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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칼럼]보이지 않는 불꽃 — 태움 너머, 한국 사회 직장 내 괴롭힘의 구조적 자화상②

최봉혁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7/06 [07:49]
【제2편】 침묵의 생태학 — 왜 그들은 말하지 못하는가, 말해도 변하지 않는가

[ESG칼럼]보이지 않는 불꽃 — 태움 너머, 한국 사회 직장 내 괴롭힘의 구조적 자화상②

【제2편】 침묵의 생태학 — 왜 그들은 말하지 못하는가, 말해도 변하지 않는가

최봉혁칼럼니스트 | 입력 : 2026/07/06 [07:49]

▲ [ESG칼럼]보이지 않는 불꽃 — 태움 너머, 한국 사회 직장 내 괴롭힘의 구조적 자화상②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제2편】 침묵의 생태학 — 왜 그들은 말하지 못하는가, 말해도 변하지 않는가

글 ㅣ 최봉혁ESG칼럼니스트 ㅣ 장애인인식개선신문 ㅣdpi1004.com

 

여는 말: 31.3%의 침묵

고용노동부가 2024년 수행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실태조사'에서 가장 뼈아픈 숫자는 피해율이 아니었다.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직장인의 31.3%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수치, 그리고 그 가운데 17%가 결국 사직을 선택했다는 수치—이 두 숫자야말로 한국 직장 내 괴롭힘의 본질을 관통한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떠나는 사회.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어버린 구조. 이 칼럼은 그 침묵의 뿌리를 캐고자 한다.

 

첫 번째 뿌리: 생존권이라는 족쇄

한국 사회에서 직장은 단순한 노동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의 생계이자, 자녀의 학비이자, 부모의 병원비이자, 주거의 안정이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원이나 사건 내용이 알려져 불이익이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두려움이 아니라, 경제적 파멸에 대한 현실적 공포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3개월 단위의 초단기 계약을 맺고,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조차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서, 입주민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는 것은 곧 계약 종료를 의미한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의 갑질을 호소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노동자 사건 이후, 남은 동료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해임을 요구했지만, 아파트 측은 오히려 76명의 경비노동자 중 44명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했다. 목소리를 낸 대가가 해고였던 것이다.

 

고령 촉탁직 근로자에게 이 족쇄는 더욱 무겁다. 정년 후 재고용은 대부분 1년 이내의 단기 계약이며, 갱신 여부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재량에 달려 있다. 60대 중반,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나이에 모욕을 참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가족을 위해서" 참는다는 말 속에는, 개인의 인격이 가족의 생계라는 더 큰 무게에 눌려 침묵당하는 비극이 있다.

 

재택근무자의 침묵은 다른 결을 가진다. 물리적으로 격리된 상태에서 겪는 소외—회의에서의 배제, 업무 성과의 비가시화, 승진 기회의 축소—는 명확한 '가해 행위'로 포착되기 어렵다. 사이언스타임즈(2026)가 보도한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가 늘수록 고립감이 커지고 정신적 고통이 증가하는 연관성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나는 소외당하고 있다"고 신고할 수 있는 명확한 제도적 통로가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두 번째 뿌리: 노조와 조직의 구조적 묵인

직장 내 괴롭힘의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기대되는 내부 기제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조가 괴롭힘 해결의 주체로 기능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회사의 노무관리 전략으로 행해지는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과 차별, 폭력에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겠지만"이라는 전제 뒤에 오는 것은 현실의 한계다. 노조가 조직 내부의 결속과 이익을 우선시할 때, 개별 구성원의 괴롭힘 피해는 "조직의 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묵인되거나 축소된다. 특히 가해자가 노조 내 영향력 있는 인물일 경우, 피해자 보호보다 조직 유지가 우선시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는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경우, 직접 고용한 용역회사는 관리소장이나 입주민에 대해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갑'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를 보호할 유인이 없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의 지적처럼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 이 구조 안에서 노조의 존재는 보호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정치적 변수에 불과해진다.

 

세 번째 뿌리: 법의 한계와 제도의 사각지대

2019년 7월 시행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제76조의2)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그러나 시행 이후의 현실은 기대와 거리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이다. 현행법은 사용자에게 조사 의무와 적절한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이 '적절함'의 판단이 사실상 사용자에게 맡겨져 있다. 시정 지시가 내려져도 구체적인 이행 여부가 병원 자율에 맡겨진 채 실질적 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은, 이번 간호사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이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전체 사업장의 상당수가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임을 감안하면, 법의 보호 밖에 놓인 노동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신고 이후의 2차 가해 문제도 심각하다.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우려"와 "동료와의 관계 악화 우려"가 신고를 가로막는 주요 이유라는 실태조사 결과는, 신고 자체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위험이 되는 역설적 구조를 보여준다. 피해자가 분리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조차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법률 분석(율촌)은, 보호의 칼이 얼마나 무딘지를 드러낸다.

 

네 번째 뿌리: 문화적 관성과 내면화된 위계

법과 제도의 문제 너머에는 더 깊은 층위의 원인이 있다. 한국 사회의 수직적 조직문화는 직장 내 괴롭힘의 토양이다. 나무위키의 태움 문서가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하고 있듯, "상대가 나보다 아랫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갑질을 하려 드는" 성향은 간호사 사회만의 것이 아니라, 군대, 학교, 기업, 스포츠, 연예계를 관통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이 위계가 내면화된다는 점이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논리, "이 정도는 사회생활이면 감내해야 한다"는 통념, "힘든 만큼 성장한다"는 자기 합리화—이 모든 것이 괴롭힘을 재생산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태움의 가해자들이 "나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항변하는 것은 변명이지만, 동시에 이 악순환의 구조를 반증하기도 한다.

 

장애인 노동자의 침묵: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고통

직장갑질119의 2026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76.7%가 "한국은 장애인이 일하기 좋은 사회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은, 단순한 여론이 아니라 체감된 현실의 반영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기업들이 채용 대신 부담금 납부로 의무를 대체하는 관행 속에서 제도는 '고용 유도'가 아닌 '비용 대체'로 작동하고 있다.

 

채용되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무를 주지 않거나, 회의에 부르지 않거나, 대화에 끼지 못하게 하는 것—명시적인 폭언이나 폭행이 아니어도 "있어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직장갑질119 박은하 노무사의 말처럼 "기본적인 노동 접근권조차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장애인을 투명인간처럼 취급해온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이들의 침묵에는 특별한 무게가 실린다. 장애인 노동자에게 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사회와의 유일한 접점을 상실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참고, 참고, 또 참는다.

 

맺는 말: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의 맥락에서 침묵은 동의가 아니며,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가 강요한 무력함이고,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을 지우는 행위이다.

 

31.3%의 침묵 뒤에는 가족을 생각하며 이를 악문 아버지가 있고, 계약 갱신을 기다리며 모욕을 삼키는 경비원이 있고, 화면 너머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재택근무자가 있고, "있어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장애인 동료가 있다.

 

다음, 마지막 편에서는 이 침묵의 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지, ESG 경영과 제도 혁신, 그리고 시민 사회의 역할을 통해 밝은 사회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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