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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최봉혁 | 기사입력 2024/08/01 [12:20]
한국장애인문화발전사 

[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한국장애인문화발전사 

최봉혁 | 입력 : 2024/08/01 [12:20]
 
 

▲ [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장애인문화예술발전사] 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대부분 의의 사람들이 그 어떠한 일들을 만들어 갈 때 자기 혼자 한 일처럼 얘기하곤 하는데 내가 한 일들을 돌이켜보면 그 어떤 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고 생각이 된다.
 
내가 해온 주요 실적들을 돌이켜 봐도 모든 일의 성공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다.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푸른하늘 합동 맞선대회”를 기획하여 진행할 때도 이 일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논의를 하였고 땀 흘리며 열정을 함께 하여 주었다.
  
우리 협회의 2대, 최형락회장님, 3-4, 6대 박덕경회장님, 5대 최부암회장님 등 우리 푸른하늘의 초창기 회장님들이 모두 이 일에 열정을 보이며 함께 동행 해주셨다. 
 
그 외에도 방송과 장소를 섭외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후원을 섭외하는 등 큰 힘이 되어준 복지TV 최규옥 회장님과  내 친구이자 유명 포크가수인 이철식씨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인들이 이 일에 동참하여 주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었기에 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푸른하늘 합동 맞선대회”로 인해 나는 한때, 전국적으로 장애인 전문 중매장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는 내가 처음에 앞장을 서서 시작한 이유일 뿐 앞에 열거한 여러분들의 덕분에 이 모든 역사는 남게 된 것이다.
  

▲ [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이외에도 나의 프로젝트로 공식 알려졌던 장애인 운전자들을 위한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제도 역시 주도한 단체인 “건전한 선진시민운동본부”의 본부장이 나였을 뿐, 이 제도를 처음 만들기 위해 몇몇 분들이 자료를 만들고 수집을 하는 등 많은 분들께서 노력을 한 결과물 이므로 그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 중 에서도 이 일에 필요성을 제일 먼저 통감하고, 제안을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아준 “곰두리차량봉사대”의 김만융회장님의 공적이 제일 컷 는데, 다만 본 제도를 “행정쇄신위원회”에 제안을 하였던 “건전한선진시민운동본부”의 내가 실무대표(본부장)였기 때문에 대통령 표창을 내가 대표로 받은 것뿐이었다. 
 
이 기회를 빌려 함께 고생을 하였던 김만융, 정덕환, 박윤구, 도상철, 등 그 시절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 외에 이러한 기억들은 몇 차례 더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른바 장애인 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즉 장예총의 결성 과정을 얘기하고자 한다.
  
내가 장애인 단체 일을 시작한 동기가 1981년 UN에서 제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시작된 KBS 라듸오 방송에 ‘내일은 푸른하늘’이란 방송에 참여를 하면서 시작이 되였는데, 그러한 이유로 나는 우리 단체를 복지 쪽이 아닌 문화예술 쪽에서 진행하겠다는 생각을 깊게 갖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유로  2002년에 시작한 법인 신청도 복지부가 아닌 문화체육부로 접수를 하였고 여러 역경 끝에 2003년 4월 18일 장애인의 날 기념선물로 “사단법인 푸른하늘장애인문화협회”를 받아 내였다.
  

▲ [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당시, 문체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장애인 관련 법인이 3개 단체쯤 있었는데, 별 존재감은 없었고, 우리 푸른하늘이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면서 장애인 문화예술의 붐이 일어나 이후 짧은 시간 속에서도 장애인 관련 문화예술단체 10여개가 더 새로 법인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이 우리 장애예술계에도 예총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각 단체에 장애인예총으로 연합회를 결성하자는 공문을 보낸 결과 7개 단체가 호응을 보여 수차례의 준비모임을 거친 후 2007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7개 단체로 출범이 되어 장애문화예술의 르네쌍스 시대를 열었다(그로부터 5년 후인 2012년에 장예총은 사단법인이 됨)  
    
특히 2008년 4월 국회 마지막 회기에서 장예총 회원단체들(당시 나는 상임대표였다.)이 하나로 뭉쳐 일궈낸 “문화예술진흥법”의 제15조 2항(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의 지원) 개정으로 국내 최초의 장애문화예술의 지원 관련조항 명시는 장애문화예술 지원의 근간이자 오아시스가 됐다.
   
그때로부터 17여년이 흘러간 오늘 "그때와 비교해 정말 많은 발전이 이었구나" 하고 살짝 눈가가 촉촉해 진다.
   
그땐 정말 우리들의 일을 맡아 제대로 처리해 줄 전담공무원 단 1명이 없었는데, 지금은 전담과인 “장애인문화예술과”가 7명으로 출범을 하였고,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장애문화예술의 전담기관(장애인문화예술원)도 벌써 9년차에 접어들었다.
   
이 외에도 ‘장애예술인지원법’과 ‘장애예술인창작작품우선구매법’ 등이 법률로 마련이 되였고, 우리들의 염원 중에 하나였던 무장애표준공연장(모두예술극장)이 2023년 10월 개관에 이어 2024년 말에는 같은 개념의 모두갤러리(가칭)가 오픈을 예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예산의 큰 증가 등 괄목할만한 부분이 많지만 아직도 우리 장애예술계는 배가 고프다.
 

▲ [기획취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이사장 "협력과 열정이 장애문화예술의 큰 발자국을 남기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의 핸디캡으로 인해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생활속에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문화 예술을 언제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것이 장애예술계의 바램이다. 
 
이렇듯 장애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음은 장애예술의 발전을 위해 뜻을 함께한노력의 결과이기에 장애 예술인들과 관련단체의 여러 대표(최공열, 김충현, 방귀희, 김양수, 홍이석, 최영묵 등)님들께 이 영광된 역사의 과정에 함께 노력하고,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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