 실망이 절망으로 변한다고 하셨다.
그러지 말라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무슨 소용이 있는 말인가. 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그나마 선생님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런 날이면 준희는 열심히 웃었다. 그러면 선생님도 결국은 따라 웃으셨다.
지환이의 연락에 핸드폰 진동이 연달아 윙윙 울렸다. 같은 전동휠체어 신세지만 지환이는 상체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그 자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겠지만 녀석은 백화점에 죽치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자리 잡고 여성 손님들만 골라 몇 시냐고 묻거나, 지하철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 녀석의 큰 낙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 복지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지만 지환이의 악취미를 아는 터라 흔쾌히 답하는 사람은 없다. 준희는 말리는 것도 한두 번이고,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훈수를 두는 것도 코미디라 매번 지환이의 연락을 거절한다.
누구는 불편한 몸으로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누구는 세상이 내 불행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환이는 후자다. 무슨 짓을 하든 세상이 참아줘야 한다고 우긴다. 오늘만큼은 더욱 그런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듣고 싶지 않다. 아침에 겪은 일로 충분하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선생님은 일부러 아파트 단지를 빙 둘러 준희를 집으로 데려다주신다. 벚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라도 그렇게 바깥 구경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하늘하늘 눈처럼 날리는 벚꽃잎이 어쩌다 준희 어깨나 손에 닿으면 선생님은 싱글벙글한다. 그게 소원이 이루어질 징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준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그런 걸 왜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밝은 얼굴이 좋아 덩달아 믿는 것처럼 기뻐한다. 꽤 많은 꽃잎이 준희 어깨를 찾는 동안 어둑어둑 어둠이 내렸다.
준희가 집안으로 들어서면 선생님이 소리 없이 대문을 닫으시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난다. 준희는 선생님의 퇴근길을 귀로 따라가면서 아버지를 찾는다. 삼촌은 아직 오지 않으셨다. 방문 앞에서야 아버지가 통화 중이라는 걸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동안 우리가 애쓴 것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냐?”
목소리를 낮추시던 아버지는 곧 거의 고함을 치다시피 성을 내셨다.
“절대 준희한테 연락하지 마. 아니, 우리 중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지금처럼 살아. 더는 저쪽에다 우리 얘기하지도 말고. 그게 살길이야. 우리는 너를 잊고 산다고, 절대 찾아가거나 손 벌리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해둬라.
우리 일로 너를 곤란하게 하는 일 없을 거라고 말해. 제발 너라도 사는 것처럼 살란 말이다! 삼촌한테도 말해 둘 테니 이제 전화하지 말아라.”
수화기 너머 상대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 내 생각은 변함없어. 죽은 네 엄마도 이걸 바랄 거다. 엄마도 힘들게 한 선택이야. 제발 헛되게 만들지 마라.”
아버지의 대꾸에 준희의 심장이 툭 발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어쩐지 준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면 혹시 준희의 엄마일까. 준희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엄마 이야기일까.
준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몸에 찾아온 희귀한 근육병보다 엄마의 죽음을 더 오래, 더 많이 아파했다. 만약 신이 준희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준희는 제 몸을 되살리기보단 엄마의 부활을 선택할 것 같았다.
그만큼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서도. 엄마에 관해서라면 준희도 들을 권리가 있다. 꼭 들어야만 했다. 준희가 조금이라도 휠체어 각도를 틀어 방문 가까이 가려 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밖에서 들을 땐 화가 나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버진 울고 계셨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나니, 전의가 사라졌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냐고, 혹시 엄마에 관한 이야기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준희는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가만히 대치하고 있었다.
삼촌이 와서 둘이서 싱겁게 뭘 하느냐고 물으며 준희를 화장실로 데려갈 때까지 부자는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삼촌이 준희를 침대에 내려놓고 불을 끄는 순간, 준희는 목구멍에 맴돌던 말을 밖으로 꺼냈다.
“삼촌, 혹시 우리 엄마 기억나요?”
사방은 계속 조용했다. 삼촌은 어둠 가운데 장승처럼 선 채로 묵묵부답이었다.
“돌아가신 엄마랑 이야기해 본 적 있어요?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그때는 내가 일한다고 어디 멀리 가 있어서 잘 몰라. 본 적도 없고. 그만 자라.”
삼촌은 내키지 않는 대답을 억지로 밀어내듯 말한 뒤, 준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터널에 들어선 듯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 악몽은 다시 준희를 찾아왔다.
발끝에서부터 점점 마비를 일으킨 근육은 결국, 심장을 돌처럼 굳게 만들었다. 더는 피를 뿜어내지 않고 멈춰버린 심장을 움직이려 애쓰던 준희는 또 죽었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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