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최봉혁 칼럼니스트 ㅣ장애인인식개선신문ㅣ
"제 아이는 특별한 천재가 아닙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었을 뿐입니다."
절기상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 국회의사당역 앞 이룸센터 1층 카페 창밖으로 눈발이 희끗하게 날렸다.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들어선 카페 안, 훈훈한 공기 속에서 손제형 작가(36)와 그의 어머니 를 만났다.
우리는 흔히 장애 예술가의 성취를 '서번트 신드롬'이나 '장애 극복'이라는 드라마틱한 프레임으로 소비하려 한다. 하지만 손제형 작가의 이야기는 그런 화려한 포장지 속에 있지 않다. 그의 서사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2년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치열한 창작의 기록이자, 그 곁을 지킨 가족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역사다.
그는 자폐성 장애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그를 설명하는 첫 번째 단어는 '장애'가 아닌 '만화가'여야 한다.
팩트체크 1: 천재성이 아닌 '반복'이 만든 궤적 손 작가의 성취는 우연한 재능의 산물이 아니다. 경복궁역에서 인덕원까지 가는 등교길 지하철 안에서도 그는 작은 수첩을 꺼내 쉬지 않고 캐릭터를 그렸다. 지금의 웹툰 <몬스터 코멧>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탄생했다.하지만 중요한 팩트는 '결국 해냈다'는 점이다.
팩트체크 2: '작은 학교'와 '공동체'라는 교육 전략 손 작가의 성장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부모의 '교육 전략'이다. 부모는 아들을 위해 '학년당 학급이 하나뿐인 작은 학교'를 선택했다. 인원이 적어 서로를 잘 알고, 학부모들끼리도 가족처럼 지내는 '열린 교육' 환경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6년 동안 같은 친구들과 지내며, 친구들이 손제형을 '장애인'이 아닌 '그냥 제형이'로 받아들일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현명한 포석이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고 밥도 먹으며, 함께 여행하며 쌓은 유대감은 제도가 해주지 못하는 '진짜 통합교육'을 가능케 했다. 중학교 역시 성적 경쟁보다 다양한 활동을 중시하는 곳으로 진학해,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 속에 자존감을 키웠다.
팩트체크 3: "회사 그만두겠다"… 부모의 마지막 승부수 그는 안정적인 디자인 회사를 다녔지만, 만화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만화를 그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는 막막했다. 하지만 아들이 이토록 원하는 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부모가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자."
부모는 아들의 퇴사를 허락하고, 만화 제작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크릴, 과슈, 수묵화 등 다양한 회화 기법을 배우게 했고, 이는 만화의 작화를 한층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2년의 산고 끝에 나온 <몬스터 코멧>은 단순한 만화책이 아니다. 부모의 믿음과 아들의 열정이 빚어낸 '독립 선언문'이다.
내면의 목소리: 보호받던 아들에서 '어머니의 보호자'로
어머니가 다리 골절로 깁스를 하고 누워있던 어느 날, 집에는 아들과 단둘뿐이었다. 평소 보살핌을 받던 아들은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부축하고 약을 챙겼다.
"조심하세요! 위험해요!"
이제 그는 어머니에게 주의를 주고 도움을 제안하는 듬직한 보호자가 됐다. 자신의 만화 속 주인공 '알로'가 알을 깨고 우주로 나아가듯, 손제형은 이제 부모라는 둥지를 떠나 자신만의 궤도를 비행할 준비를 마쳤다.
[인터뷰] "서투른 족장과 엉뚱한 용깨비의 동행"
만화가 손제형 & 어머니씨와의 심층 대화 (인터뷰는 손제형 작가가 던지는 짧고 투박한 진심(키워드)을 어머니가 그 맥락과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미화된 연출이 아닌, 모자가 오랜 시간 맞춰온 그들만의 소통 방식이다.)
Q. <몬스터 코멧>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손제형) "힘들었어요. 많이 지우고... 다시 그리고. 그래도 책 나와서 좋아요. 성취감... 만땅."
A. (어머니) "(웃음) 제형이가 '힘들었다'고 한마디로 툭 던지지만, 옆에서 지켜본 지난 2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낙서처럼 그렸던 수많은 캐릭터가 제형이 머릿속에 흩어져 있었거든요. 이걸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죠.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또 지우고... 수십 번을 수정하면서 본인도 울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서 책이 나오니까, 제형이 표현대로 성취감이 '만땅'이 된 거죠. 이제는 독자들에게 책 보여주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합니다."
Q.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A. (어머니) "솔직히 막막했죠. 디자인 회사에서 캐릭터를 그리며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만화를 그리기 위해 그만둔다'고 할 때 말릴 수가 없더라고요. 제형이가 이토록 원하는 게 있는데 길을 찾도록 도와줘야겠다, 우리가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지했습니다. 지금은 회화와 만화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Q. 학창 시절 '작은 학교'를 선택하신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시나요?
A. (어머니) "네,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인원이 적은 작은 학교라 6년 동안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어요. 동네 친구, 엄마들과 같이 밥 먹고 놀러 다니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죠. 중학교도 성적 경쟁보다 활동 위주의 학교를 갔더니 선생님과 친구들의 여유와 배려가 제형이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 모든 분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제형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예전에는 수정 요청을 하면 싫어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작업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요?
A. (어머니) "예전엔 그림을 고치라고 하면 실망하고 자기주장만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 부분은 조금 이상했네' 하고 인정하며 고치기도 하고, 때론 왜 그렇게 그렸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관철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죠."
Q. '재능' 뒤에 숨겨진 '노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A. (어머니) "제형이는 말보다 그림을 더 많이 그렸어요. 과거 대학시절 경복궁역에서 의왕시까지 가는 지하철에서도 수첩에 쉬지 않고 캐릭터를 그렸죠. 그게 지금 <몬스터 코멧>의 토대가 됐고요. 줄넘기 하나를 익히는 데 매일 300개씩 3년을 연습했습니다. 무엇이든 오래 걸리지만, 몇 년이든 꾸준히 하면 결국 익히는 아이입니다."
Q. 아드님이 이제는 어머님의 보호자가 된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A. (어머니) "제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을 때였어요. 제형이가 자연스럽게 저를 부축하고 약을 챙겨주더군요. '위험해요!' 하며 주의도 주고요. 이제는 제가 보살피는 아이가 아니라, 저를 지켜주는 듬직한 보호자가 된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A. "만화를 정말 좋아했던 작가, 자기만의 성장 스토리를 재미있게 그린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작품 속 알로와 친구들처럼,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용기를 가지고 꿈을 찾는 여정에 독자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손제형 작가가 세상에 내놓을 두 번째 만화책이 장애라는 꼬리표 대신 오직 실력으로 인정받는 2026년의 새로운 기준이 되길 바란다. 그의 유쾌한 상상력이 우리 사회의 편견을 허물고 장애 예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따뜻한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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