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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성건강 향유권’까지 WHO 2026년 9월 캠페인이 한국 사회에 묻는다 [ESG 칼럼특별기획] 장애인의 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성건강 향유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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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G 특별기획 3] 장애인의 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성건강 향유권’까지-WHO포스터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글 ㅣ최봉혁 ESG 칼럼니스트 ㅣ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할 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두 극단 사이를 오갔다.
하나는 장애인을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로 보는 시선이다. 특히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은 연애와 사랑, 성적 친밀감, 결혼과 출산에 관심이 없거나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의 성을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태도다.
둘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장애인을 자신의 몸과 관계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타인이 규정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제 이 관점을 바꿔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6년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하는 ‘세계 성·생식 건강의 달(World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Month 2026)’은 그 전환점을 제공한다.
WHO의 올해 메시지는 “Health starts here”, 즉 “건강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다.
WHO는 성·생식 건강을 단순한 질병 예방이나 임신·출산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관계, 동의, 피임, 임신·출산, 난임, 성매개감염병 예방,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건강정보 접근까지 생애 전반의 건강·존엄·삶의 질과 연결한다.
특히 WHO는 성건강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경우, 강요·차별·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성적 경험’을 가질 가능성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은 장애인 인권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은 사랑할 수 있다.
사랑받을 수 있다.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관계를 거부할 수도 있다.
누구와 가까워질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몸에 대한 접촉을 허용하거나 거절할 권리도 가진다.
이는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자기결정권이다.
WHO와 유엔인구기금(UNFPA)은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같은 성·생식 건강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관련 정보와 서비스에서 광범위한 장벽을 경험한다고 이미 지적해 왔다.
UNFPA가 소개한 실제 사례에서는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의료종사자가 사실상 “당신 같은 사람은 성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사건도 등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무례가 아니다.
장애인은 무성적(asexual)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의료 접근을 차단하는 구조적 차별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적 즐거움’이라는 표현은 아직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국제 보건 담론에서는 이미 낯선 개념이 아니다.
WHO는 성건강을 설명하면서 성적 표현, 관계, 친밀감뿐 아니라 pleasure, 즉 즐거움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정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성적 즐거움을 향유할 권리’가 특정 상대방으로부터 성행위를 제공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타인의 몸이나 성적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다른 사람의 신체적 자기결정권과 충돌할 수 없다.
WHO의 기준은 오히려 명확하다.
성건강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강요, 차별,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성을 인정하는 것과 성적 괴롭힘을 묵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장애인의 욕구를 무조건 억압해서도 안 되지만, 장애를 이유로 타인에 대한 비동의 행위를 허용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 성인권 교육과 돌봄 윤리가 필요하다.
해외 제도를 살펴보면 이 원칙은 더욱 분명하다.
영국의 돌봄서비스 감독기관인 CQC(Care Quality Commission)는 성인 사회돌봄 서비스에서 관계와 섹슈얼리티를 별도의 돌봄 이슈로 다룬다.
CQC 지침은 돌봄 제공자가 이용자의 성적·관계적 욕구를 민감하게 인식해야 하며 성적 감정과 욕구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건강한 인간 경험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합의된 성적 활동을 자동으로 ‘위험행동’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접근을 취한다.
동시에 경계선도 분명하다.
동의능력, 착취 가능성, 성폭력, 다른 이용자와 직원의 안전을 평가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개별 돌봄계획과 위험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방식에서 배울 점이 있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성 자체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 + 동의 + 안전 + 보호’를 함께 설계한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이 성적 욕구를 표현한다면 그것을 모욕하거나 무조건 제압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의미하는 행동인지 파악하고, 사생활 보호와 교육·상담·의사소통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타인에게 비동의 접촉을 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라면 즉시 보호와 개입이 필요하다.
권리와 책임은 동시에 존재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23조는 장애인이 결혼과 가족, 부모됨과 관계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자녀의 수와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권리, 적절한 생식·가족계획 정보를 이용할 권리도 포함한다.
제25조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장애인이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누릴 권리를 인정하면서 비장애인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범위와 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여기에는 성·생식 건강서비스가 명시적으로 포함된다.
그리고 의료서비스는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에 따라 제공되어야 한다.
핵심은 ‘보호’만이 아니다.
존엄, 자율성, 정보, 동의가 동시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언론이 특히 조심해야 할 문제가 있다.
중증장애인의 성을 설명하면서 ‘본능적 욕구’라는 표현만 반복하면 인간의 관계와 감정을 생물학적인 충동으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
욕구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인간의 성은 단순한 본능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애정, 친밀감, 관계, 거절, 외로움, 자기표현, 사생활, 정체성, 신뢰가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언론은 “중증장애인의 성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방식보다 다음 질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관계를 형성하고 성건강 정보를 이용할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가.”
“돌봄시설에서 장애인의 사생활과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존중되고 있는가.”
“발달장애인이 동의와 거절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고 있는가.”
질문의 프레임을 바꾸면 장애인이 대상에서 시민으로 이동한다.
성폭력 위험 때문에 장애인의 성을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특히 지적·발달장애인의 경우 보호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와 권리 박탈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UNFPA가 운영하는 ‘We Decide’ 프로그램의 명칭 자체가 이를 상징한다.
“우리가 결정한다.”
여성과 청년 장애인이 자신의 몸과 삶, 미래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본 철학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지원의사결정’이다.
당사자를 대신해 모든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그림, 반복 설명, 보완대체의사소통 등의 방법을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를 최대한 표현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성관계에 대한 동의 역시 장애 여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동의는 구체적 상황에서 자발적이고 이해 가능하며 지속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한 번의 동의가 영구적인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면 성적 일탈이나 괴롭힘을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의 결정뿐 아니라 상대방의 결정도 똑같이 존중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네 가지 원칙을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
첫째, 성적 욕구와 친밀감 자체를 장애 때문에 부정하지 않는다.
둘째, 자유롭게 동의한 성인 간의 관계와 사생활을 존중한다.
셋째, 동의하지 않은 접촉·강요·착취·폭력은 명확하게 금지한다.
넷째, 스스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을 지원한다.
이 네 원칙이 장애인 성인권의 최소한의 윤리적 좌표가 된다.
WHO의 “Health starts here”를 장애인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건강은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권리에서 시작된다.
인권은 사랑할 권리와 거절할 권리를 동시에 보장할 때 완성된다.
그리고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우리 사회가 언젠가 논의해야 할 특별한 주제가 아니다.
이미 논의를 시작했어야 할 기본적 인권의 문제다.
