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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34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우수상 '거미들'

최광호 | 기사입력 2024/11/23 [12:56]

2024 제34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우수상 '거미들'

최광호 | 입력 : 2024/11/23 [12:56]

▲ 2024 제34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우수상 '거미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광호기자)2024 제34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도한다.

 

거미들

박태현

 

1

문장이 허공에 걸려있다

 

2

행들이 비바람에 흔들린다

가볍고 질긴 장력으로 막행막식

하늘을 가지려는 작은 날개들만

통제하는 행,

숫돌에 막 갈아온 칼처럼

그는 바람의 네 팔다리를 댕강댕강 끊어놓고

마침표처럼 행 끝에 붙어 있다

누군가 행을 건드리기만 하면 재바르게

날개부터 돌돌 묶어버리는 거미들

중앙까지 흔들림이 연결된 그 행을 자세히 읽어보려고

가까이 가던 잠자리의 날개가 묶여 다시는

하늘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나비들도 꽃에서 꽃으로 바쁘게 옮겨 다니다

그 행을 잘못 건드려 날개를 잃었다

날개를 옹호하던 하루살이 떼

집단으로 문장 속으로 운구되었다

 

끈적거리는 저 막행막식의 행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를 예외란 단어

허공의 구석구석엔 뼈도 없는 거미들

주검을 샅샅이 훑고 있는

그들의 나라

 

계절풍에도

연약한 날개들만 걸러내는

그 문장 아래,

엎드려 캄캄하게 기는 당신들

날개 없는 당신들

한 마리 벌레일 수 있겠다

 

3

막행막식 거미들아

날개 없는 하늘이 어디 있겠느냐

우리의 꿈은, 무덤만큼은 하늘에 매다는 것이다

당신들 입에 넣어주었던 우리 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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