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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⑤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약칭, 장예총) 출범역사

최봉혁 | 기사입력 2024/07/11 [19:24]
[장애인문화예술발전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스토리내가 함께 하였던 기관들

[기획취재] ⑤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약칭, 장예총) 출범역사

[장애인문화예술발전사]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스토리내가 함께 하였던 기관들

최봉혁 | 입력 : 2024/07/11 [19:24]

▲ [장애인문화예술발전사] 문화창조기지 안중원 스토리④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약칭, 장예총)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서울=장애인인식개선신문)내가 함께 하였던 기관들⑤ 

 

-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약칭, 장예총)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 장애 문화예술 관련 단체들이 활성화되자 그 수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이를 보면서 "내가 느낀바는 문체부에 소속된 장애문화예술 관련 단체들이 좀더 협력을 해야 좀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체부를 소속 관청으로 설립된 장애문화예술 관련 법인단체들에게 우리 모여서 연합하자고 제안했다.

 

설립목적은 일반예술단체의 예총처럼 우리도 장애인 예총을 구성하자 제안을 하였고 대부분의 단체들이(7개) 이에 동의를 표해 주어 2006년에 우리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연합단체를 창립했다.

 

공동대표제를 채택하여 내가 초대 상임대표로 선출이 되어 약 3년간 이끌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우리들은 정말 하나가 되어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 장애인문화예술진흥전진대회1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국내 최초로 “장애인 문화예술 전진대회”를 국회에서 개최하여 장애인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였으며, 발의는 되였으나 여야의 정쟁으로 폐기 위기에 몰려 있던 문화예술진흥법의 제15조 2항의 개정을 위해 우리 단체장들은 관련 위원회의 여, 야 위원들을 나누어 맡아 설득을 위해 찾아 다닌 결과, 극적으로 법을 개정하는데 성공하여 장애 예술인 들과 관련 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만들어, 장애인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개정된 조항은 장애예술 발전에 오아시스 같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 

    

이렇게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미 인가 단체에 한계점을 느꼈고, 우리 연합회를 사단법인화 하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아직 열악한 환경속에 있었던 우리들의 힘으로는 법인화에 필요한 기본재산 등 재원 마련에 한계를 느끼고, 장예총의 발전을 위해 나는 좀 더 능력이 있는 리더에게 자리를 내어주고자 물러났는데, 이것이 나의 “장예총”  상임대표의 첫번째 임기였다. 

    

그 이후 “장예총”은 새로운 단체들을 추가로 받아들이고, 조직을 개편하여 새로이 상임대표로 김양수(한빛예술단 이사장)를 선출하고 노력한 결과 2012년에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로 재 탄생하게 됐다.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진흥전진대회-2008-05-29-국회의원회관1층소강당-이상민국회의원실-장예총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제2기, “장예총”에서 나도 공동대표의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 당시 장애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행사는 “장애인문화예술축제”로 당시 예산이 9억 5천만 원의 큰 사업 이였는데, 예산을 마련한 단체가 복지부 소속의 “한국장애인연맹”이 여서 그 단체가 1회부터 3회 대회까지 계속 주최하고 있었는데, 나는 문화예술축제를 왜 복지부 단체가 주최하는가? 문체부의 산하단체인 장예총에서 개최해야 된다고 문체부에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공개 경쟁을 통해 개최권을 가져 오겠다고, 장예총 김양수 상임대표에게 승인을 받고, 함께 공동대표로 있던 ‘방귀희’회장과 협력하면서 공개 경쟁을 통해 제4회 대회의 개최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이후 한번 더 경쟁을 하였지만 문화예술 사업은 문체부 소속의 연합회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받아져서 6회부터 장애인문화예술축제는 공모 없이 장예총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이후 나는 2015년에 “장예총”의 법인 제2대 상임대표로 선출이 유력하였으나, 장예총의 법인화에 공동 공로자였던 방회장에게 양보하고, 2년 후인 2017년에 장예총의 제3대 상임대표로 선출되어, 두 번째 임기를 맡게 되였다. 

