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들 박태현
1 문장이 허공에 걸려있다
2 행들이 비바람에 흔들린다 가볍고 질긴 장력으로 막행막식 하늘을 가지려는 작은 날개들만 통제하는 행, 숫돌에 막 갈아온 칼처럼 그는 바람의 네 팔다리를 댕강댕강 끊어놓고 마침표처럼 행 끝에 붙어 있다 누군가 행을 건드리기만 하면 재바르게 날개부터 돌돌 묶어버리는 거미들 중앙까지 흔들림이 연결된 그 행을 자세히 읽어보려고 가까이 가던 잠자리의 날개가 묶여 다시는 하늘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나비들도 꽃에서 꽃으로 바쁘게 옮겨 다니다 그 행을 잘못 건드려 날개를 잃었다 날개를 옹호하던 하루살이 떼 집단으로 문장 속으로 운구되었다
끈적거리는 저 막행막식의 행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를 예외란 단어 허공의 구석구석엔 뼈도 없는 거미들 주검을 샅샅이 훑고 있는 그들의 나라
계절풍에도 연약한 날개들만 걸러내는 그 문장 아래, 엎드려 캄캄하게 기는 당신들 날개 없는 당신들 한 마리 벌레일 수 있겠다
3 막행막식 거미들아 날개 없는 하늘이 어디 있겠느냐 우리의 꿈은, 무덤만큼은 하늘에 매다는 것이다 당신들 입에 넣어주었던 우리 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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