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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우 전·미 백악관 장애정책 차관보˝꼭 할수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수있다˝스토리④:장애인인식개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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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우 전·미 백악관 장애정책 차관보"꼭 할수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수있다"스토리④

최봉혁 | 기사입력 2024/03/03 [11:34]
마라톤 42.195킬로미터 6시간11분 에 완주
"우리 한인  커뮤니티는 왜 무관심으로 대할가?"

[기고]박동우 전·미 백악관 장애정책 차관보"꼭 할수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수있다"스토리④

마라톤 42.195킬로미터 6시간11분 에 완주
"우리 한인  커뮤니티는 왜 무관심으로 대할가?"

최봉혁 | 입력 : 2024/03/03 [11:34]

▲ [기고]박동우 전·미 백악관 장애정책 차관보"꼭 할수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수있다"스토리④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서울=장애인인식개선신문) 그는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이다. 그는 시의원에도 출마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골프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성공한것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역전드라마이다.
 
그는 바로 박동우차관보(이하 박차관보) 이다. 그는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그래도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마라톤에 도전해 42.19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6시간 11분 만에 완주해 인간승리의 극기력을 보였다.
 
박차관보는"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꼭 할수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이 인생에서 가장 놀랍고 미국 각계각층의 시민들에게 각인 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 1985년 9월 어느날 당시 김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명한 옹(작고)이 당시 7년 째 미국 대기업 퍼시픽벨 전화 회사에 근무하는 박동우씨(현재 샤론 퀵 실바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했다. 김명한 옹은 당시 올림픽 노인회도 이끌고 있었다. 김 옹은 우리 노인들이 전화 요금에 대하여 불만이 많다"고 했다. 박동우씨는 올림픽 노인회 사랑방에서 회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 자리에서 한 인 노인회원들은 평소 싸였던 전화 요금 고지서에 대하여 불만들을 토로했다. 예를들면 3불 정도만 납부하면 될 전화 요금이 회사 측의 부당한 세일즈로 한인 노인들이 잘 이해도 못하고, 원치도 않았던 선택통화나 통화대기 등등 서비스 비용 등에서 부당요금이 징수되고 있었다. 
 
이같은 실태는 1984년 전화 회사들이 분리되면서 과도한 경쟁상태에 들어가면서 지역 전화회사들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장거리 전화를 포함해 여러가지 선택서비스를 유도하여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이같은 전화 회사들 의 실적 쌓기에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이민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은 한인들은 전화는 생활에 필요하 기에 전화 회사들이 유도하는대로 좋은 것 인줄 알고 여러가지 선택서비스에 응하다 보니 많이 사용 도 하지 않았는데 전화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부당한 요금 청구를 발견하게 된 박동우씨는 이에대해 설명하고 해결 방법도 알려드렸다. 그러나 영 어를 잘 못하고 주위의 도움을 받기 힘든 노인들은 많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박차관보는 주말을 이용해 전화회사 부당요금 정정과 환불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일을 혼자서 하기에는 부당요금 피해 한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화 회사 직원인 박차관보의 도움도 한계 가 있었다. 자칫 이같은 일에 너무 깊숙히 관여하게 되면 회사 측에서 볼 때 회사의 이익이나 입장과 반대될 수도 있어 해고 당할 위험도 있었다. 이에 박동우씨는 자신이 고문으로 활동했던 남가주한인 총대학생회(당시 회장 이무곤)의 협조를 받아 대학생 회원들에게 전화회사의 부당한 요금 식별방법 과 해결 방안들을 교육시켜 동포사회 전반에 걸쳐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전화요금 서비스 문제는 거의 동포사회 가정이나 업소들이 느끼는 문제였다. 한인학생들이 노인들을 대신하여 전화회사 측에 부당요금과 부당 서비스에 진정을 하였으나 전화회사 측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동우씨는 당시 한인회를 포함해 커뮤니티의 1.5세 단체들과 젊은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거의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들 한인 커뮤니티 단체들의 무관심에 박차관보는 “나는 정 의감에서 부당한 처사에 싸우려고 하는데 우리 커뮤니티는 왜 무관심으로 대할가?”라며 속으로 마음 을 태웠다고 했다
 
"우리 커뮤니티는 왜 무관심으로 대할가?"
한편 전화 회사 측의 부당요금 징수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에 박차관보는 미국사회가 여론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에, 한인총대학생회와 협의해 올림픽 한인노인회(당시 회장 김명한), 금란노인회 (회장 김유문)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했다. 여기에 박동우씨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장애인단체 '물 덴동산 회원들과 함께 모두 200여명이 다운타운 1010 윌셔 불러버드에 위치한 퍼시픽벨 전화 회사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부당요금 철폐하라"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라는 구호도 있었다. 
 