   

주 5일 중 3일은 문화협회에서 주 2일은 장예총에서 근무하게 되였는데, 당시 나는 “한국장애인포럼”회장과 “2018, 올림픽조직위원”을 겸직하고 있었기에 가장 바쁜 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단체나 대표의 입장은 공정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모든 구성원을 감싸 않을 수 있는 그러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장예총의 상임대표 자리는 많은 결정이 필요한 그런 자리였는데 특히 우리 장애총에는 사단법인 단체가 11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장애 예술인, 장애예술관련 동아리, 그리고 아직 장애총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문화예술관련 사단법인 단체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그러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장애계에 문화예술이 주목을 받으니, 많은 단체들이 새로이 태어나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눈에는 장예총이 많은 부분을 독식하는 공룡으로 보여 져, 특히 공모 사업 때에는 문화예술 관련 풀뿌리 단체들에 집중 포화를 받곤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그렇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장예총에 소속되어 있는 대 부분의 단체들이 현재 장애 예술계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들이 모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 것이었다 하지만 장예총의 모든 단체들도 십 수년을 풀뿌리로 시작해서 갖은 어려움 끝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만큼 현재 풀 뿌리 단체들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할 것이라고 이해를 시켰다. 

    

나 역시 어려운 여건 하에서 풀뿌리로 시작해 30년 이상을 단체를 위해 노력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늘의 메이저급 단체로 키워낸 경험이 있는 만큼,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만 내가 장애총의 역할로 중요하게 보는 것은 우리 장애총이 장애 예술계의 예총인 만큼, 아직 우리 장예총안에 들어와 있지 못한 단체들이나, 풀뿌리들도 감싸 않아야 되는 입장이라는 것이 내 분명한 생각이다. 

    

우리 장애 예술계에는 수많은 장애 예술인 들과 예술동아리들이 있기에, 장예총이 존재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업을 집행할 때 특히, 축제와 같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때, 절대로 회원단체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가능한 축제에는 회원단체 뿐만 아니라 아직, 장예총에 가입이 되지 못한 단체들이나, 동호인 단체들도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넓혀 놔야 된다고, 그것이 장예총의 힘을 키우는, 그리고 더불어 성장하자는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장예총에 속한 단체들은 너무 자기 단체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분야에 단체들과 동호인 단체들도 감싸줄 수 있는, 함께 할 수 있는 선도적 역할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방향성을 유지해야 장예총은 좀더 강력한 힘으로, 크게는 정부의 문체부를, 작게는 장문원을 상대해서 장애예술인들의 권리를 지켜내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진흥전진대회-2008-05-29-국회의원회관1층소강당-이상민국회의원실-장예총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2015년에 우리나라에는 장애예술을 전담으로 책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 탄생하였는데, 이른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그것이다. 

    

정부를 대표하는 장문원과 장애예술인 및 관련 단체를 대표하는 우리 장예총은 사사건건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특히 공모사업 전후에서는 서로의 입장과 공모 사업의 기준과 결과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곤 했는데, 그 선봉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장예총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나의 입장이었다. 

   

 “장문원”에 초대 이사장은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의 1세대로, 비올라 연주자인 신정호씨가 이사장으로 선임이 되었는데, 신정호 이사장과, 나는 어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존중하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장예총을 대표하고 있던 나는 신 이사장과 자주 대립을 하게 되었고 특히, 3월중에 발표되는 공모 사업에 결과가 나올 때면 특히나 치열한 논쟁을 하곤 했다. 

    

일 이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는 유독 장문원에 잘못된 처사가 내 눈에 크게 보였고, 이를 그냥 넘기질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로 인해, 나는 장예총의 아주 악명높은 사람으로 장문원에서 모두들 인지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던 중에 장문원에 초대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2018년 11월에 후임 2대 이사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공교롭게도 내가 선임됐다.

    

나 역시 그 자리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리가 공개 공모도 아니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선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또한 이미 그 자리에 가리라 예상하던 인물들이 여러 사람 하마평으로 오르내리던 차라, 현 정부와 별 관계도 없고, 반대편(장예총)에 상임대표로 있던 나는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선임된 결과를 보고, 나 역시 적지 않게 놀랬다.

    

하지만 그 자리는 우리 장애 예술계를 또 한번 변화 시킬 수 있는 자리였고, 관을 대표하는 장문원과 예술인을 대표하는 장예총이 긴밀한 협력관계로 변화한다면 장애예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그 역할을 감당하고자, 나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 하리라 다짐을 하면서 내가 맡고 있던 “한국장애인문화협회”와 “장예총”의 대표 자리를 모두 사임하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제2대 이사장의 취임을 준비하게 됐다.

    

장문원에 이사장으로 선임되는 이유로 문화협회 회장과, 장예총의 상임대표의 임기를 약 5개월 정도 남겨놓고 떠나야 했지만 나에게는 그저 보람과 의미가 있었던 행복한 시절 이였다.

    

이 지면을 빌려 장애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함께 해 주었던 최공열, 김충현, 방귀희, 홍이석, 김양수, 최영묵, 변승일, 배은주, 안이문, 신동일 등 각 대표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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