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시
이사하는 날 정영준
버려지는 것들의 장의 조등으로 붙은 재개발공고가 문상객을 받는다 쌈짓돈 꾸러 일찍 깨우던 골목길이 사라질 목록으로 아낙들 입방아에 오르고 카트에 실려 들썩이는 신고가로 거드름 피울 아파트가 생겨날 품목으로 또한 입을 빌려 조문을 한다
빈소로 차려진 집터 장기를 적출한 집이 금줄을 치고 누웠다 눈치 챈 벌레 하나 머물지 않는 집안을 어떤 이는 장판을 걷어갔다 어떤 이는 보일러 기름통을 떼어갔다 전등조차 눈알로 파내간 집은 몸을 비우라는 계고장에 낮 동안 부둥켜안은 체온마저 떠나보낸다 기억 속에서도 지워질 기록들이 코드 뽑은 티브 화면으로 방영되는 밤
날밤 새우는 가재도구들은 어떤 가족사를 새기고 있을까 도시가 긋는 선을 따라 파종된 살림은 포개지지 않는 양은냄비같이 달그락거리고 소리 하나 담을 수 없는 담들이 작은 풍문에도 흔들린다 뜸 덜 든 햇빛이 쿠쿠하고 아침을 뿜어내면 통째 장지가 되는 마을사람들 가슴팍에 매단 이주통지서가 시지프스 돌덩이로 굴 러진다 사라지는 목록 속으로 걸음을 떼는 집 순장되는 것들이 포클레인 추도사에 이사를 가고 이식을 기다리는 장기들 곁에 슬쩍 끼워 넣은 내 머리 위로 도시의 바람이 포르말린 용액으로 부어지던 이사하는 날 난 하루씩 이식되거나 또 다른 이사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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