당시 회사에 근무중인 박동우씨는 주위 직원들로부터 “너희 코리안들이 밖에서 데모를 한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인 들의 시위에 놀란 퍼시픽 벨 전화회사는 수석부회장을 내보내 시위 주최인 한인총대학생회 이무곤 회장과 만나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한인 언론 입회하에 언어불통으로 부 당 요금 징수 가능성도 해결하기 위해 이중언어 서비스의 한 단계로 '한인계 직원도 5명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 대로 1985년 11월 한인계 5명이 퍼시픽벨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기업을 상대로 한인사회가 정의의 행동을 처 음으로 벌인 이같은 역사적 사건은 당시 미주중앙일보 등에 대 대적으로 보도됐다.
 
이 사건은 미국 여론에도 불을 지폈다. 소비자 보호 운동단체인 퍼블릭 어드보카시 그룹(Public Advocacy Group)이 공공의 이익을 내걸고 퍼시픽벨 회사를 상대로 고발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회 사내 일부 직원들도 회사의 노조 정책 급여 문제나 고용조건 등으로 내부 고발도 이어졌다. 결국 캘리 포니아주 공공요금 위원회에서 퍼시픽벨 회사에 5천만 달러 벌금을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인해 부당요금 피해자들에게 소급 환불도 실시돼 많은 한인들은 많게는 1000달러까지 환불을 받았다.
 
특히 퍼시빅벨 회사는 한인 커뮤니티에 대하여 최초로 한인 센터'를 설치하여 한인 소비자를 위한 정 책을 전담하는 부서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이같은 정책으로 퍼시픽 벨 회사는 한인 언론등 에도 홍보 활동을 펴고 한인 커뮤니티 비영리 단체들에 지원도 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지원금은 한미 연합회(KAC), 오렌지카운티 노인회가 소유한 회관 부채 탕감에도 도움을 받는 등, 지금까지 혜택을 받은 한인기관 단체들이 많다.
 
미주류 대기업과 상대한 정의의 운동
 
이같은 '한인 센터의 개설로 전화회사의 광고 홍보 등이 동포 언론에 게재되고, 그같은 홍보비 등이 동포사회로의 유입은 크나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한인 센터'의 한인 직원들의 채용 등은 한인 사 회의 직업 창출고 함게 한인들이 미주류 대기업으로의 진출의 길을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박차관보가 35년 전 올림픽노인회를 찾아가서 노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시작했던 작은 행동들은 잔잔한 물결처럼 서서히 세상에 퍼져나가 오늘날까지도 모든 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당시 34세의 박 동우씨는 6살 5살 그리고 2살난 자녀들이 있었는데 회사 측의 눈총속에 가슴을 저미며 살았다. 해고 를 무릅쓰고 싸울 때 너무 무섭고 외로웠다고 했다. 
 
자칫 해고를 당할 우려 속에서도 그는 옳은 일을 하는데...라며 "자녀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고 다짐했다. 이처럼 한 인간의 마 음가짐이 다른 이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도, 근심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숨소리가 사랑의 빛 을 뿜어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시선이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도 있으며, 한 사람의 행동 이 많은 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풍요하게 만드는 열망을 독려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정의로운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정의이다.
 
박동우차관보 프로필 
2013 ~ 현재   수석 보좌관, 샤론 쿼크-실바 켈리포니아 주 5선 하원의원   
2009 ~ 2013   (전) 미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장애정책위원 (차관보급, 오바마 대통령 임명, 미 상원 인준)   
2006 ~ 2012   (전) 가든 그로브시 도시계획위원   
2013   충북 제천시 홍보대사 임명   
2013   자랑스런 한국인 상 – 사단법인 청렴 코리아   
2012   2012년을 빛낸 도전 한국인 특별상   
2011   대한장애인 올림픽위원회 고문 위촉   
1999 – 2022  민주 평통 자문위원   12기, 17기 제외
1997 ~ 2017   가든 그로브 자매도시협회 전 회장(2),    
1997 ~ 2015   가든 그로브 로타리 클럽 회원, 2005년 회장 역임   
1999 ~ 2004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임명 자문위원   
2000 ~ 2007   (전) 오렌지 카운티 교통국 자문위원   
2001 ~ 2005   (전) 오렌지 카운티 노인국 커미셔너   
2005 ~ 2006   (전) 오렌지 카운티 한인회 이사장   
1997 ~ 2010   오렌지 카운티 한인회 – 부이사장, 부회장, 봉사센타위원장,
             이사 상임자문위원등으로 봉사   
1999   남가주 장애인 연합회 회장   
1985   물덴동산 장애인 재활협회 회장   
1985   남가주 총대학생회, 고문   
2013 ~ 현   켈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수석보좌관   
2004 ~ 2010   F&M BANK, VICE PRESIDENT(부 지점장/대출부장)   
1978 ~ 2004   AT&T근무, 1997 - 2004  홍보 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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